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저널리즘과 기자의 일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  
 
‘기득권’을 갖고 있던 직업들의 세계에 ‘힘겨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사실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신문을 펴면 변호사회 회비도 못내는 변호사가 많다는 기사에 이어, 하단에 ‘의사 개인파산 신청 전문’이라는 법무법인의 광고까지 볼 수 있는 요즘이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독과점적인 의제설정 기능을 통해 기자가 사회여론을 주도해갔던 언론환경은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크게 바뀌었다. 매체가 급증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기자보다 영향력이 큰 개인 블로거나 SNS 논객도 나왔다. 게다가 ‘로봇 저널리즘’까지 등장하면서 기자는 이제 로봇과도 경쟁해야 하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주 화요일 예전에 근무했던 언론사의 OB들과 저녁모임을 가졌다. 또 목요일에는 그 언론사의 현역 선·후배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때 공통적으로 나왔던 이야기가 있다. “요즘 젊은 후배들을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1990년대 중반 증권거래소와 증권감독원을 출입했을 때가 기억났다. 당시 기자실은 열 명 남짓의 기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나중에는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를 담당했는데, 상주하는 기자들이 조금 더 많긴 했지만 분위기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 후 언론사를 떠난 뒤인 2000년대 중반 증권거래소 기자실에 가본 적이 있다. 족히 70~80명은 되어 보이는 기자들이 독서실 부스 같은 칸막이 책상에서 ‘조용히’ 기사작성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언뜻 ‘피곤한 샐러리맨’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크게 바뀐 기자실 분위기에 놀랐다.

하지만 설사 힘겹다해도 기득권이 무너지고 참여와 개방, 경쟁으로 나아가는 이런 시대의 방향은 피할 수도 없거니와, 옳은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이제 ‘대체 가능한 제너럴리스트’에서 멈춰 있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 가지 분야에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고 자신의 온·오프라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블로거, 위키피디아, 나아가 ‘로봇 저널리즘’과 경쟁할 수 있다.



   
 
  ▲ 로봇이 쓴 기사를 주요 언론사에 판매하는 미국의 온라인 콘텐츠 회사 ‘내러티브 사이언스’ 광고.  
 
이미 보스턴글로브에서는 야구경기 결과 같은 스포츠 기사를, 포브스에서는 금융 기사를 로봇이 일부 담당하고 있다. 데이터가 표준화된 분야라면 지금의 기술로도 얼마든지 전형적인 기사는 자동 생산할 수 있다.
고2인 아이가 과제물을 작성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제법 묵직한 주제였지만 아이는 하루 만에 독창성은 없지만 그럴듯한 구성의 보고서를 완성했다. 위키피디아와 구글, 네이버를 통한 검색으로 찾은 자료들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런 리포트까지도 미래에는 로봇이 해낼 것이다.

그러고 보니 1995년 경제부에서 증권을 담당하고 있었을 때가 떠오른다. 증시가 폐장되는 오후 3시면 매일 ‘천편일률적’인 시황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증시의 구조적인 문제나 정부의 금융정책 등 호흡이 긴 기사를 쓰다가도 멈춰야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몇가지 패턴에 그날의 수치만 입력하면 되는데. 자동으로 시황기사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내가 쓰고 싶은 기사에 집중할 텐데….” ‘드디어’ 그런 시황기사는 로봇이 작성할 수 있게 됐다. 그건 자칫하다가는 로봇에게 밀려날 수 있다는 ‘피곤함’이기도 하지만, 로봇에게 단순한 일을 맡기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희망’이자 ‘새로운 세계’이기도 하다.

이제는 기자가 인터넷에 무수히 쌓여 있는 범용 콘텐츠들과는 다른 기사를 쓰고, 로봇이 해내기 힘든, 소프트웨어로는 대체하기 어려운 자신의 전문분야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명성을 쌓아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해야 하는 시대다. 예병일 플루토미디어대표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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