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死전, 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제286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 세계일보 오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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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일보 오현태 기자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겠다. 우리 집에는 국어사전이 없다. 내 기억 속에는 분명히 검은색 표지에 금색으로 ‘새국어사전’이라고 써 있는 중사전이 있었는데 책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국어사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영어사전만 2권 나란히 놓여있었다. 국어사전의 위기를 취재한다면서 정작 우리 집에 국어사전이 없다니 양심에 걸렸다.

취재를 할수록 부끄러움은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우리 국어사전은 대부분 뜻풀이가 비슷하고 내용은 10년 전과 비교해 추가된 것이 거의 없었다. 국가에서 큰돈을 들여 만든 국어대사전은 전문용어만 가득해 정통 국어사전과 거리가 멀었다. 민간 출판사는 매년 국어사전을 새로 찍으며 마치 새로 만든 사전처럼 팔고 있었지만 눈속임에 불과했다.

박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희망은 학계에 있었다. 민간 출판사의 사전 편찬실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국어사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내 청춘이 국어사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어대사전을 만들 때까지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학자들의 눈빛에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이들에게 돈과 시간이 주어진다면 단어의 어원을 낱낱이 밝히고, 예문이 풍부하게 담긴 ‘한국판 옥스퍼드 사전’을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사전의 과거를 비추고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물으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기꺼이 취재에 응해주신 남길임 경북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교수님을 포함한 여러 전문가 덕분에 양질의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 또 문화와 관련된 주제라 다소 파급력이 약할 수 있음에도 5일에 걸쳐 지면을 넉넉히 내준 편집국장과 취재부국장을 비롯한 편집국 식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기사가 ‘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심폐소생술’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국어사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국어사전을 하나 사서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세계일보 오현태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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