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기자 소환은 진실에 대한 도전

가슴 설레며 기자라는 직업을 시작할 당시 선배들이 들려주는 절대 가치의 단어는 ‘진실’ 이었다. 광부가 광맥을 따라 수천m의 지하 미로를 끝없이 찾아 가는 모습을 기자의 ‘진실 찾기’로 비교할 때는 심장이 멈출 듯 불끈 힘줄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얻은 작은 이야기를 근거로 취재에 들어가 조금씩 사실에 접근해 가다 어느 순간 커다란 실체를 확인하게 되면 ‘역시 기자하길 잘했어’라며 소주 한잔으로 그동안의 피로를 씻어 버린 기억 생생하다. 기자라면 누구나 경험하고 가슴에 담고 있는 이 같은 진실에 대한 목마름과 설레임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자사 이기주의’라는 괴물에다 회사와 얽힌 각종 매듭에 갇혀 흐려지거나 아예 묵혀질 때 ‘더럽혀진 기자’라는 이름에 한 없이 초라해 했다.



각급 언론사들의 이른바 ‘X파일’ 보도가 더욱 빛나는 것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취재 내용이 권력과 자본의 ‘심장부’를 향했다는데 있다. 어쩌면 기자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자 의무인데도, 온 국민들이 박수를 보낸 것은 언론에 대한 국민적인 불신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 국민이 모처럼 메마른 사막에 한 줄기 소나기를 만나듯 통쾌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의 검찰은 전혀 뜻밖의 행보로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한 때 대통령에게 대들며(?) 독립을 요구했던 검찰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수사에 소극적이더니 언론 및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상호기자를 제일 먼저 소환조사했다.



우리는 이 같은 소환조사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진실을 찾는 기자들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언론이 제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반언론, 반국민적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MBC 기자회도 이번 소환에 대해 “사회의 진실을 찾는 기자로서의 소명의식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패구조를 드러내 진실을 밝히라는 국민적, 시대적 요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라며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들의 활동에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는 검찰의 기자 소환조사를 ‘국민들의 알권리’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규정하며, 도청 내용 속에 들어난 실체적 진실을 감추고 세상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닌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불법도청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형식적 법 논리로 풀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이번 사건의 본질을 삼성이 주연을 맡고 언론과 정치권이 조연으로 출연해 자금력을 앞세운 전방위 로비로 민주적 정권교체를 막으려 했던 ‘친위쿠데타’라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사건이 터지자 통신비밀보호법을 운운하며 사건 본질에 대한 수사를 꺼리는 대신, 기자가 진실을 접근해 가는 ‘과정’에 대한 수사를 먼저 착수한 것이다.



검찰 수사의 칼날은 부패구조의 핵심에 있는 부패한 재벌, 언론권력, 정치권력 등에 우선 향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이처럼 ‘물타기식’ 접근을 함으로서 앞으로 진행될 수사의지에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이상호기자의 소환수사가 이뤄진 시점에서 검찰의 태도에 다시 한번 실망과 함께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한다. 기자는 진실추구가 생명보다 소중하고 그 어떤 압력과 권력도 이를 막아서는 안 된다. 또 우리는 이 같은 기자의 진실추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임을 확인하며 이를 막는 어떠한 간섭과 도전에도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밝힌다. 아울러 검찰은 공정하고도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반민주적이고 부패한 재벌과 권력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하며 이것이야말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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