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와 언론 자화상
편집위원회 | 입력
2006.01.11 09:38:32
독일의 원자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의 역사에서 천재 중의 천재로 불리는 인물이다. 1925년 고전물리학의 결정론적 사고체계에 중대한 전환을 불러온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가 24세, 그리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을 때의 나이가 31세였으니 그런 평가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가 남긴 자전적 기록을 보면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그의 후속 연구는 과학계의 엄중한 비판에 직면했으며 하이젠베르크 자신은 그런 비판에 남모르게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과학자라는 찬사와 노벨상이 부여한 권위도 비판과 검증을 면제해주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황우석 사태를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권위의 무게 아래 짓눌려 비판과 검증을 거북한 것으로 여겼는지, 특히 비판과 검증을 업으로 한다는 언론, 언론인조차 성역화된 권위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언론 기능의 총체적 무력화 현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2005년 최대 사건이라는 황우석 사건을 통해 언론은 스스로 걸어온 길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황우석의 등장에서 퇴장까지 언론의 비판 정신을 무력화시킨 첫 번째 힘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우리 언론에 만연한 국가주의적 사고 체계에 기반 한다고 할 수 있다. 일련의 황우석 관련 보도를 통해 언론은 ‘대한민국의 힘을 세계만방에 떨친 쾌거’ ‘대한민국의 미래를 먹여살릴 황금알을 만들 인물’ ‘전 세계 난치병 환자를 대한민국의 과학으로 치료한다’는 등의 프레임을 구축해왔다. ‘PD수첩’이 황우석 신화에 도전하려고 했을 때 언론과 국민이 그토록 거센 반감을 표출한 것도 따지고 보면 언론이 만들고 국민들 사이에 체화된 ‘황우석版 국가주의적 사고’에 일개 방송 프로그램이 ‘감히’ 도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체계는 본질적으로 다원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와는 함께 갈 수 없다. 민주 사회의 중요한 제도 중 하나인 언론이 국가주의의 토대 위에서 신화와 성역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일이다. 국가는 국가의 길이 있고 언론은 언론의 길이 있는 것이다.
이런 국가주의적 사고체계 위에 언론의 정파성이 가세하면서 황우석 사태는 더욱 파괴적인 양상으로 나타났고 언론의 사명은 그만큼 무력화됐다. 어떤 이슈의 진실을 가리기보다 누구에게 유·불리 한 지를 먼저 따지는 데 익숙한 일부 언론은 역시 황우석 이슈를 자기 방식대로 활용하고자 했다. 줄기세포 논란에 느닷없이 좌파 딱지를 붙이고 맥아더 동상 철거를 끌어들이는 등의 해괴한 행태는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가치를 오직 정파성의 잣대로 해석한 극단적 사례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여기에 황우석 사태는 언론인과 취재원과의 관계가 언론의 진실 추구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취재원 황우석은 언론인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왔다. 나아가 언론계에는 지연 혹은 개인적 인연으로 인해 황우석 교수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가 된 언론인들이 있다. 문제는 황 교수와의 관계나 개인적 믿음이 진실 추구자라는 언론인의 본원적 정체성마저 압도하곤 했다는 점이다.
진실을 알면서도 황 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이를 무시했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벌거숭이의 모습으로 진실을 찾아야 하는 언론인들에게 취재원 황우석과의 특별한 관계는 분명 저널리즘의 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황우석 신화를 벗겨낸 것은 언론이었지만 그 신화가 벗겨지면서 드러난 것이 또한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다면 언론은 끊임 없이 그 존재 이유를 의심받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