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아, 날씨가 좋다. 하늘은 파도 찰랑대는 바다처럼 푸르고 구름은 여유롭다. 기체후 일향 만강하신가? 하늘을 감상하고 있으니 문득 연합통신과 YTN 정치부 기자 시절에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는 몇 년 전 어느 날씨 좋은 날에 점심을 먹고 국회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뺨을 적시고 흐르더라면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더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사직을 결심한 듯 보였을 때는 이런 말도 했었다.
“정치부 기자로서 한국 정치 발전에 뭔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무력감이 든다. 별 거룩하지도 않은 경쟁 의식에 쫓기면서 하찮은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고 분석하는 일이 이제 신물 나고, 환멸감 마저 든다.”
그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너로부터 ‘야후 코리아’로 옮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에 두 명의 정치인 보좌관들로부터도 다른 일자리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내심 두 가지에 대해서 안심했다. 첫째는 네가 싫증이 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고, 둘째는 내 팔자와 처지가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직까지는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나는 부산일보 지면에 일조하는 기자로서 아직까지는 비교적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있고, 쓰고 싶지 않은 기사는 쓰지 않으면서 살 수 있으니 요컨대 나는 행복한 셈이다.
다만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해보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 생각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부산일보는 얼마 전에 수습기자를 뽑았는데, 나도 입사 이후 처음으로 시험감독을 했다. 그 일이 10여년 전의 언론고시 준비생으로서의 내 모습을 반추시켜 주었다. 나는 기자를 시켜주기만 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좀 부끄럽다. 분투하고자 한다. 그 시절에 영어 번역을 하다 접한 몇 가지 사실도 새삼 기억이 났다.
독일군이 산소부족 현상을 가장 빨리 감지할 목적으로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녔는데, 이 토끼는 기자와 흡사하다는 얘기도 그 중 하나다. 그러니 “나는 지나치게 태평스러운 건 아닌가?” 하고 다시 반성을 할 수밖에.
그리고 영국 권위지의 저명 칼럼니스트가 했던 말도떠올랐다.“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흘 안에 내각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수도 있다.” 사실 이 말은 하도 인상적이었던 터라서 영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을 만났을 때나 영국을 방문했을 때나 내 사적 질문의 포인트였다. 그런데, 놀랍기도 하지. 열이면 열사람 모두 다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100년 동안 그 신문사가 판단력과 정보의 정확도 측면에서 확고하게 국민적 신뢰를 구축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이곤 했다.
휘영아, 그러고 보니 당시나 지금이나 내 꿈은 좋은 칼럼니스트이다. 내게 있어서 일선기자 생활이란 좋은 칼럼을 쓰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 칼럼에 체험의 무게와 건강한 판단력, 불편부당의 서늘한 시각을 담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정치인 장기표나 한겨레의 손석춘 같은 양반을 좋은 칼럼니스트로 여기고 있다.
휘영아, 앞으로 자주 부산일보를 검색해서 나의 칼럼을 지켜봐 다오. 내가 알량한 소권력에 취하는지, 같잖은 사심이나 공명심에 함몰되는지, 천박한 지식으로 헛폼을 잡지 않는지, 지켜보고 채찍질 해 다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