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고치고 내리고… 디지털 퍼스트의 그림자 '온라인 오보'

지면·방송 오보와 대응 달라… "온라인은 대충 해도 된다는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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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9월, ‘오역참사’로 기록될 사건이 있었다.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트윗을 오역해 대형 오보를 냈고, 이를 KBS, 조선일보, 한겨레 등 다수의 언론사가 온라인에 그대로 받아쓰면서 청와대가 유감을 표명하는 등 소동이 일었다. 연합뉴스는 사고(社告)를 내고 사과했다. 기사는 정정된 내용으로 대체돼 고친 흔적도 남지 않았다. 연합을 받아쓴 언론사들은 말없이 기사를 수정하거나 아예 삭제했다. 한겨레는 온라인 기사를 수정하면서 아래에 ‘바로잡습니다’를 싣고 최초 기사에서 오역된 부분과 정정한 내용을 알리며 독자에게 사과했다.


피할 수 있다면 영원히 피하고 싶은 게 오보다. 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하고, 기자들 또한 기사를 쓰면서 크고 작은 오류를 범한다. 속보 경쟁이 심한 온라인상에선 더 흔한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실 관계 전달에 잘못이 있는데도 우리 언론은 대부분 기사를 ‘슬쩍’ 수정하고 만다. 논란이 커질 것 같으면 말없이 삭제하기도 한다. 기사가 등록되고 수정된 시각은 있는데, 무엇이 어떻게 수정됐는지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잘못 감추기에 급급한 불투명한 뉴스룸 운영이 오히려 언론의 신뢰를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한편의 기사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중앙일보의 〈‘명절파업’ 어머니 대신 ‘3대 독자’ 차례상 첫 도전기〉란 기사였다. 중앙일보 기자가 어머니를 대신해 직접 차례상을 차린 경험을 쓴 기사다. 그런데 삼촌과 형수 등 ‘3대 독자’라는 설명에 맞지 않는 친척들이 기사에 등장해 댓글로 지적이 잇따랐고, 그에 맞춰 기사는 여러 차례 수정됐다. 하지만 수정된 내용이나 이유는 따로 알리지 않았다. 그 사이 해당 기사는 ‘수정 전후’를 캡처한 이미지가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떠돌면서 ‘창작 소설’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뒤늦게 중앙이 사과문을 내고 기사를 수정한 배경을 설명했지만 조작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우리 언론은 온라인 기사를 수정하면서 변경된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단순 오탈자 정정만이 아니라 핵심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일경제는 지난 19일 온라인에 게재한 <UAE 왕세제 5년만에 방한… 원전 책임자 칼둔 안온다>란 제하의 기사에서 모하메드 왕세제 방한에 칼둔 행정청장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하며 양국 협력 분야에서 원전산업이 제외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전했다. 그러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해당 기사가 오보라고 밝혔다. 매경은 즉각 제목을 <UAE 왕세제 5년만에 방한…삼성전자 방문해 협력논의>로 바꾸고 기사 내용도 일부 수정했다.


기사가 삭제되는 일도 흔하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방송인 홍석천씨가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가게 2곳을 폐업했다는 기사를 온라인에 내보냈다가, 본질을 호도했다는 비판 등이 제기되자 말없이 기사를 삭제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언론이 전속력으로 내달려온 디지털 퍼스트의 이면에는 쉽게 고쳐지고 버려지는 기사들이 있었다. 신문은 데스킹, 교열, 편집 등의 과정을 꼼꼼히 거쳐 발행하지만, 온라인에선 그 과정이 대폭 축소된 탓이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아직 온라인은 대충 써도 된다는 인식이 남아서 그렇다”고 꼬집었다. 오 연구위원은 “오보를 낼 수는 있지만, 그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기록을 남겨주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 언론사를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서 “무엇이 어떻게 변경되고 수정됐는지 피드백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조작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중앙일보는 재발 방지 대책과 함께 온라인 기사 데스킹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박승희 중앙 편집국장은 25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3대 독자’ 기사는 명백히 허위보도가 아니었는데, 수정 과정에서 조작 논란이 일면서 기사 전체의 신뢰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돼버렸다”면서 “아무리 우리 의도가 좋았다고 해도 독자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우리 내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어서 관련 프로세스를 점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사의 ‘꼰대 커뮤니케이션’ 관행을 꼬집는다. 권위적인 조직문화, 속보 경쟁이 심한 취재보도 관행부터 오보에 대처하는 방식까지 사뭇 ‘꼰대스럽다’는 지적이다. 채 교수는 “잦은 오보, 수정한 기사로 ‘덮어쓰기’, 소설 같은 기사 등은 예전에도 있었고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때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매체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라며 “달라진 독자들의 읽고 쓰기 방식을 기자들이 숙지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만약 독자를 이전의 독자처럼 대한다면 이런 문제에 관한 한 백약이 무효할 것”이라며 “독자와의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을 이전과 다르게 즉각적이고 포용적이고 수평적으로 하는 것이 변화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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