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7시간 행방불명과 누락된 의제

[언론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일본 보수지 산케이신문이 8월3일자 서울 지국발로 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한국에서 큰 논란이다. 가토 다쓰야 산케이 서울 지국장은 행방불명된 7시간의 ‘사생활’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8일 “끝까지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고 장담하고, 검찰은 10일 가토 지국장을 출국금지 시킨 뒤 12일 검찰 출석을 요구했다. 산케이신문은 “문제의 기사는 한국 국회의 질의응답과 조선일보 칼럼 소개에 중점을 둔 것”이라며 반발했다. 산케이 발(發)로 확대재생산 된 ‘7시간 미스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언론이 의제설정에 실패한 것은 아닌가 짚어볼 만하다.

‘4월16일 박 대통령 7시간의 미스터리’는 지난 7월7일 제기됐으나 발언 시점부터 묻혔다. 이는 국민 다수가 ‘어떤 진실’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다.

조선·동아·한겨레·경향 보도를 중심으로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불러 박근혜 대통령의 제2기 내각 인사 난맥과 세월호 관련 사안을 집중적으로 공박했다. 여기서 박영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보고를 늦게 받았을 뿐 아니라 대면보고가 아닌 서면·유선보고만 10여 차례 받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김 비서실장은 의혹을 인정했고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대통령의 동선은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조선일보는 ‘김기춘 인사책임 전적으로 내 책임’이란 제목으로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문창극 총리 후보가 사퇴했고,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의 자격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라 나머지 3개 신문들은 이 발언을 제외한 채 인사문제만 보도했다.

언론이 이 사안을 묵살하자, 박영선 원내대표는 그 다음날인 8일 다시 이 문제를 꺼냈다. “대통령이 중앙재해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7시간여 동안 대통령 대면보고가 없었다. 대통령 주재회의도 없었다”고. 이번엔 경향과 한겨레가 9일자로 쓰고 제목도 뽑았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할 지면배치였다. 경향신문은 4면 하단 3단기사로 ‘대면보고도 주재회의도 없어/ 골든타임, 대통령은 어디 있었나’라고, 한겨레는 6면 중간 부분에 3단 기사로 ‘박대통령 사고직후 8시간 대면보고 없어/ 김기춘 실장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전날 보도한 조선일보는 물론, 동아일보는 보도하지 않았다. 국민은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서 해경들이 업무에 힘쓰지 않고 TV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신문을 보거나, 골프 퍼팅연습을 하는 CCTV 화면을 검찰이 공개하자 분노했다. 박 대통령이 발표한 ‘해경 해체’는 자업자득이라며 혹독하게 굴었다. 같은 잣대라면 참사가 벌어진 시점에 행방불명된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했는지 6하원칙에 따라 알아야할 권리가 국민에게는 있었다. 박 대통령이 행방불명된 7시간 동안 24번의 서면보고를 받았다지만, 오후 5시15분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어렵느냐”고 질문함으로써 세월호 참사의 상황을 숙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언론은 의제설정 과정에서 이를 소홀히 했다.

이후 동아일보가 7월14일자 사회면 톱기사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최태민 목사의 사위였던 정윤회씨가 지난 5월 이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도했고, 이 보도는 7시간의 행방불명된 대통령의 행적과 연결시켜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가 7월18일자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을 쓸 토양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칼럼조차도 ‘조선일보에서 왜 이런 칼럼을?’하는 의혹을 확산시켰을뿐 신문과 방송 등 전통 미디어의 의제로 전환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7시간의 부재를 조선일보나 산케이에서는 남녀관계와 연결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합리적인 의심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의 7시간 행방불명의 핵심은 ‘4월16일 세월호 참사에서 청와대와 정부는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한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거듭된 주장이 정치적 책임의 회피 이상의 법적 추궁을 벗어나려는 계산이나 복선이 깔린 것은 아닌가 밝히는 것이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언론의 합리적 의심이 아닐까 한다. ‘7시간의 행방불명’이라는 의제가 일본의 산케이신문을 통해 확산됐지만, 지금이라도 명확히 대통령의 7시간은 밝혀져야 한다.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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