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중국 기원설'과 '트럼프 효과'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코로나19는 중국의 실험실에서 만들어져 유출됐다.”


“5G 이동통신 설비를 통해 코로나19가 확산된다.”


“빌 게이츠가 코로나19를 퍼뜨린 뒤, 백신 접종 과정에서 인체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해 세계를 통제하려 한다.”


지난 1년여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세계적으로 확산된 음모론 중 일부다. 대부분 터무니없는 괴담 혹은 유언비어로 일축됐지만 코로나19가 중국의 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주장이 최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로 미 정보당국이 해당 주장을 포함해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최초 감염자가 보고된 뒤 이른바 ‘우한 연구소 기원설’은 코로나 초기 설득력 있는 주장의 하나였다. 이 지역에 박쥐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시설이 있고, 미 국무부가 2018년에 작성한 외교전문에서 해당 시설이 중증호흡기증후군(SARS)과 같은 팬더믹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 안전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주장은 힘을 받는 듯 했다. 하지만 이는 곧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치부됐다. 코로나19의 진원지가 실험실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과의 접촉일 가능성이 크다는 과학계의 목소리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태 초기부터 바이러스가 우한의 연구소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문제는, 평소 그의 언행과 평판 때문에 해당 주장마저 신빙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입만 열면 가짜 뉴스를 남발하고, ‘중국 바이러스’, ‘쿵플루( Kung Flu)’ 등의 언어 사용으로 중국에 대한 혐오 감정을 자극해온 탓에 언론은 트럼프의 말이라면 귀 기울이지 않았다. 연구소 유출설은 그의 특기인 거짓선동쯤으로 치부됐고, 자연히 이에 대한 조사도 흐지부지됐다.


‘트럼프의 음모론’으로 여겨지던 주장을 바이든 행정부가 재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최근 언론 보도로 여론의 향방이 바뀐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정부의 비공개 보고서를 인용, 첫 감염자가 보고되기 한 달 전 우한 연구소의 연구원 3명이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세로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어, 2012년 중국에서 박쥐 배설물을 청소하던 광부 3명이 의문의 폐렴 증상으로 숨졌으며,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전 중국 당국이 우한 일대에서 야생동물 표본을 대규모 추출해 검사에 나선 사실도 보도했다. 여론은 우한 연구소 유출설로 다시 들썩였고, 과학계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주목할 것은, 연구원들에 관한 비공개 보고서의 내용은 새롭게 확인된 사실이지만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유출됐음을 보여줄 결정적 증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 초기 알려졌던 사실들과 함께 우한 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에 대한 정황 증거일 뿐 실제로 연구소가 사고 또는 고의로 바이러스를 유출했다는 단서는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박쥐 배설물로 인한 폐렴과 야생동물 표본 조사는 이미 지난 2월 세계보건기구 조사단의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었지만, 언론은 이를 간과했다. 다시 말해, 팩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언론의 입장과 기류가 달라졌을 뿐이다.


음모론은 불확실성이 높은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먹고 자란다. 코로나19처럼 복잡한 사안에 대해 거대 세력의 음모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간단명료한 설명은 대중들에게 설득력있게 들릴 수 밖에 없다. 음모론은 종종 가짜뉴스 취급을 받지만 가짜뉴스와 달리 추후에 사실로 드러나기도 한다.


트럼프 임기 동안 학습한 “트럼프는 항상 틀리다”는 편견 때문에 언론은 감염병의 근원에 대한 사실검증 의무를 소홀히했다. 하지만 우한 연구소 유출설에 다시 불을 지핀 것도 언론이다. 이제라도 1년 반 동안 세계를 위협한 감염병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은 언론의 과제다. 설혹 그것이 “트럼프가 옳았다”는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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