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처럼, 요리 안에 담긴 콘텐츠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자 그 후] (28) 장준우 셰프 (전 아시아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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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주택가 사이에 있는 독특한 건물 한 채. EBS ‘건축탐구-집’에 나와 입소문을 타기도 했던 이 건물은 공동체주택 ‘써드플레이스 홍은 2’다. 이 건물 1층엔 건축가의 철학에 맞게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14석 규모의 작은 와인바 ‘어라우즈(arouz)’가 자리하고 있다. 시선이 닿는 곳곳에 와인과 요리책이 놓여 있어 절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다. 음식작가이자 요리사인 장준우 셰프는 5개월 전부터 이 곳, 어라우즈를 운영하고 있다. ‘일깨우다’ ‘자극하다’ 등의 뜻을 가진 ‘arouse’의 발음에서 식당 이름을 따왔듯, 음식을 통한 특별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어 이 공간을 차렸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주택가 한가운데 ‘어라우즈(arouz)’가 있다. 14석 규모의 작은 와인바다. (사진 장준우 셰프 제공)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나 ‘수요미식회’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아봤을 테지만 그는 6년 전까지만 해도 기자였다. 2013년부터 3년여간을 아시아경제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2016년 1월에 퇴사했다. 호기심이 많아 적성에 맞을 거라 생각했지만 몇몇 부서를 옮기며 회의감과 피로감만 들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오히려 퇴근 후 집에 와서 하던 요리에 흥미를 느꼈다. 장준우 셰프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친구나 주변 지인들을 초대해 요리를 하면서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장 기자 일은 너무나 안 맞았고 미래도 안 보이는데 그렇다면 버티는 게 더 용기 있는 일 아닌가, 그래서 특별한 계획 없이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퇴사한 그 해, 그는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로 “도망을” 갔다. 학비가 저렴하기도 했고 시칠리아 섬에 대한 로망도 한 몫 했다. 그곳에서 1년여간 실습하며 음식과 와인을 배웠다. 그러나 문화적인 배경 지식 없이 그저 요리를 하는 것에 그는 어느 순간 답답함을 느꼈다. 재료며 조리법이며 먹는 방식까지 그 기원을 속속들이 알고 싶었다. 결국 그는 주방을 떠나 유럽 10개국 60여개 도시를 돌며 음식 기행을 하기 시작했다. 퇴직금도 떨어지고 현장실습은 무급으로 일했기에 돈이 없어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낮에는 곳곳을 누비고 밤에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모아 책을 준다는 조건이었다.


장 셰프는 “막상 유럽을 다니니 기자 경험이 몸에 배어 계속 ‘야마’가 보였다. 특히 서양 요리나 음식 문화는 한국 음식에 비해 콘텐츠가 적어 배운 것들, 본 것들을 취재하듯이 하나하나 썼다”며 “일종의 마감처럼 매일 글을 썼고, 그 글들이 쌓여 한국에 돌아와서도 책을 내고 음식작가로 활동했다. 그 덕분에 작가들에게 연락이 와 TV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준우 셰프는 유럽 10개국 60여개 도시를 돌며 음식 기행을 했다. (사진 장준우 셰프 제공)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작업실을 만들어 음식도 하고 유럽도 왕복하며 미식투어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행을 못 가게 되면서 “언젠가 열고 싶었던” 식당을 조금 빨리 열게 됐다. 손님들과 소통하고 음식 얘기도 할 수 있는 규모로,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토종 식자재들을 써 와인과 함께 즐기는 미식 공간이다. 한국 흑돼지를 유전적으로 복원한 재래돼지와 여물을 끓여 먹인 화식한우, 유기농 토마토 등 고급 식재료를 고정으로, 조리법을 바꿔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


장 셰프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요리한 사람보단 요리를 못할 테니 차별점을 찾기 위해 콘텐츠에 집중했다”며 “결국 음식도 알아야 맛있다.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사회상을 전달하는 기자처럼 저 역시 손님들에게 요리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콘텐츠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래서 기자로서의 정체성은 아직도 중요하다. 기자로 살았던 때는 괴로웠지만 요리를 만나면서 오히려 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흔히 ‘기자 그만두곤 홍보밖에 할 게 없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전혀 다른 일을 하면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직업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자를 그만둘 생각이라면 그 정체성을 활용하라고도 했다.

 

와인바 ‘어라우즈(arouz)’에서 장준우 셰프. (사진 장준우 셰프 제공)

장준우 셰프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설 예정이다. 요리사 일을 평생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장 셰프는 “일을 빨리 지겨워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동력이 생기는 성향이다. 빨리 싫증내는 걸 옛날 관점에선 ‘근성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걸 동력으로 삼아 내 커리어를 계속 쌓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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