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해보자"… 7년차 기자, 파일럿 되다

[기자 그 후] (27) 원요환 파일럿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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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직전에 못 먹은 빵이 생각날 것 같아요, 아니면 못 다 이룬 꿈이 기억날 것 같아요?” 낡은 명언집 어느 한 구석에 실려 있을 것만 같은 그 얘기를 술에 취한 후배가 꼬부랑거리는 발음으로 말했던 적이 있다. 이대로 살 것인지, 한 번 도전해 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던 차 떠오른 기억이었다.


그의 삶은 평탄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해,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로 7년 가까이 일했다. 교과서에 가까운 삶이었고, 정석이라면 정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긴데, 더 늦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전부 내려놓았다. 스스로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원요환 전 기자는 2017년 어느 날, 그렇게 매일경제신문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원요환 파일럿은 지난해 1월 3년여간의 공부 끝에 중동 최대의 저비용항공사가 운영하는 파일럿 학교를 수료하고 정식 파일럿이 됐다. 현재는 견습 부기장으로 파일럿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원요환 파일럿은 지난해 1월 3년여간의 공부 끝에 중동 최대의 저비용항공사가 운영하는 파일럿 학교를 수료하고 정식 파일럿이 됐다. 현재는 견습 부기장으로 파일럿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 마디로 무모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수저’도 아닌 데다 당시 그는 신혼이었다. 어떤 분야에 도전할지 마음을 정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예술경영 대학원을 전공해 연예 산업에도 관심이 많았고, 기자로 일할 때 피아노 독주회를 열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길은 비행기 조종사(파일럿)였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가졌던 꿈, 거기에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더해져 내린 결정이었다.


원 파일럿은 “국내 항공사보다는 외항사가 목표였고, 그 중에서도 중동 한복판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파일럿 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며 “사실 조종사의 90% 이상이 미국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중동을 택한 것은 막연한 동경과 함께 문과 출신으로 비행의 ‘ㅂ’자도 모른다면 어차피 힘들 것 거기나 여기나 마찬가지이고, 그렇다면 남들이 안 하는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원요환 파일럿이 첫 솔로비행을 마치고 찍은 사진.

▲원요환 파일럿이 첫 솔로비행을 마치고 찍은 사진.


파일럿이 되기 위한 가장 정석 코스는 군인이 돼 전투기를 조종하는 것이다. 그게 불가능한 일반인은 파일럿 학교를 들어가 자격증을 따고 항공사에 입사해야 한다. 원 파일럿은 후자의 길을 걸었다. 물리, 수학, 영어는 기본이고 공간지각 능력시험까지 준비해야 해 오랜만에 EBS 강의를 듣고, 영어 면접용 답변을 달달 외웠다. 다행히 그는 서너 달 만에 중동 최대의 저비용항공사(LCC)에서 운영하는 파일럿 학교에 입학했다. 지난해 1월엔 3년여 간의 공부 끝에 과정을 수료하고 항공사에 입사해 정식 파일럿이 됐다. 느닷없이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비행시간이 훌쩍 줄어 아직은 400시간 정도밖에 비행을 못했지만, 이제 엄연한 견습 부기장이다.


다만 부기장으로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다. 원 파일럿은 “영어도 안 되고 가족도 없이 홀로 두바이에 왔을 때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지’ 후회하면서도 결국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데, 조종사가 된 후엔 다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느낌”이라며 “의사로 치면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항공 쪽은 상하관계가 명확한 데다 10~20년차 기장 눈에 제가 얼마나 답답해 보이겠나, 기장에게 계속 깨지면서 공부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견습 부기장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원요환 파일럿이 동료들과 함께 조종석에서 찍은 사진.

▲현재 견습 부기장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원요환 파일럿이 동료들과 함께 조종석에서 찍은 사진.


무엇보다 그는 ‘꼼꼼함’으로 규정될 수 있는 파일럿 집단의 성격이 ‘덜렁이’인 자신과 상성이 맞지 않아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인간의 재량이 별로 빛을 발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상황에 규정이 존재하고 그것을 완벽히 숙지하는 것이 파일럿의 업무인데, 사교적이고 호기심도 많고 활달한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종실 내 기장과 부기장 등 운항승무원 간 유기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안전을 도모하는 ‘승무원 인적자원 관리(CRM·Crew Resource Management)’에 있어선 기자 시절 쌓았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원 파일럿은 “사실 아직도 저의 정체성은 기자라고 생각한다. 기자 할 때가 너무 그리워서 최근 YTN월드에서 해외 리포터도 하고 있다”며 “제가 두바이를 선택한 것도 여기서 일하면서 아랍 세계와 한국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두바이에 우리나라 기업들 진출도 활발하고 한류 열풍도 센데, 첨병 역할을 하며 파일럿 겸 기자로서 다채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엔 미국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해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추후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 항공법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원 파일럿은 “괜한 짓을 했나 후회도 되지만 언젠가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며 “앞으로 전문 분야를 확실히 챙기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계속적으로 하는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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