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마약실태 파헤치기까지

취재 사흘만에 유통 마약 대부분 입수, ´중독됐다´ 소리에 주점 종업원 즉석에서 나눠줘

서승욱 중앙일보 기획취재팀 기자


‘탐사 보도’의 중요성. 취재기자에겐 언제나 금과옥조(金科玉條)인 이 말을, 기사가 나간 후 쏟아지는 반향을 지켜보며 다시금 되새긴다.
9월초 한 검찰 간부와의 저녁 자리.‘마약 접근도(accessibility)’
란 용어가 화제에 올랐다. 일반인이 마약을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느냐로 사회의 건강 정도를 알아보는 이론적 개념. “위험하니 직접 하지는 말라”는 게 그 검찰 간부의 주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발표 기사만 쓰니까…”라는 말이 생략됐다고 느낀 건 왜였을까.
72시간의 도전.
취재팀은 사흘간의 취재를 거쳐 기사 게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의 가장. 그러나 사흘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취재팀의 손 안엔 히로뽕·대마·엑스터시·중국산 신종 마약·대용마약 누바인 등 국내에서 나도는 모든 마약이 놓여져 있었다. 취재팀이 엿본 한국의 마약 상황은 그만큼 심각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취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공항으로, 항만으로, 우체국으로….
끝없는 잠입 취재. 그리고 스릴. 취재팀은 2주일간의 추가 취재를 통해 구멍 뚫린 마약 감시망의 실체를 찾아냈다. 마약 사범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한국의 허술한 마약 정책도 한눈에 들어왔다.
취재팀은 이를 위해 20명이 넘는 마약 전과자들, 6명의 마약 중계상을 접촉했다.
취재팀이 이번 취재를 위해 쓴 술값은 비밀에 묻어 두겠다.
<에피소드 1>
취재 첫 날 무작위로 들어간 서울 영등포의 한 단란주점. 십여차례 폭탄주가 오간 뒤 함께 취재한 이상복 선배가 나를 ’마약 중독자‘로 소개했다.
“히로뽕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났다, 너무 불쌍하다…” 그러자 여종업원은 대뜸 “오빠, 그건 절대 못 끊는데… 돈 없으면 나눠줄게요. 이거라도 먼저 해 봐요”라며 중국산 마약 12정을 즉석에서 내밀었다. 첫 취재치고는 대성공, 우리의 간이 커지게 만든 시작이었다. 그 여종업원은 아직도 자신의 케이스가 기사에 나간 줄 모르고 접촉을 시도해 오고 있다.
<에피소드 2>
인천의 한 마약상과 접촉하기로 한 9월 중순 오후 3시. 주변의 한 커피숍에서 취재 전략을 논의하던 중 이 선배와 내 휴대전화로 20번이 넘는 괴전화가 걸려왔다. 받으면 끊고 또 받으면 끊고. 취재팀은 냄새를 맡은 수사당국이나 폭력조직이 위치확인에 나선 것으로 판단, 인천 시내쪽으로20분간 줄행랑을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취재 진전 상황을 체크하려고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에피소드 3,4>
부산취재에선 히로뽕이 공공연하게 나돈다는 부산역앞 외국인 시장에 갔다가 러시아 여성 호객꾼의 유혹에 넘어가 바가지를 쓴 사고도 있었다. 통관의 허술함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목동 국제우체국에선 국제 특급 우편물들이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을 목격, “제발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8월 ‘에이즈 무차별 확산’보도에 이은 이번 마약 보도로 우리팀은 사내에서 ‘엽기팀’이란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관세청이 장비·인력 확충 등 대책을 마련했고, 검찰에선 “지금까지 마약보도중 으뜸”이란 찬사까지 나왔다니 한달 가까이 진행된 마약취재가 헛고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보도가 마약에 대한 우리사회의 경각심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리 기사가 자칫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고심했다는 점도 이해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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