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은 기억하는 아산 앞바다와 평양

[글로벌 리포트 | 중국]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풍도(豊島)에서 북양해군을 기습하며 한반도에서 전쟁 도발’.
지난 23일 청일전쟁(중일갑오전쟁) 120주년 취재 차 찾은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 류궁다오(劉公島)의 갑오전쟁박물관은 청일전쟁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일본군이 1894년 7월25일 우리나라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선에 기습 공격을 해, 전쟁이 촉발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문구 아래에는 고종을 ‘조선국왕 이희(李熙)’로 표기한 사진과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의 사진도 있었다. ‘1894년 봄 동학당 농민 운동이 발생한 후 조선은 중국의 원조를 요청했다. 일본은 중국을 부추겨 조선에 파병하게 한 뒤 대사관과 상인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군대를 조선에 진출시켰고 이후 선전포고도 없이 갑오전쟁을 일으켰다’는 게 안내문의 골자였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청일전쟁의 무대는 우리나라 산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발길을 옮기자 평양전투의 상황이 소개돼 있었다. 평양에 주둔해 있던 청나라 군대는 1894년 9월15일 일본군의 공격에 2000여명이 숨지고 300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패를 당했다. 이어 9월17일 압록강 하구에서 벌어진 황해해전에서도 청나라 군함이 5척이나 침몰됐다. 황해해전은 증기 동력 전투함이 만들어진 이후 규모가 가장 큰 규모의 해전이었다. 이를 계기로 제해권은 완전히 일본으로 넘어갔다. 아시아의 판도가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바뀐 순간이다.

일본은 10월25일에는 압록강 전투에서도 승리, 청의 방어선을 뚫고 중국 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놨다. 이후 일본은 랴오둥(遼東)반도의 뤼순(旅順)과 다롄(大連)을 정복한 뒤 1895년 2월에는 청나라 북양해군 사령부가 있던 류궁다오까지 공격, 북양해군을 전멸시키면서 전쟁에서 완승했다.

청일전쟁 120주년을 취재하며 류궁다오의 갑오전쟁박물관에서 풍도, 평양, 황해, 압록강 등 우리의 산하가 양국 군대에 짓밟힌 모습을 돌아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다. 그러나 누구도 그 피해자를 기억하는 이는 없다. 당시 우린 청일전쟁의 의미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이후에도 이 전쟁을 잊고 지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인은 남의 나라 땅까지 가 치른 전쟁의 굴욕과 교훈을 잊지 않겠다며 당시 전멸했던 북양해군 사령부에 박물관을 세워 기념하고 있는데 정작 우린 우리 땅에서 벌어진 전쟁조차 기억하지 않고 있다. 남의 나라 군대들이 우리나라에 와, 우리나라를 전쟁터로 삼아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우린 과연 뭘 하고 있었는지 반성도 안 보인다.

더구나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장악력이 열강들과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일전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한 대사건이었다. 일본이 우리를 강제 병탄한 것은 1910년이지만 일본은 이미 그 16년 전 청일전쟁의 승리로 한반도를 수중에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청일전쟁을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남의 나라 군대에게 우리의 산하를 싸움터로 내 줬던 비극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며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의 길로 가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 굴욕을 결코 잊을 수 없다며 청일전쟁 120주년을 맞아 육해공군을 모두 동원, 3개월 간 이례적인 실전 군사 훈련까지 진행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120년 전 동학농민운동을 핑계로 한반도에 군대를 보낸 일본이 이젠 북한 핵을 빌미로 해 한반도로 다시 진출하려 한다고 우려한다. 이 경우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대결하고 있다. 양국 비행기가 분쟁 해역 상공에서 위협 비행하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120년 전 우리 지도층은 외세에 의존해 내부의 문제를 풀려다가 결국 나라를 다른 나라들의 전장으로 내 줬고 결국은 국가까지 빼앗겼다.

지금도 민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힘을 쏟는 대신 외부의 힘과 사대주의를 신봉하는 듯한 지도층 인사가 적잖다. 미국이니 중국이니 눈치 보며 줄타기 외교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게 유일한 대책이다. 120년 전 청일전쟁이 주는 교훈이다.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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