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쓴 기사에 자괴감이 든다"

박근혜 정부 당시 '노동시장개혁 홍보 기획기사 발주'…고용부 개혁위 최근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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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노동시장개혁 홍보를 위해 고용노동부를 시켜 일부 언론사에 돈을 주고 기획기사를 주문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용부가 기사 주제와 구성을 정해서 주면 언론사들이 기사화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대가는 언론사당 1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2500만원에 달했다. 고용부의 주문을 받고 홍보성 기사를 썼다는 한 기자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고용부 장관 자문기구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개혁위)는 지난달 28일 2015~2016년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라는 비선기구가 운영됐고, 상황실에서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의 여론화 작업이 기획·지시됐다고 밝혔다. 김현숙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청와대 노동시장개혁TF회의(BH회의)’를 통해 기사, 전문가기고, 방송을 활용한 여론화 작업을 지시했고 상황실이 이를 실행했다는 것이다. 개혁위는 당시 20건 이상의 기획기사 구매행위가 있었으며 이 중 13건에 대해 홍보결과보고서 등에서 지급금액과 증빙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노동시장개혁 홍보를 위해 고용노동부를 시켜 일부 언론사에 돈을 주고 기획기사를 주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노동시장개혁 홍보를 위해 고용노동부를 시켜 일부 언론사에 돈을 주고 기획기사를 주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

8개 언론사에 4억2800만원 지급


자료에 따르면 확인된 13건에 포함된 언론사는 총 8곳이다. 고용부는 일자리창출, 상생고용, 실업급여 등을 보도한 대가로 8개 언론사에 총 4억2800만원을 집행했다. 2015년 3월 중순 ‘노동시장 새 틀 짜기’라는 기획기사를 포함해 총 5건의 기사를 작성한 A언론에 5500만원을 지급했고, 같은 해 6~11월 ‘상생고용 새 모델, 임금피크제’ 기획 등 8건의 기사에는 7000만원을 지급했다.


B언론 역시 2015년 ‘일자리창출’과 2016년 ‘청년일자리, 지역고용창출’ 기사로 각각 5000만원의 금액을 받았다. B언론은 그 대가로 2015년에는 스트레이트 기사 8회, 기획기사 3회, 방송 5회를, 2016년에는 스트레이트 기사 9회, 기획기사 3회, 방송 2회를 보도했다.


C언론도 2015년 7월 ‘실업급여, 직업훈련비’ 관련 기사를 써 고용부로부터 8000만원을 받았다. D언론 역시 ‘일 가정 양립’ 기획기사 8건을 쓴 대가로 4500만원을 지급받았다. 이 외에도 E언론 2100만원(지자체 청년일자리·2016.12.12/12.21), F언론 2000만원(일자리 경진대회·2015.10.15/10.20), G언론 1000만원(지자체 일자리 경진대회·2016.10.24/11.7), H언론 900만원(지역 일자리 창출 등·2016.12) 등이었다. 일부 언론사는 기사뿐만 아니라 기고를 실어주고 돈을 받기도 했다.


TV토론 역시 여론화 대상이었다. 개혁위에 따르면 BH회의에선 ‘공정해고’ 등 TV토론의 주제와 특정 패널 구성안이 제시됐고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참여 하에 실제로 추진됐다. 2015년 9월22일 방송된 MBC ‘100분토론’이 그랬다. 이날 100분토론에선 ‘노동개혁, 남은 과제는?’을 주제로 토론이 이뤄졌고 주제 중 하나는 ‘저성과자 해고, 기준 어떻게?’였다. 


개혁위 관계자는 “문제라고 확인된 기사들은 공론으로서 해당 사안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당시 정부의 노동 정책을 홍보하는 것들이었다”며 “돈 때문에 기사를 쓰면 안 되지 않나. 우리가 언론사까지 문제 삼을 순 없지만 이번 조사 결과가 언론에 주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보기사라도 검열 기준 있다 VS 홍보기사 관행 사라져야


비선기구를 통해 홍보 예산이 집행됐다는 점만 제외하면 이 같은 홍보 방식은 고용부 뿐만 아니라 정부부처에서 흔히 이뤄지는 행태다. 종합일간지 A기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제안이 들어온다”며 “가령 해당 실국에서 정책적으로 어필을 해야 할 경우 먼저 출입기자나 언론사에 말을 건네기도 하고 홍보대행사를 통해 사업국 쪽으로 접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당시 노동 정책 홍보 기사를 썼던 B기자 역시 “정부 홍보 예산이라는 것이 결국 어느 정부, 어느 부처나 있기 때문에 돈을 받더라도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며 “저희 회사 같은 경우 노골적인 홍보기사는 보통 별지에 쓰는 식으로 검열하는 기준이 있다. 다만 우리의 논조와 맞아떨어지고 신문의 질을 떨어트리지 않는 기사라면 본지에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문제가 된 기사들도 보면 알겠지만 정말 공익적인 내용들”이라며 “민감한 이슈, 가령 일반해고 같은 건 생각이 다르겠지만 사실 신문사마다 나름의 논점이 있지 않나. 나 역시 기자의 양심에 저해되는 기사를 쓰진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당시 노동 정책 관련 기사를 썼던 C기자는 “기사를 쓰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C기자는 “가치가 편향된 주제도 아니었고 오히려 주제가 괜찮다고 생각해 기사를 썼지만 누가 봐도 돈 받은 티가 나는 기사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며 “당시 받은 금액이 그렇게 큰 줄도 몰랐다. 기자가 자괴감을 느낄 수 있는 이런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지 D기자도 “홍보기사가 서로의 필요가 맞아서 쓰는 건 이해한다. 다만 그런 류의 기사는 거의 대부분 비판기사가 아니지 않느냐”며 “신문사가 객관적으로 쓴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공동기획을 했다는 걸 기사에 명시해야 한다. 혹세무민하지 않도록 언론사가 독자들에게 그런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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