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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자협회 취재이야기 공모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윤혜림 KNN 기자. 윤 기자는 지난해 취재이야기 공모에서도 장려상을 받았으며 2006년 사회단체의 보조금 실상을 파헤친 고발 보도로 제185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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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말만 믿고 남의 집 마당 굴삭기로 파헤쳐
노발대발 집주인에 머리 조아리며 “죄송합니다”“삽질 하냐?”
흔히들 쓸모없는 일, 별 성과 없는 일을 할 때 하는 말.
“삽질 실시!”
군대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 눈 내리는 날 삽질하기.
“삽질”
난 아직도 이 말을 들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삽질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그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부산 강서구의 나대지.
이곳에 공장 폐기물을 묻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확인을 위해 미리 준비한 모종삽을 들고 땅을 팠다. 30㎝ 깊이를 팠더니 흙 색깔이 다르다. 냄새도 난다. 좀 더 파보면 공장에서 제조하고 남은 폐기물이 땅 속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날.
구청에 미리 요청해 굴삭기를 동원했다. 구청 직원과 제보자, 그리고 촬영팀이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 상황.
한 삽, 두 삽, 세 삽, 굴삭기로 한 뭉텅이씩 흙을 파보지만 아뿔싸. 나오는 것은 흙뿐이다.
구청직원 : (흙 속의 검은 진흙 같은 것을 만지며)음…. 이건 성분검사를 해봐야겠지만 그냥 오염수가 스며들면서 쌓인 것 같은데요? 이걸로는 폐기물을 고의적으로 묻었다고 보긴 힘든데….
난감한 상황. 계속 파봐도 공장 폐기물처럼 뭉텅이로 나오는 것은 없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기자 : (옆에 서있던 제보자에게)어떻게 된 겁니까? 왜 안 나오는 겁니까?
제보자 : 음…. 사실 미리 말씀 드릴까 생각했는데….
기자 : 네? 뭐요? 뭐?
제보자 : 사실은 여기 말고 자기 집 마당에 묻었다 하데요.
기자 : 정말이에요?
제보자 : 맞습니다. 어제 확인을 해봤습니다.
기자 : 근데 왜 지금에야 그 말을?
제보자 : 그게…. 그래도 깨끗하게 다 파가진 않았을 거라 생각을 해서…. 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기자 : (성질을 내며)참 내. 그런 건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그럼 그 집 마당에 묻었다는 그 말은 진짜 맞습니까? 이번엔 틀리면 안 됩니다!
제보자 : 거기는 확실할 겁니다. 예전에 묻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데요.
굴삭기를 이끌고 제보자가 가르쳐준 집으로 향했다. 제보자는 제보한 것이 들키면 곤란하다며 동행하기를 거부했다.
집주인, 즉 폐기물을 묻었다고 지목된 남자가 놀라 달려 나온다. 구청직원은 제보가 들어왔으니 확인 차 왔다고 말한다. 자초지종을 말하며 제보자가 지목한 집 화단부터 파기 시작한다. 처음엔 완강하게 부인하던 남자는 이내 화를 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집주인 : 그래? 어디 안 나오면 내 고소할거요! 파봐! 파봐!
기자 : (움찔하면서도 목소리에 힘을 준다)그러니까 한번 파보자고요! 그럼 서로 확실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사장님도 괜한 오해 안 사셔도 되고요. 이렇게 제보 들어올 정도면 사람들이 그렇게 안 좋게 생각하고 알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냥 좋게 이해하세요. 안 나오면 원래대로 해 드릴게요.
집주인 : 누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해서 나한테 이러요! 어? 어!
구청 직원 : (귓속말로 기자에게)근데 정말 안 나오면 어떻게 하죠?
기자 : (스스로 다짐하듯)나올 겁니다. 제보자가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저 텃밭도 다 위장용일 거예요.
굴삭기 삽이 화단을 향해 가고 화단에 심어 놓은 상추 등 작물들이 파헤쳐지기 시작한다. 이때 갑자기 달려오는 할머니.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놀란 표정이다. 바로 집 주인의 나이든 모친이다.
할머니 : (자신이 가꿔놓은 텃밭이 파헤쳐지는 것에 기겁하며)아이고!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
집주인 : (할머니를 붙잡으며)어무이 가만 있어 보소. 내가 여기다 폐기물을 파묻었다고 누가 고발했는가 보요.
할머니 : 아이고! 아이고! 무슨 폐기물. 아이고! 아이고! 내 상추!
구청직원 : (귀에다 속삭이며)저…. 저…. 진짜 나오겠지요?
기자 :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며)나올 겁니다.
구청직원 : 진짜 계속 팔까요?
굴삭기로 땅 파기를 몇 번을 했을까. 순간 퍽 소리가 난다. 시선이 굴삭기 삽으로 집중되며 ‘드디어 뭔가 나온 것인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순간! 집에 전원이 나가 버린다. 집과 함께 연결돼 있는 옆 공장 불도 같이 꺼진다.
구청직원 : (놀라 굴삭기 기사에게 소리치며)뭡니까!
굴삭기 기사 : (난감해하며)저기…. 여기에 뭐가 묻혀 있었나 본데요.
구청직원 : 그러니까 뭐가 뭡니까?
굴삭기기사 : 전력선이 땅 아래 묻혀 있었나보네요.
구청직원 : (화를 내며)그럼 그런 걸 잘 피해서 파야죠!
굴삭기 기사 : (화를 맞받아치며)뭐 있다고 말을 해줘야 알지! 그냥 파라고 해놓고선 내보고 어쩌라고요!
집주인 : (집주인이 달려오며 악을 품은 목소리로)보소! 보소! 이거 진짜! 지금 우리 공장하고 집하고 전기가 다 나갔거든! 보이제! 눈에 보이제!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그래 더 파봐라! 파봐! 어디 끝까지 가자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거나,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거나, 눈이 팽팽 돈다거나.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그 일시적인 혈액순환 장애는 머리로 피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혈관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발생하는, 그 혈관은 바로 심장이 쪼그라들며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여긴 지옥이다! 내가 만든 지옥! 나는 무덤을 파고 있다. 내 무덤은 바로 굴삭기가 파고 있는 저 곳!
구청직원 : 저기…. 기자님…. 진짜 큰일 난 것 같은데…. 이거 뭐라도 안 나오면….
기자 : …
구청직원 : 그 제보하셨다는 분에게 다시 한 번 연락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팠는데 안 나오면….
기자 : 잠깐만요.
떨리는 손을 숨기며 전화를 건다.
‘뚜…뚜…뚜…뚜’
기자 : (혼잣말로)이 새끼!!!!
연락두절. 지옥이다.
제보자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왜 하필 내게. 왜 하필 내가 그 제보를 확인한다 해가지고 내 무덤을 내가 파게 된 것일까. 어렵게 취직해서 겨우 일하기 시작했는데. 일을 그만둬야 하나. 보상비는 얼마나 들까….
할머니 : 아이고! 아이고! 내 상추~ 내 상추~.
기자 : 우선…. 우선은 계속 파 보죠. 어차피 엎어진 물. 조금만 더 파봅시다.
구청직원 : 아이참. 이거 어쩌려고. 하라니까 하겠는데…. 뭐 대안은 있는 거죠?
계속하라고 지시하자 굴삭기 기사는 찜찜한 표정으로 파기 시작한다. 다 팠다. 텃밭 옆에 세워져 있는 간이 화장실 아래까지도 깨끗하게 팠다.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공장 폐기물이고 자시고 아무것도 없다.
구청직원이 슬슬 뒷걸음친다. 굴삭기도 슬슬 후진을 한다.
할머니 : 아이고 아이고. 내가 몇 달을 키워 놓은 게 다 날라갔네 다 날라갔어.
집주인 : 어무이요, 울지 마소! 괜찮소! 다시 키우면 된다 아이가!
할머니 : 아이고 아이고 내 상추.
구청직원 : (기자를 보며)저…. 어떻게 하실 건데요?
기자 : …
구청직원: 저기…. 저희는 그냥 말씀하신대로 굴삭기로 판 것 말고는….
기자 :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울고 있는 할머니와 그 집주인 아들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방법은 단 한 가지.
기자 : (고개를 숙이며)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알았나 봅니다. 제보자가 확실하다고 해서 저는 그 말을 듣고 확인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험상궂은 얼굴의 집주인이 다가온다.
기자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대 패려고 하는 것일까. 설마…. 나는 여잔데…. 근데 아저씨… 노총각인가?
나도 결혼을 안했다는 뉘앙스라도 풍겨 볼까?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집주인 : (크게 한숨을 쉬며)됐고요. 마 가소! 저 노인네가 얼마나 놀랐는지 저렇게 하고 있다 아입니까! 마 꼴배기 싫으니 가소!
기자 : (더 크게 고개를 숙이며 이젠 울상까지 지으며)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사실은 파기는 싫었지만….
집주인 : 내가 말이요. 기자 아가씨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일하려고 하다가 그런 거라고 이해하겠소. 그러니까 두 번 다시 꼴 보기 싫으니까 가소! 내 TV 나온 것도 몇 번 봤는데 앞으로 이렇게 일하지 마소!
기자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기 어머님께도 죄송하다고 말씀 좀…. 제가 상추나 이런 것들은 좀 사다 드리겠습니다.
집주인 : 아이고 됐소 마. 가라니까!
마음이 변할까봐 잽싸게 도망쳐 나왔다. 모두가 잽싸게 철수했다.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는 서로 마주치지 말자, 다시는 이런 일로 서로 괴롭히지 말자는 표정으로 구청 직원들과도 작별을 고했다.
내 마음 한 켠에 돌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삽질 사건. 어쩌면 이 일은 내 기자 인생에서 적극성이 떨어지고 소심한 기자로 변하게 한 부작용을 낳은 동시에 한편으로는 확신이 들 때까지 섣불리 나서지 않고 전후사정을 파헤치는 꼼꼼함을 배우게 해준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궁금함도 남아 있다. 정말 그 아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일까. 집주인 아저씨가 온정을 베푼 이유는 뭔가 있었는데 우리가 못 찾았으니까 용서했다 하면서 일찍 보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심장이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고도 이런 미련이 남아 있다니 몹쓸 의심병, 천상 기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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