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은 기자직을 버려라!
편집위원회 | 입력
2005.11.23 10:38:16
최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의 검찰 소환 앞뒤로 중앙일보 일부 기자들이 보여준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홍 전 회장은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삼성그룹으로부터 거액의 대선 자금을 받아 이회창 후보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 이른바 안기부 도청과 ‘엑스파일’을 통해 드러났다. 언론사 사주의 신분을 망각한 채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그의 처신은 우리를 더욱 실망시켰다. 당시 주미 대사로 재직하던 그는 대사직에서 물러난 뒤 귀국을 차일피일 미뤘다. 당연히 검찰 소환을 기피하는 게 아니냐는 입방아에 올랐다. 더욱이 그 기간 동안 현직 중앙일보 사건사회부장이, 홍 전 회장이 머물던 미국과 일본을 무려 네 차례나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고, 해당 부장이 검찰과 경찰 출입기자들을 아우르는 부서의 장이라는 점에서 대책을 숙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욱이 해당 부장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한겨레> 기자에게 “누가 그러더냐, 똑바로 알아 보라”고 오리발까지 내밀었다.
이런 어이없는 행동은 홍 전 회장의 귀국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이 부장은 홍 전 회장을 수행해 지난 12일 함께 귀국했고, 공항에 미리 나와있던 중앙일보 전·현직 공항출입기자가 정장 차림으로 홍 회장을 양옆에서 수행하며 기자들의 취재를 막아섰다. 이들은 홍 전 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따라붙는 동료 기자들과 몸싸움까지 벌여 ‘경호원’ 논란을 일으켰다. 이들 중 한 기자는 한 매체비평지와의 인터뷰에서 “최소한의 불상사를 막아보자는 차원에서 연락을 받고 자발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엑스파일’ 사건 이후 홍 전 회장에 대해 묻는 타사 기자들에게 중앙일보 쪽은 “우리 회사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인물”이라고 피해갔었다. 그런데 중앙일보 기자들은 자기 회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인물’의 의전을 위해 ‘경호원’을 자청하고 나섰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일부 기자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홍 전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할 때 중앙일보 사진부 아무개 기자가 기습 시위를 벌인 민주노동당 당원의 목을 나꿔 챈 것이다. 물론 ‘포토라인’을 무너뜨린 민주노동당의 기습 시위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또 민노당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그런데 사진기자라면 그런 기습적인 시위도 취재의 대상이다. 어쩌면 사진기자의 직업적 본능으로 ‘손’보다는 카메라 셔터를 먼저 눌렀어야 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민노당 당원의 목을 나꿔 챈 기자가 다른 언론사도 아닌 하필 중앙일보 기자였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6년 전인 1999년 9월, 홍석현 당시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 혐의로 대검찰청에 소환됐을 때 청사 앞에 도열해 “홍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중앙일보 일부 기자들의 행동이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여론은 중앙일보 기자들의 편이 아니었다. 중앙일보 쪽은 “김대중 정권의 표적수사”라며 항변했지만, 그렇다고 범법자를 옹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홍 전 회장은 언론사주로서 중립성과 도덕성을 망각했다. 그런 사실이 불법적인 ‘도청’을 통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진실’까지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이런 일을 저지른 이가 ‘사주’라고 해서 누구보다 ‘정의’에 앞장서야 할 기자들이 감쌀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정 ‘사주’를 감싸겠다면 방법은 있다. 스스로 기자직을 반납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