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동몽? 우리는 모두 떠나고 싶다

불투명한 미래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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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 기자들의 최대 고민은 무엇일까. 연봉? 건강? 아니다. 기자들의 최대 고민은 불투명한 미래다. 매일같이 “기자는 비전이 없다”는 실존적 고민을 안고 사는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구조조정 후유증, 기업체 이직?”
나는 A일보 10년차 노총각 ‘한숨만(37·경제부)’기자다. 풍운의 꿈을 안고 신문사에 들어왔지만 요즘처럼 살맛 안 나는 때가 없다. 지난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타고 동료 선후배 2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살아남긴 했는데 쥐꼬리 만한 연봉, 그나마도 감봉하겠단다. ‘그만두고 싶다. 정말.’ 기자는 소진하는 직업이라 했던가. 머리도 텅 비어간다. 아무 생각 없이 통신사 기사를 베껴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한때는 시대를 논한답시고 폼깨나 잡았는데 어느새 부조리함에 순응하는 선배들을 닮아 있다. ‘확~ 사표 쓰고 사업이나 할까. 금성전자서 오랬는데 거기로? 모르겠다. 주가나 보자.’ “엇! 뭐야. 더 떨어졌잖아?” 중간정산으로 나온 퇴직금을 다 쏟아 부었는데 또 떨어졌다. 10년 전 대학동기가 방송기자가 됐다고 했을 때만 해도 “방송기자도 기자냐”고 비꼬았는데, 이젠 부럽다. 한숨만 나온다. “휴~”

 “기자, 비전 없고 힘들다”
‘우리 회사 정말 왜 이래?’ 하루에도 이 생각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B 방송사 2년차 ‘나잘난’기자(26·사회부)다. 수능시험 한 문제 틀리고 대학도 수석입학. 법대를 갈까 하다가 사회학과를 선택하면서부터 인생은 꼬였다. 같이 입사한 동기 중 절반이 1년도 안돼 그만두었다. “몸 축나고 비전 없다”는 이유들을 밝혔다. 일 안 하는 선배들, 회사의 ‘충견’이 된 부장들. 기사를 써 내면 ‘야마’가 완전히 달라진다. 기대했던 언론사가 아니다. 4년차 한 선배를 보면 더 갑갑하다. 어려운 취재는 나한테 미루고 현장에도 잘 안 간다. 지시도 내리지 않는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쳇.” 더 늦기 전에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온 게 아깝다. ‘옮기면 나으려나? 좀 더 큰 방송사로 갈까. 아예 시민단체로?’ 타닥타닥타닥. 메신저에 들어온 친구를 붙들고 한탄을 한다. “내가 왜 기자가 됐을까.”

“언론시장 변화, 유학 고려”
난 여성문제에 관심 많은 C신문 5년차 ‘우유부단(32·문화부)’기자. 어제 2년간 사귄 남자와 헤어졌다. 여기자라고 퇴짜만 맞다가 겨우 만난 남자인데, 결혼을 미루자고 했다가 결국 차였다. 결혼 직후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출산휴가도 제대로 못쓰고 악으로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결혼생활에 자신이 없어졌다.
요즘은 후배들의 지나친 열정이 내 숨통을 옥죈다. 공격적인 기사를 쓰며 선배들에게 대드는 후배를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우리 땐 안 저랬는데…’하는 생각이 앞선다. ‘네 뜻은 알지만 원론적으론 다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라는 말은 입 속에서만 맴돈다.
낙하산 인사들이 임원을 차지하고 필요한 인력은 구조조정 등으로 이곳을 떠났다. 노조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언론환경도 좋지 않고 먼 미래엔 C신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 요즘엔 그저 복잡해진 머릿속을 책으로 채운다. 문화부는 피신처다. ‘유학을 갈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 답은 거기서 멈춘다.

“교육비·노후 걱정, 정치권 곁눈질”

“기사를 발로 썼냐? 다시 알아봐!” 나는 한 때 특종 기사로 이름을 날린 경제지 D사 15년차 ‘최구악(44·정치부)’차장이다. 요즘 후배들은 어려움이라고는 도통 모른다. 또박또박 말대꾸는 있는 대로 하고 기사는 물먹기 일쑤다. 선후배 쌍방이 평가하는 ‘다면평가제’ 때문에 후배들 눈치까지 봐야하고 세상이 한참 거꾸로 돼가고 있다. 이뿐 아니다. 기획재정부 출입기자 당시에 말단 공무원이었던 ‘한심한’ 사무관은 이번에 부장 승진으로 고위직이 됐다. 지난주에 전화를 걸어와 “라운딩 한번 하자”며 동급 행세를 한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자가…’ 나보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동창들이 출세했다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아이들 교육, 노후까지 생각하면 기자 월급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정권이 바뀌면서 경쟁지 출신의 한 선배가 여당 부대변인이 됐다. 시류를 잘 타야 하는 건 정언명제다. ‘이참에 나도 옮겨볼까?’

“기자 경력 20년, 할 것 없어”
‘20년 동안 몸 바쳐 일한 대가가 이것이란 말인가.’ 난 E일보 ‘이열정(49·논설실)’위원이다. 어제 나온 종합검진결과를 한 시간째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대장암 초기, 조직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다. ‘아직 오십도 안 되었는데. 아이들 대학도 보내야 하는데…’ 1987년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E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를 거치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했다. 주말에도 출입처 근처에서 취재원과 술을 마셨다. ‘하늘도 참 무심하다. 내게 어찌 이럴 수 있나.’ 한 달 전 사내 계파 싸움에서 밀려 논설실로 발령나더니 이젠 몸까지 고장 났다. ‘2년 동안의 기러기아빠 신세가 날 이리 만들었을까.’ 입사 동기는 새 사장이 오기 전부터 ‘작업’을 해서 초고속 승진, 편집국장이 됐다. 모든 것이 후회된다. 덜 일하면서 더 약게 살 것을. “기자 경력 20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새 삶을 시작할 수나 있을까.” 곽선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