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은 뉴스가 돼도 '탈북 이후'를 알 기회는 드물었다

[책과 언론] 북에서 온 이웃 / 주성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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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북에서 온 이웃’ 저자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탈북민이다. 북한에서 출생해 김일성 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했다. 탈북 후 2002년 한국에 정착했고 그해 10월 한 주간지에 입사해 1년을 다니다 이듬해 동아일보 공채에 합격했다. 스물일곱 아무 것도 몰랐던 탈북청년은 그간 전문기자로 자리 잡았고 언론계에서 여러 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만 20년차 기자가 됐다. 책은 바로 그 탈북 기자가 쓴 22명의 탈북민 이야기다.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까지 탈북민 심층 인터뷰 시리즈 21편을 동아닷컴에 연재했고 최근 책으로 묶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계속 감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탈북민을 소개하려 한다. 이런 역사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역사 앞에 짊어진 탈북 기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이렇게만 보면 세계 유일 분단국 국민으로서 ‘탈북민’에 대한 어떤 편견이 올라온다. ‘살기 힘들어서 북한을 탈출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남한에 온 사람들’이란 시각. 한 개인의 삶은 그보다 훨씬 복잡다기하고 미묘하며 구체적일 텐데 생각은 거기서 더 나아가길 멈춘다. 탈북은 뉴스가 돼도 탈북 이후 그들이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는 기회는 드물기도 하다. 간혹 성공한 탈북민이 인터뷰로, 실패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기사로 등장하지만 여기서 한 인간의 모습을 보긴 쉽지 않다.


책은 이 공백의 지점을 탈북민 개개인의 고유한 이야기로 채워놓는다. 북에서의 삶, 탈북 결심의 이유와 과정, 남한 적응기, 현재의 모습 등 똑같은 질문을 해도 답은 제각각이다. 전 성악교수는 제자를 감시하라는 보위부 지시를 거부해 수감생활을 했고 이후 한국 제주에서 아르바이트, 호텔·리조트·치과 청소 등을 하며 남편과 아들 생사를 모른 채 지낸다. 한 영상제작사 대표는 북에서 식품회사 자재지도원을 하다 ‘고난의 행군’ 시기 나라 욕을 해서 체포됐고 중국, 몽골 등을 통한 탈북 시도 끝에 현재 경기 김포시에서 회사를 운영 중이다. 한 30대 여성은 18세 때 한국에 와 대학을 다니다 2013년 캐나다 유학에서 부자 중국 남성을 만나 결혼했고 이후 람보르기니 같은 고급승용차로 탈북자를 돕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 직전 한국으로 도망왔다. 현재 공기업에서 일하는 전 북한군 참모장은 돈과 함께 사라진 18세 딸을 찾아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거의 3000리를 행군한 끝에 한국에 넘어왔고 서울 조사기관에서 딸을 만났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대결 구도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상흔으로 존재하지만 이 책은 그런 맥락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떠나온 자로서 고충, 두고온 자로서 애환, 살아남은 자로서 확신을 가진, 발버둥치는 개인들의 스토리에선 오히려 영화 ‘미나리’, 드라마 ‘파친코’ 등 디아스포라 콘텐츠가 떠오른다. 18년 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3000여명, 지금은 약 3만5000명이다. 특수한 상황이 개인이란 점들의 이산(離散)을 만들었고 그 자취는 여러 선을 그리다 현재 하나의 면으로 우리 공동체에 자리 잡았다. 책은 이렇듯 우리가 가진 편견과 그들이 겪는 굴레 사이에, 경계인으로서 저자가 탈북민 개개인의 인터뷰로 놓은 돌다리라 할 만하다. 가교의 의미를 넘어 이는 “고향 사람들을 선진국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한 목숨 바치겠다”던 혁명 청년에서 “20년이나 살 줄 알았으면 일찍 아파트나 사 놓았을 걸 그랬다”는 농담을 하는 사람으로 변한 저자(페이스북 인용)만큼이나 이야기 자체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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