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용산공원 시범 개방

[이슈 인사이드 | 환경]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중세시대 약리학자 파라셀수스는 “모든 물질은 독이다. 중요한 것은 노출되는 양”이라는 말을 남겼다. 500여년 전 파라셀수스가 남긴 말대로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도 노출되는 용량이 적고, 시간이 짧다면 인체 악영향은 없거나 미미할 수도 있다.


정부가 용산공원을 시범 개방하면서 ‘주 3회, 하루 2시간, 25년간 누적 이용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독성학적 원리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공원 내의 유류오염 수준이 부지에 따라 다르며, 오염 정도가 높은 지점들에서도 단시간 머무는 것만으로는 인체 피해가 없거나 적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파라셀수스의 ‘독성’에 대한 원리에 비추어볼 때 용산공원 문제에서 더 중요한 지점은 ‘노출’이다. 노출의 중요성은 예를 들어 다이옥신류 물질 중에서도 가장 독성이 강한 2,3,7,8 TCDD의 경우라도 노출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용산공원 문제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노출이 없으면 건강 피해도 없다는 이치에 비춰보면 정부의 시범 개방은 그 자체로 시민들을 위험한 곳에 몰아넣은 조치에 다름 아니다. 시민들이 용산공원에 가지 않았다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위험을, 정부가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사실 “2시간은 괜찮다”는 정부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어온 유해화학물질 관련 사건마다 정부가 보여온 ‘기준치 만능주의’와도 궤를 같이 한다. 일정한 기준치를 정해놓고 그 미만으로 노출되면 건강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업을 두둔하고, 시민들의 건강 피해를 도외시해온 태도 말이다.


이 같은 기준치 만능주의는 과학적 불확실성과 사전예방주의를 무시한 행태이기도 하다. 기준치는 결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해당 물질이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어느 정도 위해성이 입증되었는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노출을 줄일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 결정된 수치일 뿐이다. 이는 과학이 발달하고, 유해물질 관련 정보가 축적되면 현재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농도가 미래에는 그렇지 않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용산공원에서 검출되었다는 중금속 납이 바로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기준치가 끊임없이 낮아지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자, 기준치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됨을 보여주는 근거다. 납은 어린이가 성인보다 체내 흡수율이 높고, 따라서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지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해물질이다. 즉, 어린이의 용산공원 탐방을 허용한 것은 어린이들이 납 노출로 지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정부의 국민 안전에 대한 관점이 독성학 수업을 들은 대학생만도 못한 수준이라는 점에는 분노를 넘어서 슬픔을 표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과 환경단체가 제기한 우려를 묵살하고, 설익은 공원 개방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정부는 국민 보호라는 최소한의 의무조차 저버렸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너무 이른 용산공원 개방을 중단하고, 이미 용산공원을 찾았던 국민들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그들에게서 나타날 수도 있는 건강 악영향을 장기간 추적 조사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을 최소한이나마 수습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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