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코앞인데 갈 곳은 없고…"

정년 앞둔 기자들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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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내년 정년퇴직자 급증…임금피크제 등 안전망 시급

한겨레 김영환 기자는 지난 3월 만 58세 정년을 맞았지만 앞으로 3년을 더 현장을 누빌 수 있다. 지난 2012년에 도입된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기자들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를 앞둔 기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인생의 반환점에 들어섰지만, 이들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경향신문(만56세), 서울신문·중앙일보(이상 만55세) 등 이들 신문사처럼 인생 이모작을 남보다 2~3년가량 일찍 준비해야 할 입장에 처한 기자들의 가슴은 더욱 먹먹할 수밖에 없다. 만 58세가 정년인 신문사들 역시 정년까지 채우는 경우가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기 때문에 이런 고민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정년을 앞둔 기자들은 은퇴 시점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은퇴에 대한 압박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지만, 대부분 뾰족한 대책이 없이 정년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년이 2년가량 연장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한 정년 연장법에 따라 오는 2016년부터 300명 이상 언론사도 60세 정년이 의무화될 예정이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1980년대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잇달아 신문이 창간되고, 올림픽 개최에 따른 기자 수요가 늘어난 덕에 1980년 중반부터 언론사에 대거 입성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격인 1955년생들이 정년퇴임을 시작한데 이어 올해는 1959년생 전후로 태어난 기자들이 인생 이모작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상황은 우호적이지 않다. 쏟아져 나오는 은퇴자에 비해 우리 사회나 언론계의 완충 시스템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신문은 올해 정년퇴직자(비편집국 포함)가 26명이고, 내년엔 2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전엔 한 해 평균 10명 안팎의 정년퇴직자 수를 감안하면 적잖은 규모다. 하지만 서울신문 내부방침상 지역주재 기자와 기술직에 한해서만 선별적으로 계약을 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향신문(11명), 중앙일보(8명) 등도 올해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은 숫자의 정년퇴직자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년 연장에 대한 기자들의 요구는 날로 커지고 있다. 본보가 이달 ‘한국기자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기자 여론조사에서 기자들의 67.8%가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적정 정년’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45.4%가 60세로 응답했다.

더구나 타 직종보다 낮은 임금 탓에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종잣돈은 고사하고 퇴직금마저 중간 정산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노후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올해 은퇴를 앞둔 A기자는 “퇴직을 앞두고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며 “당장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모아둔 돈도 없고 퇴직금은 이미 중간정산을 받아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걱정했다.

   
 
   
 
동아일보(2004년), 중앙일보(2000년), 서울신문(2000년·부국장급 승진시), 조선일보(2005년) 한겨레(2004년) 등은 퇴직금을 중간 정산했기 때문에 은퇴할 때 목돈을 손에 쥐기 쉽지 않다. 반면 벨기에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기자들에 대한 ‘노후 연금’을 일반인보다 30%를 더 주는 방식 등으로 언론인들의 노후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언론사 울타리에 있다 허허벌판에 나서는 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것 역시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올해 상반기에 은퇴한 B씨는 “최근엔 인생 이모작을 잘 준비해도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년 이후 다시 정규직으로 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이기 때문에 눈높이를 낮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편집국 출신들의 경우 정년퇴직을 앞둔 심정이 더욱 착잡할 수밖에 없다. 하반기에 은퇴를 앞둔 비편집국 C간부는 “기자 출신은 기업체 등으로 갈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비편집국 출신은 정년퇴직 이후 아파트 경비원이나 건물 관리직 등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최근엔 이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언론계가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 ‘언론인공제회’ 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게 정년퇴임을 앞둔 기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는 신문사는 한겨레, 서울신문, 중앙일보 등이 있지만 대상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선 사회적인 안전망 마련과 함께 인생 이모작에 대한 개개인들의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현직에 있을 때 전문성을 키워,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

3년 전 은퇴한 한 전직 기자는 “한두 살 젊었을 때 은퇴하는 게 새 일자리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며 “특히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자기한테 들어오는 일에 대해선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기가 맡아야지 또 다른 일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김창남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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