언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윤국한 재미언론인, 전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 입력
2006.02.22 13: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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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국한 재미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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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욕타임스> 2면에는 거의 매일 10건 안팎의 정정 기사가 통상 4단 크기로 실린다. 정정 보도의 대부분은 기사 작성이나 편집상의 착오로 잘못 표기된 사람 이름이나 단위, 수치 등을 바로 잡는 것이니 고급정론지로서 당연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상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정정 보도를 내는 점이다.
이 신문은 자신들이 바로 잡는 표현상의 문제를 뉘앙스(nuance)란 단어로 표기하면서, 인식의 혼란을 줄 수 있어 분명히 한다며 특정 문장의 의미를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기사의 정확성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자부심과 의지를 보여주는 이 정정 보도란을 통해 나는 늘 이 신문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한다. 뉘앙스가 잘못 전달될 가능성까지 바로 잡는 신문이라면 기사 한 줄 한 줄에 얼마만큼의 공을 들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 <뉴욕타임스> 2면을 펼칠 때면 늘 우리 언론이 <뉴욕타임스> 이상으로 기사의 정확성에 비중을 뒀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정확성은 요즘의 인터넷 정보 홍수 속에서 기성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력한 방도다. 가까운 예로 허위로 밝혀진 ‘지하철 결혼식 소동’은 인터넷 시대에 우리 언론이 직면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터넷상에 넘쳐 나는 정보,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는 기성 언론을 조급하게 하고 있다. 또 정보 생산자가 직접 정보 전달자가 되고 있는 상황은 사람들에게 전체상황을 가감 없이 제공하면서 더 이상 매개체 (미디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가령 정치인들이 직접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주요 회의에 참가했던 당사자가 회의 과정이나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띄우는 마당에 기성 언론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 언론의 차별성을 분명히 보여줄 기회이기도하다. 그리고 이 차별성을 통해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인터넷 기사의 남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확성, 그리고 객관성이야말로 그 차별성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기성 언론은 훈련받은 전문 언론인이 인터넷상에서 마구잡이로 이른바 낚시 글을 올리는 네티즌과 어떻게 다른지를 기사의 정확성으로 보여줘야 한다. 기사 한 줄을 위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가짜 지하철 결혼식 소동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우리 언론이 속보보다는 정확한 보도를 훨씬 더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성 언론은 정확성과 객관성 외에도 차별화해 제시할 수 있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별 쟁점과 현안에 대한 통찰력과 대안을 제시하는 칼럼과 기획기사는 전문 언론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의 무책임한 인터넷 글과는 뚜렷이 대비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회현안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등 의제설정 기능을 강화한다면 언론의 역할을 높이면서 독자의 신뢰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자꾸 <뉴욕타임스>를 예로 들어서 안됐지만 이 신문에서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나 가십성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우리 신문들은 흔히들 고급 정론지를 표방하면서도 인터넷상에 연예나 오락성 기사를 너무 많이 게재하는 것을 본다. 조회 수를 올리려는 고육책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신문의 권위를 깎아 내리면서 결국 기사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