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에는 창고로 쓰던 공간을 개조해 만든 작은 스튜디오가 있다. 2.5평 남짓의 손바닥만한 스튜디오에 ‘ON AIR’ 빨간불이 들어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한 발 더 깊이 있게 뉴스 속으로…”라는 앵커 멘트와 함께 라이브 방송이 펼쳐진다. 시사IN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IN’이다.
지난해 1월2일 첫 방송을 시작한 ‘김은지의 뉴스IN’은 순항하고 있다. 8만명 정도이던 시사인 유튜브 구독자는 뉴스IN 인기에 힘입어 60만명을 돌파했다(16일 현재 64만6000명). 유튜브 라이브 흥행이 미력하나마 종이잡지 정기구독으로 이어지고 수익 측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어 고무적이다.
11일 충정로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은지 시사IN 기자는 “유튜브의 성장에 조직이 활기를 띠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익숙해져 별로 그러지 않는데, 작년만 해도 기자들끼리 ‘애기 안 태어나는 동네에 드디어 애가 태어났다’고 농담을 하고 그랬어요(웃음).”
‘김은지의 뉴스IN’은 4·10 총선을 겨냥한 방송이었다. 총선을 목표로 한시적으로 시작했는데, 구독자가 가파르게 늘면서 정규 방송에 더해 현장 라이브, 특별 생방송까지 편성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월~목요일 오후 5시에 방송한다. 1부는 뉴스브리핑 코너인 뉴스리액션, 2부는 패널들이 나와 토크하는 형식이다. 요일별로 다른 패널들이 출연한다. 금요일은 격주로 방송했는데, 3월 초순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에 탄핵선고가 미뤄지며 방송을 계속해야 했다. 매주 금요일 방송은 대선 기간까지 이어졌다.
방송 경험 풍부한 여성 기자가 진행
제작진은 그를 포함해 뉴스리액션 코너를 담당하는 김영화 기자, 최한솔·김세욱·이한울 PD, 대선 때 합류한 이겨레 인턴 PD 등 6명이다. 그를 진행자로 선택한 건 PD들이었다. 방송 경험이 풍부한 여성 기자가 진행하면 비슷비슷한 포맷의 유튜브 방송과 차별화할 수 있을 것으로 PD들은 생각했고, 이러한 판단은 라이브 방송이 안착하는데 주효했다. 그는 그렇게 기자에 더해 진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 정치이슈팀장으로 팀을 이끌면서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기획하는 일도 맡고 있다.
그의 하루는 정신없이 돌아간다. 새벽에 일어나 전날 저녁 방송과 아침신문의 주요 내용을 모니터링해 패널들에게 보낼 질문지를 짜고, 뉴스리액션 발제가 올라오면 검토해서 순서를 조정하거나 질문을 추가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방송은 끝나고 품이 더 많이 든다. PD들이 방송의 핵심 내용을 여러 영상으로 나눠 편집해서 올리면 제목을 달고 썸네일을 정하는 작업이 계속된다.
인터뷰 중간에도 가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곤 했다. “인턴 PD가 오전에 쇼츠를 제작해서 지금 마감했는데 좀 보겠습니다.” 손이 부족해서 ‘쇼츠’(짧은 영상)를 자주 못했는데 인턴 PD가 합류하면서 하루에 하나씩 제작하고 있다면서 최근 ‘대박’이 난 쇼츠를 카카오톡으로 보내줬다.
그는 ‘김은지의 뉴스IN’을 진행하면서 ‘팀플레이’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해보니까 방송은 팀플레이예요. 제가 펜 기자로 15년을 살았잖아요. 개인플레이로 취재하고 결정했는데, 방송은 제작진과 의견을 맞추고 협력하면서 공동의 제작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더군요.”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팀원들 외마디
협업 체제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미디어에서 역량을 발휘한 건 ‘12·3 비상계엄’ 긴급 라이브였다. 퇴근해 집에서 쉬고 있던 그날 밤 10시쯤, 정치이슈팀 단체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대통령이 긴급 발표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팀원들끼리 다양한 추측을 하며 기다렸다. 밤 10시에 한다는 긴급 발표는 10시23분쯤 시작됐고, 4분 뒤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실시간으로 긴급 발표를 보던 팀원들은 외마디만 쏟아냈다. “???” “헐” “미친” “이게 무슨 소리예요.” 변진경 편집국장에게 계엄 사실을 보고하고, 회사 자문변호사에게 전화하고, 기자들을 국회와 광화문으로 보내고, PD들에게 방송 준비를 지시하고, 출연진에 연락을 취하며 회사로 달려갔다.
방송 직전 자문변호사가 전화로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발령된 포고령을 언급하며 조심하라는 취지로 전했다. “변호사님, 곧 방송 시작할 건데 잡아간다면 잡아가라고 하세요.” 그런 용기가 어디서 생겼는지 모른다. 가장 먼저 도착한 김준일 시사평론가와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밤 11시44분이었다.
“긴급하게 라이브 편성을 틀었는데요. 지금 이 시간에 갑자기 자다 깨서 혹은 잠 못 이루고 놀란 시민분들 많으실 겁니다….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도통 어떤 현실에 있는지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요. 이러한 말조차 가짜뉴스, 허위선동이라고 공격 받을까 걱정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김 기자는 방송을 시작했다.
김준일 평론가에 뒤이어 도착한 김민하 평론가, 김종대 전 의원과 계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방송을 이어갔다. 방송 중간중간 계엄군이 국회 경내를 활보하고 헬기가 굉음을 내며 국회 하늘을 날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 영상으로 나왔다. 시사IN 기자들이 현장에서 보내준 영상이었다. 국회가 계엄해제 결의안을 가결한 후인 새벽 1시20분쯤 방송은 끝났다.
그는 “작년 1월 방송을 시작하고 이 모든 ‘빌드업’이 그날 밤 방송을 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최고 4만2952명의 동시접속자가 몰렸다. 이 방송은 조회수 71만회를 넘겼다. 그날 밤 긴급 편성 라이브를 시청한 시사IN 한 독자는 “TV를 봐도 무슨 상황인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 시사IN 유튜브를 봤다. 그렇게 그 밤을 견뎠다”고 했다.
“12월3일은 제 기자 커리어에 오래 남을 날입니다. 유튜브를 하지 않았다면 그날 어떻게 보냈을까 상상하기 어려워요. 시사IN 기자들의 취재 역량이 유튜브라는 플랫폼과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냈어요. 그날 유튜브 라이브를 보고 시사IN을 알게 됐다는 독자들이 꽤 있어요. 뿌듯하죠. 그 불안한 마음에 우리 방송을 보고 위로가 됐다는 말씀도 너무 감사하구요.”
“기자 정체성 갖고 진행하고 있어”
그는 TBS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 뉴스브리핑 코너에 3년(2016년 12월~2019년 8월) 가까이 나갔고, 지금은 매주 화요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유튜브 방송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라이브 방송 진행을 제안받았을 때 부담감이 있었지만 받아들인 것도 방송 경험이 있어서다.
유튜브 라이브 진행 1년6개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자 김은지에서 진행자 김은지, 앵커 김은지로 역할이 바뀐 건가요?’
“하하하. 그건 아니고…. 기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진행을 하고 있어요. 누가 앵커라고 말하면 낯간지럽고 딴 사람 말하는 것 같고 그래요. 제 정체성은 여전히 기자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패널에게 질문하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시사IN이 지향하는 가치와 관점을 유튜브에 담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여성 출연진을 더 부르고 보수 출연진을 모시려고 애쓴다. 섭외 연락에 답이 없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전화하는 이유다. 매일 성적표를 받아드는 심정으로 더 독한 섭외를 생각하다가 시사IN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을 고민한단다. 그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무엇보다 펜 기자 때 몰랐던 세상을 유튜브를 통해 접하고 있다. 제작진 회의 때마다 데이터가 빠지지 않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대중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세밀하게 다가가려고 구글 트렌드를 검색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어떤 클립 영상이 조회수가 잘 나왔는지, 그걸 통해 구독자가 몇 명이 늘었고, 어떤 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유입됐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가 다양합니다. 숫자나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라 재미있어요. 물론 조회수에 얽매이면 곤란하지만 내가 너무 몰랐던 세상이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되네요.”
재미와 정보 잘 버무리면 통하더라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도 유튜브의 장점 중 하나다. 대선후보 2차 토론 생중계 기획도 그 일환이었다. 대선 이벤트를 고민하던 제작진은 대선후보 TV토론을 실시간 방송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TV토론을 그냥 내보내는 것도 그렇고 패널들이 나서면 후보들 발언과 오디오가 겹치고, 애매한 측면이 있었다.
궁리 끝에 어떤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1차 토론 때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해 레드카드를 흔든 장면이었다. 패널들이 TV토론을 시청하며 레드카드, 옐로카드, 그린카드로 후보들의 발언을 평가하는 기획을 냈는데 5월23일 2차 토론 생중계 때 ‘대박’이 터졌다. 방송 중에 시사IN 유튜브 구독자가 60만명을 돌파했고, 2차 TV토론을 총평한 36분짜리 영상은 131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5월27일 3차 TV토론 생중계 방송도 화제를 뿌렸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여성 혐오 발언이 나오자 보수성향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이마에 손을 댄 채 고개를 떨구고 옐로카드를 흔드는 장면이었다. 지상파 방송에서 이 장면을 인용해 뉴스를 내보낼 정도였다. 소소한 아이디어라도 재미와 정보를 잘 버무리면 유튜브에서 통한다는 걸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김은지 기자는 2009년 10월 시사IN에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맞닿는 직업”이었고 “진득이 앉아 있기보다는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천성”이 기자로 이끌었다. 출입처를 베이스로 취재하는 일간지 기자들과 달리 주간지 기자들은 스스로 기삿거리를 발굴해 뛰어들어야 한다. 취재원 전화번호를 얻으려고 5번 넘게 통화했다는 그의 말에 기자 초년병 시절의 어려움이 전해왔다.
그는 하나의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파고드는 취재를 이어가며 기자 역량을 축적해 나갔다. 2012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취재는 대표적 사례였다. 아이템 하나를 장악해서 끈기 있게 들어가자 새로운 지점이 보였고 그렇게 주간지 기자의 강점을 알아갔다.
지금까지 이달의 기자상을 5번 받았다. ‘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2014년 2월), ‘안종범 업무수첩 보도’(2017년 1월), ‘삼성 장충기 문자메시지 단독 입수’(2017년 8월), ‘현직 검사의 강원랜드 수사 외압 폭로’(2018년 2월), ‘명태균 공천개입 증거 의혹 보도’(2025년 3월) 등이다. 공동 취재나 특별취재팀 일원으로 받았고 끝까지 취재한 보도들이다.
대통령 취임식 날 검찰 출석하라는 전화
김 기자는 인터뷰 막바지에 검찰 수사 경험을 이야기했다. 얼마나 치가 떨렸던지 담당 검사가 검찰 옷을 벗고 나갈 때까지 그의 이름을 주기적으로 검색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에 쓴 ‘박근혜 5촌간 살인사건 3대 의혹’ 보도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2월25일 검찰 조사를 통보받았다.
검사실에서 담당 검사는 “이렇게 기사를 쓰는 건 시사IN을 더 많이 팔려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박근혜가 정말 싫은 건가요”라며 양자택일 질문을 던졌고 “둘 다 아닌데요”라고 답하자 “둘 다겠지”라며 반말 투로 대꾸했다. “외국에선 이런 기사를 쓰면 민사소송으로 언론사 문 닫게 할 벌금을 매긴다” 등의 말도 했다.
유죄를 단정하고 질문하는 검사도 못마땅했지만 그를 괴롭힌 건 검사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치사한 마음이었다. “당당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으면서도 이렇게 몰고 가는 게 검찰 수사란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10년이 넘었는데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그날 반나절 조사를 받으며 배운 게 참 많았습니다.”
이 사건은 기자 생활 내내 ‘검찰개혁’이라는 어젠다를 꾸준히 취재하고 보도하는 계기가 됐다. 검찰 조사 이후 그는 ‘기소유예’를 받았지만 불복했다. 재판으로 무죄를 받을 권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2018년 3월29일 헌재는 김 기자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였다. “2013헌마637 기소유예 처분 취소, 청구인 김은지, 피청구인 서울중앙지검 검사.… 이 사건 기사 내용이 허위 사실이거나 허위 사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기소유예는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이를 취소한다.”
그는 2022년 3월 김다은 기자, 국승민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과 함께 ‘20대 여자’를 펴냈다. 2021년 7월30일부터 8월2일까지 시사IN에서 진행한 웹조사를 바탕으로 20대 여성의 정치적 선택 등을 분석한 내용 등을 담은 책이다.
그는 그 책의 지은이를 소개하는 글에 이렇게 썼다. “성실하게 길어 올린 역사의 기록을 좋아한다. 첫 보도 만큼이나 끝 보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취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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