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정확하게 팩트 너머를 보여주고 독자와 마주하다

[저널리즘은 신뢰다] ③신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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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신뢰도 36%, 38개국 중 37위로 최하위
팩트체크팀 운영하며 독자 신뢰 회복 심혈 기울여
백화점심 보도 지양...탐사·기획보도 강화 나서기도
독자와의 만남 등 소통 확대, 신뢰 쌓아가는 기회로
잘못된 취재관행 개선 등 취재윤리 강화에도 신경써야


‘굳게 믿고 의지함.’ 국어사전에서 신뢰를 검색하면 이 같은 설명이 나온다. ‘신뢰를 느끼다’ ‘신뢰가 가다’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등의 예문도 덩달아 나열된다. 신뢰에 한국 언론을 대입해본다. 독자, 시청자는 언론을 굳게 믿고 의지하고 있을까. 언론에 신뢰를 느끼며 신뢰가 간다고 생각할까. 언론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고 있을까.


부정적인 대답들만 나올 수 있는 질문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사들이 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꼼꼼히 확인하고 속보보다 좀 더 질 높은 기사로 경쟁하기 위해 노력하며, 독자와 소통하려 애쓰고 취재윤리를 강화하는 언론사들이 있다.

내부 기사 팩트체크…“목표는 팀 해체”
36%. 국내 언론이 ‘사안을 정확하게 보도한다’고 답한 비율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1일 발표한 언론 신뢰도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이 언론 보도를 얼마나 불신하는지 알 수 있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언론 보도가 정확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고 심지어 보도의 정확성을 믿는 정도는 미국·일본·러시아·캐나다·필리핀 등 38개국 중 37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시사인 제공

▲시사인 제공


2016년 12월 한국언론학회에 소개된 민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신뢰의 조건’ 논문을 보면 보도의 정확성은 언론 신뢰 상승에 유의미하게 작용한다. 즉 언론이 사안을 정확하게 보도할 때 언론 신뢰 회복의 단초가 마련된다. 일부 언론이 내부에 팩트체크팀을 두고 보도의 정확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MBC는 2010년부터 팩트체크팀을 운영하고 있다. 뉴스데스크에 송고되기 전 일시나 장소, 사건 등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역할이다. 한때 기자와 AD를 포함해 5~6명까지 늘어났던 팀은 최근 기자 1명, AD 1명으로 인력이 줄어들었다. 백승운 MBC 팩트체크팀 기자는 “두 명의 인력이 대략 20개 남짓의 뉴스데스크 기사들을 검토하고 있다”며 “맞춤법이나 통계 수치 등 사실이 확연하게 틀린 부분을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SBS도 지난해 8월 팩트체크팀을 구성했다. 기사의 논리적 비약이나 사실관계의 오류를 사전에 짚어내기 위해서다. 현재는 경력 30년이 넘는 차병준, 박수언 선임기자 2명이 팩트체크 에디터로 팀을 지키고 있다. 차병준 SBS 팩트체크 에디터는 “팩트의 오류, 팩트의 누락, 팩트의 불확실성 등 크게 세 가지 범주에서 8시 뉴스에 나오는 모든 기사를 들여다보고 있다”며 “서울시의 미세먼지 예산과 같이 기사마다 금액이 다를 경우 무엇이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하라고 권고하는 식으로 팩트 오류를 점검한다. 누락의 경우 기사 흐름이 제대로 상황을 전달하지 못할 때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이런 부분이 빠져 이해가 어렵다, 설명을 추가하라는 식으로 의견을 전한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건 팩트의 불확실성이다. 차 에디터는 “불확실성은 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에 팩트체크팀에서 논의하고 그 생각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될 때 의견을 제시한다”며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는 부장의 권한이다. 충돌이 아닌 의견 교환 형식으로 얘기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기사들이 마감 직전 들어오기에 팩트체크팀에선 낮에 큐시트를 보고 관련 내용을 미리 공부한다. 차 에디터는 “초고를 보고 미리 팩트체크 목록을 만든 후 데스킹 후에도 고칠 게 남아 있으면 그런 부분을 수정했으면 한다고 권고한다”며 “다음날 아침 지적했던 내용과 수정 반영 여부를 확인해 팩트체크 보고서를 올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팩트체크팀이 하루 빨리 사라지는 것이다. 차 에디터는 “오류들을 조금씩 교정해나가다 보면 체화돼 오류가 없어지리라 생각한다. 보고서를 쓰는 이유도 일종의 판례들을 만들어놓고 기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더 이상 오류가 없어 팀이 해체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속보경쟁 벗어나 기획·탐사보도 강화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 회복을 위해 보다 양질의 기사로 승부를 보려는 언론사들도 있다. 지난해 말부터 메인 뉴스에서 기획과 탐사보도를 강화하는 등 혁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JTBC, MBC, SBS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백화점식 보도’나 사건사고 리포트에서 벗어나 기획과 탐사보도를 확대해 뉴스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MBC의 경우 탐사보도를 강화하는 내용적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고, SBS는 당일 발생 뉴스가 아니더라도 이슈를 만들어 집중·심층적으로 보도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특히 JTBC는 지난해 12월 사회3부를 만들며 심층보도를 강화하고 있다. 사회3부는 탐사플러스팀과 사회2부에 소속돼 있던 밀착카메라팀이 합쳐진 부서로, 현재 작가를 포함해 17명의 인력이 사회3부에 소속돼 있다. 손용석 JTBC 사회3부장은 “탐사나 기획보도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빈도를 늘리거나 강화시킬 목적으로 사회3부가 만들어졌다”며 “기존 탐사플러스팀에선 주로 큰 기획을 많이 했는데 사회3부에선 밀착카메라팀과 협업해 다양한 탐사 기획을 만들 생각이다. 인력도 10년차 기자들을 주축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속보보다 기획에 집중하는 이유는 언론사의 정체성을 어떤 콘텐츠보다 잘 보여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손용석 부장은 “같은 아이템, 주제라도 다르게 바라보면 결국 다른 언론사와 차별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편적인 이슈보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춰낼 수 있는 이슈를 선호한다”며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공감을 일으키고, 문제의식을 이어가고, 시청자들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뉴스가 지향점이다. 그런 보도를 하면 당연히 신뢰가 쌓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자와 함께하면 신뢰는 따라온다
한겨레는 지난해 6월 초 독자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독자·시민과의 소통 확대를 위한 TF’를 꾸리고 보고서를 냈다. 독자의 의견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독자 소통 확대 전략을 개발하는 소통 전담 컨트롤타워 구성과 참여소통에디터 직을 신설하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었다. 8월 말 임명된 이종규 한겨레 참여소통에디터는 “미디어의 위기는 사실 신뢰의 위기이기도 하다. 독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콘텐츠 유료화도 멤버십 전략도 성공하기 어렵다”며 “그런 점에서 독자 소통, 독자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지 시사인 기자가 지난해 10월30일 열린 2차 ‘중림동 다이내믹’ 행사에서 ‘뉴스 뒷담화’를 주제로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시사인 제공)

▲김은지 시사인 기자가 지난해 10월30일 열린 2차 ‘중림동 다이내믹’ 행사에서 ‘뉴스 뒷담화’를 주제로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시사인 제공)

참여소통에디터는 독자 의견을 편집국에 전달하고, 편집국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그동안 에디터는 독자들에게 받은 의견을 정리해 어떻게 해결했는지, 귀담아 들을 만한 의견은 무엇인지 등을 담은 참여소통 통신을 8차례 전체 구성원들에게 메일로 보냈다. 이종규 에디터는 “독자와 마주보고 얘기한다는 취지로 올해 참여소통에디터가 쓰는 ‘마주보기’라는 칼럼도 신설했다”며 “독자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왜냐면’ 코너에 ‘주주통신원의 눈’이라는 글 역시 싣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인은 기자들이 독자와 직접 만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해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중림동 다이내믹’을 개최했던 시사인은 오는 30일에도 같은 행사를 개최한다. 고제규 시사인 편집국장은 “지난해 두 차례 파일럿으로 진행했는데 참가자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정례화하려 한다”며 “올해는 ‘중림동 다이내믹’과 ‘중림동 북클럽’으로 이원화해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사인에선 이 같은 행사를 단순히 수익을 바라는 모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독자와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고제규 국장은 “지난해 ‘인터뷰 Show’를 진행하는데 어떤 관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사에 불만이 있는데 불만을 표출할 방법이 없다, 결국 그 불만을 구독 해지로 표현한다는 얘기였다”며 “만약 독자들이 말할 기회가 있다면 굳이 해지까지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독자들과 만나 얘기하면서 생각차를 좁혀가고 소통한다면 신뢰 관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JTBC 역시 지난달 19일부터 ‘팩플러’라는 서비스를 통해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팩플러는 JTBC ‘뉴스룸’에서 방송하는 팩트체크 코너에 대해 시청자들이 직접 오픈채팅방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서비스다. 장주영 JTBC 디지털뉴스룸 뉴스기획팀 과장은 “팩플러 오픈채팅은 뉴스룸 방송시간인 저녁 8시부터 9시30분까지 이어진다”며 “TV 뉴스와 동기화해 뉴스룸을 실시간으로 보기도 하고, 팩트체크 방송이 끝난 뒤 오대영 기자가 소통을 위해 셀피를 촬영해 보내주는 등 방송과 소셜이 하나로 연결되는 실험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응은 뜨겁다. 서비스 첫날 최대 정원인 1000명이 30초 만에 찼고 우려와 달리 사용자들이 서로 존중하는 토론 공간이 형성되고 있다. 장주영 과장은 “물이 단번에 끓지 않는 것처럼 언론사의 신뢰가 한순간에 얻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팩플러도 신뢰를 얻기 위한 다양한 노력 중 하나”라며 “뉴스가 당연히 해야 하는 본질, 즉 이용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가서 함께 듣고,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한다면 신뢰는 어느 순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취재윤리, 신뢰에 영향 줄 수 있어
‘MBC 사과 보도 사태를 계기로 한 기자가 지인 섭외 인터뷰는 어디까지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주셨다. 보도윤리위원회는 발족과 함께 첫 논의 주제로 이미 쟁점화된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지난 10일 SBS 사내 게시판에는 우상욱 SBS 뉴스혁신부장의 글이 올라왔다. MBC 지인 인터뷰가 허용 범위 안인지, 지인을 섭외한 인터뷰는 모두 잘못된 것인지, ‘지인을 섭외한 인터뷰’의 허용 기준은 무엇인지 등을 조목조목 설명한 글이었다.


지난 9일 발족한 SBS 보도윤리위원회는 바로 위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취재윤리와 관련한 질문이 들어오면 논의해 일종의 권고안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MBC 인터뷰이 선정 등 취재윤리 위반 문제가 불거진 것을 의식해 구성된 윤리위는 현재 팩트체크팀과 뉴스혁신부장, 법무팀 변호사 등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차병준 팩트체크 에디터는 “평소에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작은 부분이 문제가 돼 그동안 쌓아온 신뢰도와 이미지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때문에 사소한 부분에서라도 시스템을 짜나가자는 것이 윤리위의 취지다.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조금의 가능성도 없애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송희영 전 주필의 사임 및 청탁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출범한 조선일보 윤리위원회도 지난달 26일 조선일보 윤리규범을 확정해 발표했다. 윤리위는 취재보도와 직업윤리 두 분야에서 기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과 가치를 밝히고, 이를 실천할 가이드라인 21장·52조·322항을 제시했다. 손봉호 윤리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언론이 신뢰받아야 한다”면서 “윤리규범이 기자들이 취재에서 기사 작성, 보도에 이르기까지 지켜야 할 윤리 교과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사들은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언론에 대한 신뢰가 오른다는 지표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실수가 언론 불신으로 확대되곤 한다. 지난해 11월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낸 ‘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보고서’에서 연구원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발행인, 플랫폼, 소비자들의 몇 년에 걸친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들에 대한 신뢰가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이후 양질의 보도와 기자들의 반성이 노출되며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며 “그럼에도 아직 취재 과정에서 잘못된 관행이 반복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수정해나간다면 지금보다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고 독자들의 신뢰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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