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 보도' 사라진 자리 꿰찬 '온라인 커뮤니티 보도'

[언론사들, 포털 편집판에까지 배치]
실검 대응 땐 시사 이슈라도 썼지만
이젠 젠더갈등·엽기 찾아 기사작성
취재 없이 외신 받아써… 오보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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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 케밥 판매’ 30대女 체포…8년간 150억 벌었다[글로벌+]>(한국경제), <34세 초등 여교사 결혼의 조건...“연봉 1억·자가 있으신 분”>(중앙일보). 한동안 포털 네이버 뉴스에선 해당 내용의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실제로 이들 기사는 보도 당일 네이버 뉴스 내 언론사별 ‘많이 본 뉴스’에서 각각 1위와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수많은 클릭을 받았지만 선정성이 도를 넘어섰고,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해당 기사는 대표적으로 검증 없이 받아쓰기한 ‘세상에 이런 일이’류의 외신 인용 해외 토픽, 온라인 커뮤니티 발 보도들이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 서비스 폐지 이후 이어진 언론의 과도한 포털 대응, 트래픽 장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해외 토픽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발 보도량은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지난 1월1일부터 6월21일까지 ‘데일리메일’을 검색한 결과, 데일리메일 인용 보도는 1321건으로, 전년 동기(771건)보다 1.7배 늘어났다.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인 데일리메일은 국내 언론이 ‘세상에 이런 일이’류의 해외 토픽을 쓸 때 가장 빈번하게 인용하는 매체다. 보도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영국 내 소식보다 미국, 인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뉴스가 대부분이다.


커뮤니티 발 보도는 같은 기간 1만1821건으로 전년 동기(8292건)보다 3500여건 증가했다. 빅카인즈에 “온라인 커뮤니티” “인터넷 커뮤니티” “커뮤니티 사이트”로 검색한 결과다.


지난 2월 네이버의 실검 서비스 폐지는 커뮤니티 발 보도와 선정적인 내용의 해외 토픽 기사가 늘어난 분기점이 됐다. 언론사가 실검 대응 기사 대체재로 커뮤니티 발 보도, 해외 토픽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는 의미다. 종합일간지 온라인부서 소속인 A 기자는 “실검이 사라진 이후 다양한 시도의 일환인 거다. 실검 대응을 할 때는 그나마 시사 이슈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말초적인 내용이 더 많아졌다”며 “온라인 기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하고 있다. 최근 이런 기사들이 소위 ‘먹히는’ 걸 보고 타사에선 커뮤니티 발 보도, 해외토픽 류 기사만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외신 보도를 취재 없이 그대로 받아쓰면서 오보를 양산한 사례가 수차례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13일 한국경제가 처음 보도한 이후 여러 언론사가 따라 쓴 ‘인육 케밥’ 기사는 SBS가 주 가나 한국대사관에 취재한 결과 해당 사건은 가나 내에서 확인된 바가 없고, 인터넷 가십을 다루는 매체에서만 보도된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 16일 뉴스1은 터키 매체 보도를 인용한 <터키 여행 한국인 남성, 함께 간 여성 성고문...징역 46년 구형> 기사에서 해당 매체가 무단 도용한 한국인 사진을 사실 확인 없이 사용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발 보도에서도 지난 1일 중앙일보 <얀센 女 먼저 맞으면 나라 뒤집히나 여초서 남녀차별 논란> 기사처럼 얀센 백신 접종과 관련해 여초 커뮤니티에서 나온 주장을 그대로 보도해 마치 성별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처럼 언급해 젠더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21일 파이낸셜뉴스 <“박성민, 대놓고 페미 그 자체인데” 친문 커뮤니티서도 반발> 기사는 커뮤니티 게시글 속 성차별, 혐오 표현을 그대로 중계해 해당 의견을 마치 정당하고 대표적인 여론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사들을 언론사가 직접 네이버 모바일 ‘언론사 편집판’에 배치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2019년 3월 네이버가 AI 편집으로 뉴스 정책을 바꾸며 언론사의 심층, 기획 기사가 묻히고 실시간 이슈 중심의 스트레이트 기사 소비만 늘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그나마 언론이 의제설정 기능을 할 수 있었던 언론사 편집판마저 트래픽을 위한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3일~22일 네이버 모바일 언론사 편집판을 모니터링한 결과 동아일보 <“다 벗고 마스크만”…알몸 자전거 대회 2년만에 재개>, 조선일보 <다 벗고서 얼굴만 가린다…누드 자전거 대회 수천명 진풍경>, 중앙일보 <제왕절개 칼이 아기 그었다···신생아 보고 기절할뻔한 엄마>, 한국경제 <대기업도 불륜 사건 터졌다? 머리채 잡힌 사진 일파만파 [법알못]>, SBS <결혼 잊고 아내에게 “결혼해 줄래”…美 울린 치매 남편> 등이 언론사 편집판에 배치돼 있었다.


중앙언론사 디지털부문 총괄 간부는 “기사들이 네이버 언론사 편집판에 올라가면 조회수가 엄청나다”며 “해당 기사 조회수가 높으면 AI가 ‘MY뉴스’로 픽업해 기사를 더욱 확산시킨다는 얘기도 돈다. PV를 100이라고 보면 언론사 편집판을 통해서 들어오는 게 30~40이고, 나머지는 MY뉴스 영역이다. AI가 작동해서 이런 기사의 PV를 더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A 기자는 “기존 실검 대응 기사는 실검을 통해 독자가 쉽게 클릭이 가능하지만, 커뮤니티 발이나 해외 토픽을 보려면 해당 섹션에 들어가야 볼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PV를 높이려면) 언론사 편집판을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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