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관계




  윤국한 재미언론인  
 
  ▲ 윤국한 재미언론인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의 ‘워싱턴 출장 보고서’와 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넷 댓글을 읽으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어쩌다 국정 최고책임자와 고위 당국자의 품위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설령 일부 사실관계를 다투는 부분이 있다 해도 악의가 없는 중견기자의 글을 ‘소설’로 깍아내리면서 ‘몰상식한 칼럼’이니 애국적이 아니니 하는 조 수석의 글쓰기는 너무 실망스럽고, 이에 댓글을 통해 “그 소설 가만 둘 건가요”라며 대응을 촉구하는 듯한 노 대통령의 화답에서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진중함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국정홍보처의 ‘정책홍보 업무처리 기준’을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부 언론의 정부 비판이 감정에 치우쳐 객관성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고, 특히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는 듯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조 수석의 출장 보고서와 노 대통령의 댓글을 읽으면서 현재의 일그러진 권언(權言) 관계의 주된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우선 정부의 언론정책은 불가피하게 국정 고위 책임자들의 언론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때 그 언론관이 건전하지 못하다. 누구든 비판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겠지만 정부에 대한 비판은 국민의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권력과 권한을 가진 기관 혹은 개인을 감시해야 할 언론으로서는 그 본령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러니 언론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비판에 조롱으로 답하기보다는 한번쯤 진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정부 당국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한사코 악의적 왜곡으로 돌리면서 반박하고 법적 대응 운운하는 것이 다반사다.



물론 언론의 비판을 왜곡으로 받아들인다면 정부도 이에 반박하고 대응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품위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나는 정부의 정정당당함과 진정성을 보지 못한다. 그보다는 언론을 친정부와 비판 언론으로 확연히 편을 갈라 비판적인 언론의 주장은 의례 그렇다는 식으로 각인시키려 하는 듯한 의도를 엿본다. 이런 대응은 정치꾼들이 하는 짓이지 국정을 책임진 정부의 태도는 전혀 아니며 그래서 품격을 엿볼 수 없다.



또 하나 조 수석의 보고서에서 나는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언론의 비판과 관련해 흔히 거론하는 위험한 일반화를 본다. 조 수석은 워싱턴에서 만난 국제통화기금 관계자들의 말이라며 한국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발표를 한 데 대해 일부 언론이 강력히 항의했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아마도 그동안 경제의 어려움을 지적하며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한 언론들을 가리킨 것이겠지만 뚜렷한 전후맥락 없이 일부 언론인을 수준 이하의 모리배로 모는 듯한 글이 놀랍다.



청와대 출입을 하다 최근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모 기자가 했다며 소개한 ‘외국에 나와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는 발언이나 ‘대부분의 상식을 가진 특파원은 미국에 와보니 대한민국 정부가 그렇게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정부인지 몰랐다’며 입을 모아 칭찬한다는 부분에서 나는 민망함을 느낀다.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리는 것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 정도 인식수준으로 국정 최고책임자를 대변하고 정부 정책을 홍보한다면 좀처럼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언론은 작은 팩트 하나도 철저하고 꼼꼼히 확인해 기사의 정확성과 관련한 논란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특히 눈길을 끌 요량으로 강한 제목을 다는 오랜 관행은 정론지, 고급지를 지향한다면 과감하게 버릴 것을 당부한다. 지금은 우리 언론이 작은 것에서부터 독자들의 신뢰를 얻고 그래서 자긍심을 되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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