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만든 '백신 공포'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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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이 비슷한 코로나19와 독감(인플루엔자)의 동시 유행을 의미하는 이른바 트윈데믹을 막기 위해 방역당국이 고투하는 가운데 지난 열흘 가까이 독감백신의 접종여부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 16일 인천에 사는 17세 고교생이 백신을 접종한 뒤 사망한 게 사태의 발단이다. 이 고교생의 사인과 백신 접종과의 연관성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적으로 독감 접종 후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런 보도가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과 혼란을 야기한 점은 분명하다.


물론 독감 유행이 임박한 시기에 백신 접종 이후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면 언론이 신속하게 경고등을 켜는 일은 합당하다. 문제는 얼마나 깊은 고민이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감염병 상황에서 언론은 신속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를 모두 이행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우리 언론은 너무나 손쉽게 전자의 길을 택한다.


백신 사망자의 사인에 대한 조사에는 최소한 1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게 당국의 설명이었으나 언론은 백신 접종과 사망과의 연관성이 단순한 시간적 선후(先後)에 불과한 것인지, 백신의 성분 이상 때문인지를 충분히 검토하고 판단하지 않았다. 백신 사망자 증가가 실제로 관련 사망자가 증가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고사례의 증가로 인한 착시 현상인지, 기저질환의 유무나 사망자 연령대와의 관련성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었으나 매체 거의 대부분은 사망자 숫자 중계방송식 보도에 치중했다. 물론 백신 문제에 있어서 당국이 불신을 자초한 면은 있다. 냉장상태를 유지해야 할 백신이 상온에서 유통됐고, 백신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지만 당국의 대처가 못미더웠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백신접종과 관련된 언론보도는 시민들에게 심각성을 경고하는 수준을 넘어서 도를 넘은 불안감을 조장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백신접종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언제나처럼 ‘속보’ 경쟁을 벌였다. 관련 기사제목은 더 심각하다. <독감백신 공포 확산…시민들 불안하지만 맞을 수밖에>(문화일보), <독감 주사 후 잇단 돌연사…접종포기 맘 카페 아우성>(국민일보) <독감 접종 후 사망자 속출…백신 불안감 증폭>(연합뉴스), <독감 포비아→독감 예방접종 포비아…예방접종 앞둔 시민 ‘불안’>(뉴시스), <죽으면 누굴 원망하나…불안한 독감 백신 접종자들> (한국경제) 등으로 시민들을 자극하기에 바빴다. 감염병 보도가 선정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4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감염병 보도준칙’을 만들고 기사제목에 ‘패닉, 대혼란, 대란, 공포, 창궐 등 과장된 표현 사용에 주의할 것’을 명시했지만, 이를 고민한 흔적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인천 17세 고교생의 사인은 결국 백신접종과 무관하다는 점이 밝혀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코로나 유입 초기와 달리 백신 접종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하지 않은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방역당국과 전문가 다수가 백신접종과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희박하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음에도 언론이 백신공포를 부추긴 점은 유감이다. 국민과 방역당국 간 신뢰가 무너지면 우리 사회가 치러야할 비용은 커진다. ‘K 방역’의 성과 역시 방역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굳건한 신뢰가 밑거름이 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보건당국의 잘못이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언론은 국민의 생명과 관계 있는 감염병과 백신보도에 보다 과학적이고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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