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소수자 이야기할 때, 광주전남에선 내 이름 함께 쓰였으면"

[시선집중 이 사람] '교육휴직' 내고 페미니즘 공부하는 정의진 kbc광주방송 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정의진 KBC광주방송(오른쪽) 기자가 석사 동기들과 스터디를 하기 위해 모인 모습. 1년간 휴직을 하고 서울에서 여성학을 공부한 정 기자는 지난 3월 복직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정의진 기자 제공

정의진 kbc광주방송 기자는 요즘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 국회를 출입하며 석사학위를 위한 종합시험을 준비한다. 서울방송본부에서 대선 이슈를 커버하며 일반대학원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듣는다. 평일엔 리포트를 쓰고, 주말엔 논문을 쓴다. 지역민방 기자는 10년간 기자생활을 하다 지난해 3월 1년간 휴직을 하고 서울에서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다. 당초 1년6개월 휴직이었지만 ‘학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해주면 좋겠다’는 회사의 6개월 이른 복직요구에 올해 3월 복직했다.


그렇게 “땅을 치고 후회한” ‘워킹던트’ 생활이 시작됐다. 복직 후 첫 학기, 매주 월요일은 전쟁통이었다. 오전 국회 출근 및 취재·기사작성, 점심시간 귀가 및 3시간 비대면 강의 참석, 수업 후 추가취재와 기사쓰기, 취재계획 보고 등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중간에 업무지시라도 오면 애가 끓었다. 그는 지난 25일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국회는 첫 출입인데 경찰만큼이나 접촉이 많이 필요한 곳이더라. 처음 한두 달은 수업만 간신히 따라갔다”며 “사실 이번 학기가 더 지옥인데 슬프게도 익숙해진 것 같다.(웃음) 회사 요구에 부족하지 않게 해보려 하는데 행사나 일정, 소화할 업무가 많은 목요일에 수업이 있어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갑작스런 휴직이었다. 계기라면 2017~2018년쯤 탐사팀에서 광주 내 대학 성폭력 사건을 두 달 가까이 취재한 경험이다. 피해자를 만나며 ‘이런 용어나 마인드, 태도는 상처가 될 텐데’ ‘겪어본 상황인데 왜 나는 자각하지 못했을까’ 늘 부족함을 느꼈다. SNS팀에서 광주여성민우회와 1년여간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지역에서, 또 언론사에서 젠더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잘 알려주려면 나부터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에 휴직을 결심했다. 여성학과가 있고 해당 시기 지원이 가능했던 서강대에 원서를 냈고 합격했다. 교육휴직 전례가 없었던 만큼 그는 “보도국장과 위 간부분들 한 분 한 분 만나 ‘어떻게든 공부해 보고 싶다. 1년 반이다’ 설득을 했고”, 회사는 휴직에 동의했다.

정 기자가 조교로 근무한 서강대 여성학과 사무실 표지 모습. /정의진 기자 제공


등교를 앞두자 여러 감정과 일이 따랐다. 2010년 뉴시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터 서울살이는 해봤지만 지역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지역 언론에서 일하는 그에겐 연고가 없었다. 휴직 직전 주말, 월세가 비교적 싼 경기 김포에 집을 구하고 생필품과 옷가지 몇 개만 챙겨 이사를 했다. 학부 때 못해본 조교도 해보고 강의실에 앉아 설렘도 느꼈다. 무급휴직이라 등록금, 생활비, 월세, 경조사비 등 지출만 있고 벌이가 없는 통장잔고는 늘 신경쓰였다. 대학졸업 후 10년 만에 하는 공부를 따라가지 못할까 두렵기도 했다. “많은 걸 제쳐놓고 왔기 때문에 많이 얻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작지 않았다. “한 학기 세 과목을 듣는데 매주 각 수업마다 논문 2~3개를 읽고 논평을 쓰고, 발제를 맡은 날은 발표 준비도 하고, 기말과제 기간엔 밤 3~4시까지 공부하고, 만만치 않았어요. 그게 재미있더라고요.(웃음) 공부하다 제주도도 다녀오고,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어요. 기자를 10년 하니까 역할보다 자리에 취하는 상황이 많아졌는데 제 자신을 성찰하는, 쉼표의 시간이 필요했구나 싶었어요.”


공부를 시작하며 줄곧 ‘여성의 노동’에 관심을 가졌다. 학회에서 언론계 여성노동자이자 지역언론 종사자로서 겪는 현실에 대해 두어 차례 발제를 했다. 석사논문은 ‘돌봄노동’과 관련해 쓰는 중이다. 남은 휴가조차 논문을 위한 인터뷰나 종합시험일에 써야한다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알찬 시기를 보내는 그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젠더나 소수자 이야기를 할 때 적어도 광주전남지역에선 제 이름이 함께 쓰였으면, 저를 통해 기자 역할 안에서 변화하는 부분이 생겼으면 하는 게 바람이죠. 후배 기자들이 고민해서 쓴 기사가 데스킹을 거치면 (젠더 측면에선) 원래대로 돌아와요. 설득이 필요한데 거칠 문이 3~4개라면 하나는 뚫을 수 있었으면 하는 거고요. 지역에선 흔치 않은데 젠더데스크나 전문기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오면 벅찰 거 같아요.”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