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픔에 공감한 교황
세월호 참사를 잊자는 언론

세월호 유족 광화문 농성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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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편지를 건네받고 있다. (뉴시스)  
 
“일부 언론 기득권 편승, 견제기능 상실”
힘없는 사람 얘기 들어줘야 진정한 언론


비가 뿌렸지만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모인 사람들은 묵묵히 천막 안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19일 오후 광화문 광장. 이날 천막 안에는 단식 37일째에 접어든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 의원은 김씨에게 단식 중단을 권유하는 중이었다. 문 의원의 긴 설득에도 이를 고사한 김씨는 잠시 후 힘겹게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걷는 그의 발걸음은 어딘가로 향했다. 청와대였다. 등에는 ‘대통령님! 힘없는 아빠 쓰러져 죽거든 사랑하는 유민이 곁에 묻어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불과 5일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공항에 도착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며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꼭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위로하고 아픔에 공감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십자가를 등에 지고 800㎞를 도보 순례한 이호진씨에게 세례를 줬고, 떠나는 날 실종자 가족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 도중 400여명의 유가족 앞에 내려 그들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김영오씨의 편지도 건네받았다. 김씨는 편지에서 “교황께서도 우리를 살펴주시는데 국민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한 달 넘게 굶고 있는 국민인 제게 오지도, 쳐다보지도 듣지도 않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정부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 참사에 무관심해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자면서 잊기를 강요했다. 경제 활성화를 주장하며 새로운 화두로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세월호가 차츰 잊혀져갔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세월호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세월호야?’라는 생각과 함께 제2의 참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진상규명을 통해 진정한 세월호 극복이 이뤄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장송회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은 “세월호를 극복하고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은 좋은 소리”라면서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극복할 것인지가 빠져 있다”고 했다. 그는 “아픔을 짓밟고 나아가는 길에 좋은 미래가 펼쳐지겠느냐”면서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정원씨는 “세월호 아래 수많은 것이 깔려 있는데 언론이 무서워서 덮은 것은 아니냐”면서 “시민들이 무엇이 진실인지 답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정아씨도 “언론이 정부에 동조하는 것 같다”며 “권력과 유착하지 말고 언론 본연의 자기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식 농성에 동참한 영화인들은 언론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수 감독은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에 대한 고마움은 있다”면서도 “일부 언론은 권력을 가진 기득권에 편승해 견제기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세상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그 균형은 정 가운데가 아니라 힘이 없는 쪽의 얘기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배우 김뢰하씨는 “진짜 권력은 언론이 쥐고 있다”면서 “대통령은 5년 임기로 끝이지만 일부 언론은 오래 전부터 권력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이 진정으로 바뀌려면 편집국장 등 데스크가 세월호 유가족 단식에 동참할 만큼의 동조의식을 갖추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언론에게 어떤 역할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세월호 피켓을 들고 있던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 노조원은 “말한다고 바뀌나. 정부가 언론을 꽉 잡고 있다”면서 “쌍용차 사태나 세월호 참사나 언론 보도가 제대로 안 되는 건 똑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박용우 세월호 가족대책회의 광화문 생활실장도 “똑바로 보도하라”는 한마디만 했다.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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