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해요. 난 왜 논바닥에 쓰러져 있나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설을 앞두고 엄마와 함께 고향 마을에 내려온 길이었어요. 제사도 다 지냈으니 올라가야 하는데, 계엄령이 떨어져 발이 묶였어요. 따이한은 나의 젖가슴과 왼쪽 팔을 칼로 도려내었습니다. 나를 병원에 보내는군요.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요.’
서울 안국동 아트링크 안으로 들어가자 그날, 퐁니·퐁넛 마을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이름 없는 주검은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부활했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과 그의 가족들과, 그의 이웃들이 겪었던 일을 전했다. 지난 9일부터 내달 1일까지 열리는 고경태 한겨레 신문부문장의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 전에서다.

▲고경태 한겨레 신문부문장이 지난 9일 서울 안국동 아트링크에서 열린 ‘한 마을 이야기-퐁니·퐁넛’ 전에서 응우옌티탄의 사진 앞에 서 있다.
당시 한겨레21 소속이었던 고경태 기자는 이 사진과 관련 문서를 세계 최초로 보도했고, 이후 6차례 퐁니·퐁넛 마을을 찾으며 살아남은 가족과 주민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고 기자는 “2000년부터 카메라를 메고 마을에 갔다.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자세하게 전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그러다 서해성 작가의 권유로 기록전을 열게 됐다”며 “프로 사진가가 아니라 사진전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16년에 걸쳐 기록한 내용을 담은 아카이브 전시회”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전시회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17명의 사연이 함께 나열돼 있다. 사람의 얼굴만으로 모든 걸 보여줄 수 없어 구체적 상황과 주변 정보를 8줄로 요약한 기록들이다. 이야기를 더해 책도 냈다. 고 기자는 “1968년 무장공비 사건 때 이승복 어린이는 ‘공산당이 싫다’고 외쳤다가 입이 찢겨 죽었다. 퐁니·퐁넛 마을에서는 6살의 응우옌쯔엉이 총에 맞아 입이 날아갔다”며 “과연 한국 사람들은 피해만 당했는가. 이 사건은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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