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 왜곡 보도' 규제하는 언론 개혁에 반대하는가?

['언론보도 징벌적 손배제를 말한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 ②심석태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심석태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심석태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기자협회보 인터뷰에서 어떤 언론은 정당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언론의 정파성은 심각하다. 정말 어떤 언론의 기사를 보면 비판이라기엔 너무 감정이 앞서 거의 ‘저주의 언어’를 주저하지 않고 쓴다. 비판 내용보다 그 거친 표현에 놀란다. 사실 보도를 빙자한 정치적 주장들까지, 어떻게든 상대를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니 기사가 정당 대변인 논평처럼 읽히는 것이다.


이런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이 인정되어도 손해배상 액수가 미국에 비해 턱없이 낮으니 아무런 억제가 되지 못한다. 언론 스스로 이런 문제를 바로잡을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언론개혁 차원에서 ‘악의적 왜곡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의 배경이다. 허위 조작 뉴스를 남발하는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는 데 찬성 여론이 81%나 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언론인과 단체들이 언론자유 운운하며 징벌적 손배제에 반대하는 것은 지금 같은 방종을 계속하겠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언론 신뢰도가 몇 년째 세계 꼴찌라고 자기들 손으로 앞다퉈 보도하면서, 한쪽으로는 ‘국민들이 지지하는’ 언론개혁을 반대하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황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쾌해 보인다. 오로지 ‘악의적 왜곡 보도’만을 겨냥한 징벌적 손배제를 반대하다가는 앞으로도 그런 악의적 왜곡 보도를 하겠다는 반개혁적 인물로 몰릴 판이다. 하지만 잠시만,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자.


미디어오늘-리서치뷰 여론조사가 보도된 건 지난 6월2일이다. 미디어오늘에 실린 질문이다. “귀하께서는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당 지지자라는 응답자의 91%가 찬성했고, 자신이 보수라는 사람도 73%나 찬성했다. 압도적 지지다.


여론조사에서 질문은 핵심적 요소이다. 이 사안이, 도대체 이런 질문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어떤 뉴스가 ‘허위·조작 가짜뉴스’인지 누구나 잘 알고 있거나, 그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허위·조작 가짜뉴스’인지는 전 세계가 논란 중이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트럼프 같은 권력자들이 불리한 언론 보도를 공격하는 무기로 쓴다. 그래서 유럽연합은 ‘가짜뉴스’라는 말은 아예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런데도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벌을 줘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단순 질문으로 이 사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할 수 있을까? 무엇인지 모르지만 ‘허위·조작 가짜뉴스’라니 나쁜 것 같고, 그것을 징벌하자니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다. 종종 복잡한 정책 사안을 단순 질문으로 물은 결과를 내놓는 여론조사를 본다. 이 사안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사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도입론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쓰이는 것이 온당한가?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한 우리의 제재 수준이 징벌적 손배제가 있는 미국에 비해 정말 낮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언론에 대한 국내 제재 수위가 미국보다 낮다는 사람들이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언론에 대한 제재 범위가 미국보다 현저히 넓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사실을 보도하면 아예 불법행위가 되지도 않는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언론에 대해 소송을 낸 사람이 공인이고, 해당 내용이 공적 사안이라면 언론이 ‘고의나 중과실’로 허위사실을 보도했다고 원고가 입증해야 한다. 유명한 ‘뉴욕타임스 판결’은 이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 판결 이후 공인은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국내에서 공인들이 언론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당수는 미국에서는 소송 대상이 되지도 않거나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역시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자는 사람들이 얘기하지 않는 사실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언론사에 대해 수시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고, 언론인들이 취재·보도와 관련해 형사 법정에 선다는 점도 큰 차이다. 이 모든 차이를 제쳐두고 양국의 손배액 평균을 낸 다음 미국에 비해 너무 배상금이 작으니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자는 게 맞는 말인가?


다시 문 대통령이 언급한 정파성 문제로 돌아가보자. 우리 언론은 왜 이렇게 정파적이 됐을까?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강한 정파성’을 배경으로 제시했다. 유독 자기 성향에 맞는 뉴스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향해 언론이 정파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손쉬운 방식을 선택했다는 얘기이다. 이런 사회적 정파성은 정치권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 언론의 행태가 정당하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사회적 정파성, 언론 소비의 정파성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이 문제를 푸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다.


언론 자유에 우호적인 권력은 없다. 언론도 우군이 아니면 방해꾼일 뿐이다. 언론자유는 본질적으로 권력과 대립항으로 존재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집중 보도 속에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권력은 언젠가 되찾으면 되는 것이고, 언론에 족쇄를 하나 더 채우는 데 굳이 몸을 던져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시 정권을 잡으면 자신이 쓸 칼이 될 테니까. 최근 언론의 인권 침해를 제기하는 상당수 주장이 일반인이 아니라 고위 공직자나 유력 정치인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언론의 정파성이 사회적 정파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서 언론의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도 언론에 있다. 징벌적 손배제의 위험성을 놓고 모처럼 상당수 언론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의 목표가 징벌적 손배제 도입 저지 같은 즉자적인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왜 이렇게 자신들이 사회의 정파성을 거울처럼 닮아버렸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정파적 상업주의를 극복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언론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징벌적 손배제 도입 저지가 목표가 아니라 그런 논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성찰과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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