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급여에 허드렛일만 하고 버려지는 언론사 인턴

채용 땐 장밋빛 홍보 해놓고 어뷰징·디지털 보조 업무만
취재현장 경험커녕 대부분 내근, 방송사 인턴 밤샘편집 부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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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명문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A씨는 지난 학기를 기억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80대 1의 경쟁률로 인턴에 어렵게 뽑혔지만 일한 게 딱히 경험으로 남지 않아서다. A씨는 “학원·스터디 등 취업 준비로 바쁜 시기에 인턴 6개월을 투자한 건데 막상 시간만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A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가 일한 곳은 한 중앙일간지. 첫 출근 날부터 메뚜기 생활이 시작됐다. 인턴을 위한 자리가 따로 없어서다. 그는 외부취재를 나간 선배 자리에 대신 앉거나, 모두 꽉 차있을 때는 세미나실이나 휴게실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50여명이 넘는 부서원들은 A씨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제각기 개인 업무를 하느라 바빠 새로 인턴이 들어온 지도 모르는 선배들도 있었다. 데스크에게 “취재해보고 싶다”고 하소연했지만 “개편 때문에 정신없다”는 말만 일관해 속수무책이었다. 가끔 선배들이 취재 현장에 A씨를 불러 스케치나 멘트를 따게 하면 한없이 고마웠다.


한 경제지의 온라인 부서에서 일한 B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B씨는 “인턴 채용 공고에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다고 하거나, 디지털 미디어의 선두주자로 끼 넘치는 아이디어를 보여주라는 등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했지만 현실은 달랐다”고 털어놨다.


그에게 인턴생활 6개월은 기사를 받아쓰기하거나 어뷰징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외에 특별한 업무가 있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노출되는 카드뉴스나 동영상뉴스를 제작하고 업로드하는 거였다. 이마저도 직접 취재를 하는 게 아니라 선배가 짜놓은 콘티에 맞춰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등을 이용해 이미지를 제작하거나, 프리미어를 이용해 동영상편집을 하는 기술적인 보조 작업에 그쳤다.


B씨는 “언론사 인턴하면 실제로 취재를 하거나 현장에 뛰어드는 등 굉장한 기회를 얻은 것으로 보이지만 온라인에 떠도는 이미지를 찾고 유튜브 영상을 검색하는 디지털 생산의 보조 업무뿐”이라며 “실제 채용에 따로 어드밴티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낭비로 보고 일부러 지원안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 커뮤니티에는 각 언론사들의 온라인팀 인턴 채용 공고 수십 개가 올라와 있다.

대학생들이 언론사 취업 문턱을 넘고자 인턴에 지원하고 있지만 막상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장 경험을 미리 쌓고 지원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려는 학생들이 허드렛일에 내몰리며 상처를 받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언론사들은 상·하반기 방학을 이용해 수시로 인턴을 채용하지만 체계적인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 C씨는 “인턴 교육을 위해 하루라도 시간을 빼주면 가능하겠지만 매일 속보를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시간을 빼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요즘엔 하도 인턴이 수시로 바뀌어 누가 들어와도 또 금방 나가겠지 하는 생각에 챙겨주기가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각 신문사 부서에는 기자를 꿈꾸고 들어온 인턴들이 눈에 띄게 많다. 특히 온라인 부서의 경우 디지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인턴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기자협회보가 주요일간지 인턴 채용 현황을 살펴본 결과 조선과 동아, 중앙을 비롯한 대부분 신문사들의 온라인 부서들은 경쟁적으로 인턴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거의 매달 인턴 채용 공고를 내고 있으며 중앙일보의 경우에도 2달에 한번 꼴로 인턴을 새로 채용하고 있다. 서울경제를 비롯한 경제지도 올해만 5건씩 이상 인턴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120만~15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3개월씩 보조업무를 한다.


중앙일간지 온라인 부서의 간부 D씨는 “아침에 오면 경쟁사의 페이스북의 댓글이나 공유가 몇 개가 달렸는지 팔로워는 얼마나 늘었는지 일일이 비교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에 상부에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그만큼 각 매체들이 디지털 제작물을 늘리는데 혈안이 돼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인력 수요는 늘어나는데 편집국에서 기자를 데리고 오자니 반발에 부딪치고 온라인 기자를 따로 뽑는 것도 부담이라 인턴을 늘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취재기자의 공백으로 인턴이 쓴 기사가 데스킹 없이 그대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한 인턴은 “어뷰징 기사를 하루에 한 사람당 40~50건씩 쓰기 때문에 데스크가 일일이 데스킹 하지 않고 알아서 출고하는 게 당연시됐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연예·스포츠 기사가 대부분인 어뷰징 기사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등 속보 기사도 인턴이 작성한 기사가 무분별하게 포털로 노출되고 있는 것. 한 인턴은 “선배들한테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되는지 묻고 싶은데도 온라인 부서 내 취재기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있는 선배마저 다른 보고서 작업을 하느라 바빠 그냥 데스킹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사를 쓰면서도 ‘이게 맞나’ 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사실과 다른 기사가 온라인에 퍼져나가거나 저작권이 고려되지 않은 사진 등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 폐해가 반복되고 있다.


방송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KBS와 MBC, SBS 등 지상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정규 인턴을 따로 뽑지 않는다. 신입 공채 채용에서 인턴 과정이 포함돼 있거나 상시적으로 뽑는 보조 인턴 공고가 대부분이다. 방송사 보조인력은 대학 교수의 추천이나 기존 아르바이트생이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채용되는데, 대부분 방송과 무관한 허드렛일을 하기 다반사다.


보도국에선 방송 환경을 미리 체험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주며 보조 업무를 시킨다. 취재 업무와 무관한 단순 자료 서치나 섭외, 편집 일이 대부분이다.


MBC에서 기자 인턴을 하다가 작가로 전향한 E씨는 “작가라고 하면 다들 글을 구성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메인 작가가 하기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방송을 꿈꾸는 대학생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제작국에서 보조업무를 하고 있는 한 PD 지망생도 “밤샘 편집보조 일에 잠은커녕 밥도 제때 못 먹는다. 가끔 선임을 잘못 만나면 욕설도 아무렇지 않게 듣는 등 사람보다 못한 대우를 받은 경우도 있다”며 “언론사들이 취업이 어려운 대학생들을 이용해 두 번 울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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