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지면·디지털 사이에… '콘텐츠', '혁신피로' 고민

[이슈 추적] '신문제작·디지털 분리' 중앙·한국·한겨레·경향… 성과와 변화, 과제는

국내 언론사 중 디지털 혁신에 가장 이르게, 또 적극적으로 나선 중앙일보가 신문과 디지털 조직을 분리하는 개편을 단행한 지 4년이 지났다. 지난해 한국일보가 이 방식을 도입하고, 올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본격 시행을 앞두는 등 ‘신문제작과 디지털 분리’가 국내 신문사들의 디지털 전환 방법론으로 확산된 모양새다.


신문 제작에 최적화된 신문사가 ‘디지털로 무게추를 옮긴다’는 방향은 결코 실행이 쉽지 않다. 조직운영과 기자 개개인의 취재관행, 습관, 뉴스가치 판단 등 업무 근원에 놓인 부분들부터 변화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여서다. 최근 분리를 실험 중인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선 이 맥락에서 혼란과 고민, 어려움을 말하는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디지털에 걸맞은 콘텐츠가 무엇인지 이를 위한 최선의 방식이 어때야 하는지 등을 두고 합의와 공감대가 없다’는 토로가 대표적이다. 먼저 분리를 시행해 유사한 일을 겪은 신문사들도 다음 단계를 마주했을 뿐 고민은 진행형이다. 한국일보에선 기획 강화에 따른 스트레이트 부서 인력난이 주요 과제로 부상했으며, 중앙일보에선 오랜 기간 끊임없는 혁신과 업무 증가로 지속불가능이 얘기될 만큼 누적된 기자들의 높은 피로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www.freepik.com


분리가 디지털 전환의 정답인진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 신문사는 큰 결단을 감행했다. 분리는 애초 그 자체로 목표라기 보단 수단이기에 향후 언론사별 지향에 따라 실현 방식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공통점은 신문 제작에 온 힘을 쏟는 기자들의 일상을 바꾸지 않고서 디지털에 최적화한 형식과 내용의 콘텐츠와 이용자에 대한 고려, 나아가 디지털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인식뿐이다. 이제 막 ‘신문제작과 디지털 분리’ 첫발을 뗀 언론사들의 고민, 먼저 몇 발을 내디딘 곳의 그간 성과와 변화, 현 시점의 과제를 살펴본다.


◇경향, 구체적인 디지털 실행방안 부재
‘오는 7월 신문·디지털 완전 분리’를 선언한 경향신문은 지난달 17일부터 정치부, 사회부·정책사회부를 대상으로 이 체제를 시범 운영 중이다. 기사 생산과 지면 제작을 분리해 지면 부담을 줄이고 디지털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들자는 취지로, 앞서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한겨레신문이 도입한 방식과 큰 틀에서 동일하다.


경향신문은 지난 4월 디지털 전환 일정을 확정하면서 오는 7월 편집국과 별도로 신문 제작을 전담하는 ‘신문제작국’을 신설하고 산하에 신문에디터 7명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차기 편집국장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이달 신임 국장이 취임한 이후 조직개편이 있을 예정이다.

[경향, 4년 만에 다시 디지털 드라이브] 기자들, 온라인서 뭘 쓸 지 우왕좌왕

경향신문의 디지털 중심 개편은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에도 취재기자들은 디지털 기사에 집중하고 에디터들이 이를 재가공해 지면에 싣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결국 ‘지면을 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개월 만에 잠정 중단됐다. 다시 시도하는 이번 개편은 4년 전과 방향성은 같지만 지난 실패를 발판으로 ‘체제 분리-콘텐츠 품질 향상의 선순환’을 이끌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2주간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경향신문 기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예전보다 아침보고 시간이 30분 앞당겨졌고 기사 매수와 출고 시간도 적어내지만 정작 어떤 디지털 기사를 써야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어서다. 취재기자들에게 맡긴 실시간 이슈 대응 역할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다. 기존 모바일팀 해체로 현재 정치부, 사회부·정책사회부에선 취재기자들이 돌아가며 오전 7시에 출근해 실시간 이슈대응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경향의 디지털 방향이냐’는 의문이 나온다.


경향신문 A 기자는 “부서별 조출자 역할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지 다들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경험이 누적되면 디지털에 적합한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지만 일만 더 늘었다는 회의론이 커지면 디지털로 가는 동력과 화살표 자체가 흔들릴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겨레 “후원제·디지털 전환 공감대 확산” 숙제
한겨레는 지난 3월 말 조직개편에서 기자들이 지면 부담을 줄이고 콘텐츠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집국장 아래 ‘콘텐츠총괄’과 ‘신문총괄’을 분리·신설했다. 지면 제작은 신문총괄이 관할하는 에디터부문장과 7명의 에디터가 전담하고, 콘텐츠와 신문 간 개입 최소화를 원칙으로 세웠다.


한겨레의 디지털 전환은 지난달 도입한 후원제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한 밑바탕이다. 디지털에서 독자 친화적인 콘텐츠로 새로운 독자를 끌어들이고 고품질 콘텐츠로 신뢰를 쌓아 후원자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겨레는 조직개편을 ‘콘텐츠 강화를 위한 공정 전환’으로 명명했다.

[한겨레, 디지털 후원제로 새 독자 유치] 품질 저하 우려… ‘1면 톱’ 기근 호소

개편 이후 두 달이 흐른 현재, 한겨레 내부에선 ‘콘텐츠 전략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에서처럼 ‘디지털에 맞는 한겨레 콘텐츠’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들은 ‘디지털 전환과 후원제에 대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개편 이후 기사 품질이 떨어졌다’고 토로한다.


한겨레 B 기자는 “디지털 출고가 우선이고 발제하는 족족 다 써야한다는 부담이 생기다보니 전문가에게 물어보거나 기사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줄었다. 통신사 기사와 똑같은 형태가 된 것 같다”며 “후원제를 위해 디지털 전환을 한다는데 제 기사만 봐도 독자들이 후원해줄 만한 콘텐츠가 많지 않다. 좋은 콘텐츠와 후원제 도입의 우선순위에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의제 설정 기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전보다 기사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내부 비판 속에서 ‘1면 톱기사’가 기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한겨레가 그날그날 내세울만한 기사의 힘이 약해졌다는 의미다. 한겨레 C 기자는 “한겨레만이 가질 수 있는 신문으로서의 강점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디지털에선 무엇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며 “지금 상황을 보면 그동안 한겨레가 보여줬던 신문과 디지털의 장점이 모두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파악하고 보완책을 찾기 위해 부서별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임석규 한겨레 편집국장은 “우리가 왜 디지털 전환을 하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현장에서 혼란이 있다. 부서별, 개인별 차이도 크다”며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즉각 고칠 수 있는 부분은 반영하고 후속 조치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이슈 파이팅’ 약화 우려… ‘양적 도약’ 고민
한국일보는 지난해 7월 기존 편집국을 뉴스룸국과 신문국으로 분리한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신문·디지털 분리’의 첫 발을 뗐다. 대다수 기자가 속한 뉴스룸에선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토대로 신문국장, 신문부문장, 에디터 등 소수인력(7명)이 신문제작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초기 CMS 오작동 등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한국일보만의 콘텐츠 방향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합의나 결정이 없다보니 PV를 평가 잣대로 삼는 분위기가 심화되고 이에 속보처리 등 업무강도만 증가했다’는 불만이 기자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이 같은 분위기는 그해 11월 양질의 콘텐츠 제작과 다양한 실험을 장려하는 질적 개편이 이뤄지기 전까지 이어졌다. 후속 개편은 기존 뉴스1~3국으로 나뉜 뉴스룸국을 뉴스부문(스트레이트 뉴스 총괄)과 디지털기획부문(실험, 기획)으로 이원화했다. 어젠다기획부, 인스플로러랩, 애니로그랩이 신설됐다. 커넥트팀을 둬 ‘언론사-독자’, ‘기자-간부’ 사이 가교 역할도 맡겼다.

[한국, 양과 질 ‘두 토끼’ 모두 잡는 개편] 실험 방점, 지쳐가는 스트레이트 부서

최근 한국일보에는 스트레이트 부서 기자들의 인력난과 피로를 우려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기획, 실험에 방점이 찍혀 스트레이트 부서 기자가 줄면서 ‘이슈 파이팅’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한국일보 스트레이트 부서 D 기자는 “기획 취재 부서가 일선에서 하기 어려운 장기 기획을 하는 건 좋은데 저희 부서로선 인력이 많지 않다보니 일주일 단위나 캘린더 기획을 하는 게 어려워졌다”며 “인력 부족도 부족이지만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인데 임의로 판단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지 않나. 아직 과도기인 측면이 있다”고 했다.


김혜영 한국일보 커넥트팀장은 “신설 콘텐츠 부서에서 생산하는 기획, 탐사물이 호평 받고 있지만 남다른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유일무이한 사명이 아니지 않나. ‘이슈 파이팅’에도 존재감을 보이는 게 한 갈래일 텐데 구성원이 지칠 수밖에 없어 돌파구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의사결정 주체는 책임을 덜어줬다고 믿는데 현장에선 확신이 없을 수 있다. 안 쓴다는 건 책임을 지는 무거운 일이기에 분석을 통해 무엇을 덜지 더 명확한 지시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기자가 모든 걸 다 쓰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적 지표의 더딘 성장 역시 과제가 된다. 분리 후 콘텐츠 관련 내부 합의는 ‘저널리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디지털 친화 콘텐츠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에 실시간 이슈대응과 속보처리도 전담 부서를 두지 않고 취재기자가 담당토록 했다. 모든 속보를 쓸 경우 분리 취지를 훼손할 수 있기에 기사 수를 줄이는 방침이 공유됐다. 방향에 대한 공감대는 크지만 “콘텐츠들이 박수는 받는데 대중들에게 발견은 덜 되고” “수치적으로 도약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 내부에선 고민거리다.


분리 약 1년을 맞은 한국일보에선 “신문을 뇌리에서 지운다는 일이 생각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가 체감한 한 해였다”는 평이 나온다. 뉴스룸국 기자가 신문국 간부로부터 ‘1톱3박’ 신문 형식 기사를 직접 요구받던 일은 사라졌지만, 신문의 자장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국일보 E 관계자는 “여전히 기자별 디지털 전환 이해도와 인식차는 크다”며 “중앙일보가 처음 분리를 했을 때 내부에선 ‘되겠냐’는 비판이 많았다. 방향이 맞는지를 떠나 몇 년 지난 지금 보면 한 단계 더 나아가 있고 그건 과정을 겪어야지만 가능한 건데 해보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있는 듯하다.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중앙, 구성원 임계치 다다른 ‘혁신 피로’
국내에서 디지털 전환을 가장 과감히 실행해 온 언론사로 평가받는 중앙일보는 2015년 자체혁신보고서 공표 이래 지속적으로 현장 기자와 신문제작을 분리하는 기조를 이어왔고 2017넌 3월부턴 본격 이행에 들어갔다. 분리 이후 중앙일보는 ‘네이버 구독자 수 1위’ ‘네이버 뉴스 점유율 1위’ 등 여러 정량적 지표에서 성과를 보였다. 디지털 뉴스 이용자에게 읽히는, 아이템 선정과 기사 쓰기, 제목 설정, 출고시간 고려 등 콘텐츠 제작 역량이 기자 전반에 내재됐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자산이다. 펜기자 역할을 넘어선 영상제작, 뉴스서비스 기획, 타 직군과 협업 등이 보편화된 측면도 있다. “데스크급들이 회의에서 이 시간대 기사를 내야 보더라는 경험칙을 활용하더라”는 말처럼 변화는 분명하다.


수년 간 혁신이 일상이 되며 기자들이 높은 피로도를 호소하고 지속불가능을 토로하는 지점은 과제다. 예컨대 중앙일보는 최근 ‘뉴스 ONE SHOT’이란 서비스를 내놓으며 팀장 18명, 전문기자 8명에게 한 주 이슈를 정리하는 ‘팀장의 픽’, ‘전문기자의 촉’ 등 키워드 기사, 칼럼을 거의 매주 내도록 했는데, 기존 격무에 피로감을 더 하는 경우란 비판이 나온다. 중앙일보 F 기자는 “토요판을 중앙선데이가 담당하다보니 출고기사 수 감소 등으로 중앙일보의 주말 트래픽이 떨어지는 일이 나타났다. 주 52시간 때문에 토요일엔 근무를 할 수 없으니 평일에 예약출고를 해야한다”며 “상반기 인사 때 데스크도 보고 기사도 쓰는 실무형 팀장이 대거 발령이 나며 업무부담이 작지 않았는데 부담이 더해졌다. 주니어 기자들에게선 불만이 나올 걸 아니 팀장급에 주문을 한 건데, 지난 5년간 쌓인 게 폭발하기 직전”이라고 했다.

[중앙, 기자들이 ‘펜 기사’ 역량 넘어서] 팀장들, 데스크 보며 기사 쓰는 격무

중앙일보 G 기자는 “점유율과 구독자 수는 올랐고 타 매체가 모델을 따라하는데 정작 우린 탈출구가 안보인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어떻게 바뀌는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걸 하다 저걸 하고, 또 다른 걸 하다 너무 지쳤다”고 했다.


분리 4년이 넘은 중앙일보에선 ‘신문은 신문답게, 디지털은 디지털답게’란 원칙이 체화된 상태다. 중앙일보A에선 15년차 이상 중견기자가 ‘콘텐트제작에디터’(14명)란 보직을 맡아 분량조절은 물론 디지털 기사에 해석과 설명을 더한다. 고품질 지면기사 ‘뷰(VIEW)’도 제작한다. 중앙일보M에선 모바일 스토리텔링에 집중한다는 구호를 넘어 기존 신문문법을 벗어난 일반 기사가 다수 생산되고 있다. 젊은 기자들의 온라인 기사에 “신문사가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니라 뉴스를 다루는 모바일 콘텐츠 회사가 내놓은 콘텐츠”란 내부 평이 나올 정도다. 실제 부문간 콘텐츠 성격 차이도 확연해 온·오프라인 뉴스가치 판단이 별도로 작동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다만 양적지표 성장에 방점을 둔 디지털 콘텐츠 생산은 EYE팀 중심의 속보, PV가 최우선시 되는 기사생산 기조로 이어져 회사 내외에 우려 섞인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앙일보의 ‘신문·디지털 분리’는 분리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측면을 드러낸다. 기자들 인식에서 지면은 상당히 약화됐지만 여전히 부서나 콘텐츠 특성상 지면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고, 출입처나 취재원이 지면을 바라는 외부 환경도 여전해서다. 이는 분리는 답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최대한 분리 기조를 엄밀히 적용해야 간신히 신문기자들의 머리에서 신문을 지우는 것이 그나마 가능해진다는 의미에 가깝다. 중앙일보 H 기자는 “‘신문을 놓았다?’ 그렇겐 안 된다. ‘일 열심히 하네’ 같은 사내 평판으로 중요할 뿐더러 연예계나 벤처기업은 아니지만 관공서나 정치권 등에선 여전히 지면을 바란다. 세대가 바뀌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본다는 정무적 메시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점이 아직은 있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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