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공영방송운영위 설치', 당론 확정으로 끝날까 우려

[민주당, 공영방송 관련법 발의키로]
사회 각 분야 대표하는 위원 25인
사장 선임시 다수 찬성하는 방식

국민의힘 반대… 합의될 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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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관련 법안의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여야가 7:4, 6:3 등의 비율로 이사를 추천하며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는데, 그 관행에서 벗어나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다. 정치권이 추천하는 이사회를 대신해 사회 각 분야 대표성을 반영한 25명의 위원들로 공영방송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장 선임 시 운영위원 다수가 찬성하도록 하는 방식이 주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아직 관련 법안이 없기에 민주당은 조만간 법안을 발의하고, 상임위에서 세부 내용을 조율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관련 법안의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별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뉴시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2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공영방송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2020년 말, 국민 100명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회’ 안을 내놓은 적이 있지만 여야 간 합의가 요원하자 절충안으로 이번 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별위원회 간사)실 관계자는 “시민들이 참여해 추천위원회를 만드는 것에 대해 국민의힘 쪽에서 완강한 반대가 있었다”며 “언론특위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한 끝에 이번 안을 제안하게 됐다. 다만 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회 안이 사라진 건 아니고,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안과 함께 상임위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열린 국회 언론특위 전체회의에서도 두 가지 방식이 모두 거론됐다. 정필모 민주당 의원은 A안과 B안으로 지칭하며 사장후보추천국민위원회 안과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안을 같이 설명했다. 공영방송운영위원회의 경우 미디어 분야의 전문성과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반영해 국회에서 6명, 광역단체장협의회에서 4명, 정부에서 2명, 미디어·방송 관련 학회에서 5명, 방송 관련 직능단체에서 8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기존 이사회보다 인원이 늘어나기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최소한의 활동비만 보장하는 명예직으로 운영하고, 임기는 3년 비상임으로 정한다는 설명도 나왔다.


정필모 의원은 “사장은 운영위원회에서 특별다수제로 선출한다”며 “두 차례 이상 부결 시엔 합의에 의해 선출이 안 되는 걸로 보고, 공론조사로 사장을 선출할 계획이다. 특별다수제는 3/5과 2/3 중 고민했는데 전자는 특정 정파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서 후자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다.


이번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안은 독일식 방송평의회 제도를 본 따 만들었다. 독일에선 사회단체와 직능단체, 정당, 종교단체 대표를 방송평의원으로 임명해 공영방송을 감독·규제하도록 하고 있다. 추천방식이나 절차, 임기는 방송사마다 제각각이지만 많게는 74명(남서독일방송·SWR)에서 적게는 17명(독일의소리·DW)까지 평의원을 두고 정치적 독립성과 재정안정성, 제작자율권을 추구하고 있다. 다만 제도에 대한 깊은 숙의 없이 독일식 방송평의회를 한국에 적용하는 데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당장 25명이라는 운영위원의 수와 인원 배분이 어떤 근거에 따른 것인지 현재로선 구체적 설명이 부족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독일처럼 방송사마다 50~60명의 평의원을 두는 건 부담스럽기에, 단순히 절반 수준인 25명을 제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지난 2018년 발표한 독일 방송평의회 제도 관련 논문에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독일과 다른 법제도 형성 과정과 제도 운영경험을 갖고 있다”며 “독일식 방송평의회 제도를 도입한다면 단순히 이사 수를 늘리는 수단이 아닌, 공영방송을 작동시키는 방식과 실효적인 감독 수단, 법제도적 엄정성에 대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회에서 공영방송운영위원회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지, 그 실현 가능성에도 의구심이 따르고 있다. 이번 언론개혁 내용이 검찰개혁 안과 같은 날 발표되며 현재 국회의 시선은 오롯이 검찰개혁에 쏠려 있다. 국민의힘은 ‘검수완박’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반발로 지난 14일 언론특위 회의에 불참하기도 했다.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안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 향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한편에선 정권 교체 시기가 돼서야 민주당이 법안을 처리하려 한다는 비판적 시각과 함께 방송평의회 모델로는 시민 참여 정신을 구현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연섭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은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하고 시민 참여가 보장되는 방안으로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5년 전 이용마 기자와 문재인 대통령이 만났을 때 약속했던 것도 그런 내용이었다”며 “공영방송운영위원회 안을 보면 운영위원을 뽑는 데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보인다. 시민 참여 정신이 제도에 더욱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이번 안에 미비점이 있다 하더라도 시급히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법안에 구체성도 없고, 시간도 촉박해 이번 안을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는 건 아쉽다. 그러나 이 안이 담고 있는 취지를 보면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척하려는 기제는 분명히 있다”며 “진일보한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이 수준이라 하더라도 저희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오랜 싸움을 해왔는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끝나버리면 새 정부 들어 공영방송이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불씨라도 살려 이달 안에 방송법 개정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단체들도 마지막 기회라며, 이달 안에 국회가 관련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압박하고 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지금이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4월 처리를 압박할 생각이다. 기자회견이나 성명서 등을 통해 언론단체들의 의지를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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