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위반 넘어 범법까지… 기자 사회 시선도 차갑다

"당사자 넘어 언론사가 적극 대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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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또다시 질타의 대상이 됐다. 언론윤리 위반을 넘어 현직 기자들이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고, 취재과정에서 경찰을 사칭해 형법(공무원사칭죄)을 어긴 정황도 드러났다. 범법 행위일 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언론계가 공들여온 언론윤리 재확립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다. 이를 바라보는 기자사회의 시선 역시 차갑다. 또 다른 일탈을 막으려면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언론사와 언론계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조선일보 논설위원에서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 대변인으로 직행했다가 10일만에 사퇴한 이동훈씨와 엄성섭 TV조선 앵커, 이가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이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가 건넨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기자사회에 충격을 줬다. 경찰은 이들이 재직 중 김씨로부터 고급 수산물, 수백만원 상당의 골프채, 차량 등을 제공받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달 초에는 MBC 양모 기자와 소모 PD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논문 표절 의혹을 취재하면서 일반인을 상대로 경찰을 사칭해 논란이 일었다. MBC는 지난 9일 취재진의 경찰 사칭 사실을 인정하고 취재윤리 위반에 사과했지만, 공무원자격사칭죄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사안은 윤 전 총장 측의 고발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업자에 금품 수수·접대 의혹... 취재하다 일반인에 경찰 사칭

기자들의 잇따른 범법 행위와 일탈에 기자사회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지난 2016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의 호화 접대 사건’과 ‘김영란법’으로 불린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현직 기자 여러 명이 금품 비리 의혹에 연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사 기자가 또 비슷한 사건에 휘말린 조선일보를 비롯해 TV조선, 중앙일보는 이번 금품 비리 의혹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언론사들의 대처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위원은 “문제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일탈에 대한 조직의 대처다.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취재원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고 기사를 거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며 “조선일보, TV조선, 중앙일보는 독자들에게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직업윤리 위반을 엄중히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MBC 기자의 경찰 사칭도 동료 기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종합일간지 사건팀 소속 10년차 기자는 “어딜가든 기자 신분을 밝히라고 배웠고 제 후배 연차들도 당연히 그렇다”라며 “사이비 매체에서 출입처나 취재원과의 친분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기자가 경찰을 사칭하는 사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중앙언론사 사회부장도 “경찰 사칭은 생각해본 적도, 주변에서 그랬다는 말도 들어본 적 없다”며 “기자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언론윤리 문제”라고 말했다.

조선·중앙 등 자사 기자 연루에도 소극적 대응… 비판 목소리 나와

한겨레 기자 출신인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경찰 사칭 옹호 발언도 기자들의 비판을 불렀다. 김 의원은 지난 12일 “나이 든 기자 출신들은 (경찰 사칭이)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가 이튿날 “제 불찰”이라며 사과했다.
페이스북에서 김 의원의 발언을 지적한 이재훈 한겨레 기자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엔 그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현 시대 기자들은 경찰이나 권력자를 사칭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 한다”며 “어떤 현장의 열악함을 고발하기 위해 위장취재를 할 때도 법적 문제를 따지고 취재원들에게 기사화 허가를 받는다. 취재과정이 윤리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걸 다들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사회에 올바른 언론윤리 의식이 뿌리내리려면 개별 언론사의 의지와 언론단체 등 언론계 전반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난 1월 9가지 언론윤리 원칙을 담은 ‘언론윤리헌장’을 제정한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지난 6월 실천협의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윤리 원칙 확산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기자협회 차원에선 이번 MBC 경찰 사칭의 경우,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들어오면 절차에 따라 소명 요청과 회원 자격에 대한 징계 여부 등을 판단할 방침이다.

 

30년간 기자생활을 한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기자의 윤리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문제가 터질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준, 원칙, 규범을 만들고 누군가 끊임없이 휘슬을 불도록 제도화해야 또 다른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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