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락 前 청장 출국금지
제245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SBS 임찬종 기자
SBS 임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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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6 14: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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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임찬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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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식당, 이른바 ‘함바’ 운영권을 사고파는 사업가 유 모씨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지난해 하반기였습니다.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도 함께 거론됐습니다.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취재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맥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터무니없이 과장한 이야기 정도로 여겼습니다.
얼마 뒤 브로커 유씨가 검찰에 체포됐습니다. 유씨의 로비 행각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 속속 취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유씨를 검찰에 고소한 사람들 중 한 명은 유씨의 사무실에서 유력인사 수백 명의 명함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강희락 경찰청장을 통해 수많은 민원을 해결해 업자들끼리 강 청장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을 지칭하는 은어까지 있다는 증언도 들었습니다.
한달 가까운 취재 끝에 유씨가 정관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로비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검찰이 유씨의 진술에 신빙성을 두고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을 출국금지한 것도 취재했습니다. 강원랜드 사장-방위사업청장 등 현직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을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해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SBS 보도 이후 브로커 유씨의 정관계 로비 행각에 대해 여러 언론사의 집중적인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함바 게이트’라는 이름도 붙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력 인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함바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 권한이 없습니다. 관련도 없습니다. 제가 왜 함바 브로커의 돈을 받습니까?”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방위사업청장, 강원랜드 사장이란 공직은 분명 함바와 관련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유씨가 헛돈을 쓴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살펴보면 비공식적인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검찰은 유씨가 강희락 청장에게 각 경찰서장이나 정보과장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고 설명합니다. 청장의 전화를 받은 각 지역 경찰서장은 유씨의 크고 작은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경찰대 출신 어떤 경찰 간부는 강희락 전 청장의 전화를 받고 유씨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가 인사에서 손해를 봤다고 제게 털어놨습니다.
‘청장의 전화 한 통화’는 경찰청장 복무지침에 명시된 권한은 아니지만, 유씨 입장에서는 만날 때마다 1천만원씩 안겨줄 만한 가치가 있는 ‘힘’이었던 것입니다.
‘함바 게이트’ 수사는 마무리됐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함바 로비의 최대 피해자는 공사장 근로자들이다. 현장 식당 동태국에 동태 살은 없고 뼈만 있어서 ‘동태 사골국’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수사로 이런 말이 사라진다면 최고의 보람일 것이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공사 현장에서의 로비와 비리는 잠시 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관계의 고위인사들이 정당한 권한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힘’에 도취돼 있다면 제2, 제3의 ‘함바게이트’는 필연입니다. 기자들이 권력에 대한 감시를 멈출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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