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자기 연출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캐나다 출신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에 따르면,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연극배우일 따름이다. 무대 앞에서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로 명성을 떨치고 수백 억 원의 국고를 아낌없이 지원받았던 황우석 박사는 커튼 뒤에서 초조감을 떨쳐내지 못한 채 줄기세포 조작에 여념에 없던, 표리부동한 생명공학 전공 배우에 불과했다.



마침내 화려했던 연극이 끝났다. ‘상식의 저항’을 무릅쓰고 힘들게 취재했지만, 매국노라는 비난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MBC 제작팀의 명예는 2005년을 빛낸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면서 극적으로 복원되었다. 연말연시 각종 모임마다 ‘황우석과 줄기세포’에 대해 분개하고 조롱하는 말들로 떠들썩하다. 진실은 밝혀졌고, 죄인은 중인환시리에 머리 숙여 사죄하고 무대를 떠나갔다. 관객들도 허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인가? 희대의 연극은 막을 내렸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시비비를 따져 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2005년의 절망과 아픔을 2006년에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잘잘못을 평가하고 문책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황우석 관련 보도에서의 잘못을 시인하고 진지하게 자기반성을 한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국일보 그리고 SBS 등에게는 비록 만시지탄이지만 따뜻하게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문제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고 있는 일부 신문과 방송이다. 황우석 사건을 보도했던 조선일보의 자세를 보노라면 안티조선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시민운동이 왜 필요한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동료 매체가 제기한 의혹과 문제점들에 대해 최소한의 저널리즘적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제작진의 학생운동 전력을 파헤치고, 이번 사건을 ‘보통사람들에 대한 좌파 매체의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한 자사 고문의 칼럼을 버젓이 게재한 대한민국 구독률 1위 조선일보 앞에서 우리 시대, 우리 언론의 슬픈 자화상을 읽을 수 있다.



이보다는 덜 하지만, 언론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황우석 팀의 의도에 맞춰 한바탕 광대놀음을 한 YTN 역시 치열한 각성과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공개적인 취재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그동안 YTN을 사랑하고 지지했던 시청자들에 대한 어이없는 배신이다.



그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도 때가 되면 자신이 범한 죄과를 달게 받아왔지만, 유독 그 밑에서 호가호위해 왔던 일부 언론만은 여전히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면서 구태의연한 색깔론과 편 가르기에 골몰하고 있다. 자사의 논조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인터뷰 내용을 조작하는 저널리즘의 위기는 PD 저널리즘이 아닌 바로 이들 신문의 몫이다.



진실한 반성과 사과 앞에서는 그 어떤 적대감이나 증오심도 눈 녹듯 사라지기 마련이다.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신문, 지나간 허물에 대해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고 참 언론으로 거듭나는 신문을 이 땅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2006년 새 아침에 다시 한 번 간절히 희망해 본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