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말말 |
“세월호, 해상 교통사고 관점에서 봐야” “6석 이상은 확보해야 새누리당에 경고” “대한민국과 동작을 살려달라는 취지였다” “유병언 차명재산 많아… 관련 인물이 유씨의 죽음에 관여했을 것” |
지난 28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세월호 공판에 단원고 생존 학생 6명이 증인으로 나서 사고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학생들은 법정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해경에 말했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해경이 있었다. 해경은 나오라고도 하지 않고 배에 오르지도 않았다”, “선내 방송은 ‘특히 제발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해경과 선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음을 재확인하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날 재판을 참관했던 이명숙 변호사(대한변협 세월호특위 위원장)는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해경이나 선원을 아무도 본적이 없다, 미리 나오라고 이야기만 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라면서 많이 마음 아파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학생들의 진술을 전하며 “배가 기울어지면서 창문이 바닥이 되고 출입문이 천장이 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트렁크 등 모든 것들이 다 창문 쪽으로 쏟아져 아이들이 울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당황해하니까 반장이 침착하라며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고 먼저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리고 캐비닛을 밟고 아이들이 천장이 된 문 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됐는데 ‘움직이지 마라, 대기하라, 특히 단원고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계속 나와서 그걸 듣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처음에 구명조끼 입으라고 하고 아이들을 침착하게 달래주던 반장도 끝내 못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마음 아파했다”며 “내가 마지막에 뛰어내리고 파도가 들이쳐서 내 뒤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복도 안쪽으로 휩쓸려 들어가서 모두 이렇게 얼굴을 보지 못하게 돼 마음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울컥하고 마음이 아팠다. 증언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28일 오후 경기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증언한 뒤 귀가하고 있다. (뉴시스) | ||
이 변호사는 학생들이 증언을 앞두고 겪었을 심리적 압박감에 대해 “법원, 검찰, 변호사 모두가 학생들과 안면도 익히고 편안하게 해줬다”며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이 법정에 가서 선서를 하고 처음에는 한 두 명 정도가 법정에서 하겠다고 했는데 분위기를 보더니 1명만 화상증언을 하고 나머지 5명은 모두 법정에서 증언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학생들을 위해 광주에서 하는 재판을 안산으로 옮겨서 했기 때문에 피고인인 승무원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며 “원래 한 명이 안산까지 가서 지켜보겠다고 했는데 그분도 포기함으로써 아무도 오지 않았고 학생들이 피고인들을 만날 일은 없었다. 설령 만났더라도 선원들이나 선장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으니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29일 재판에는 생존학생 17명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이 변호사는 “증언을 앞둔 학생 부모님들은 불안해하기도 했다”면서 “이전에 변호사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채취도 했고 학생들과 검사들이 다독거리며 얼굴도 익혔다. 그리고 부모님도 몇 차례씩 만나서 수시로 이야기 했고, 어제 이미 증언을 한 차례 했기 때문에 훨씬 부담도 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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