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참패와 호세프 대통령 재선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2014년 월드컵에서 개최국 브라질 대표팀이 거둔 성적을 10월 대통령 선거에 연결시키려는 의견을 자주 볼 수 있다. 월드컵 통산 6회 우승이라는 목표가 허무하게 좌절되면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 꿈도 멀어졌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4강전에서 독일에 1-7로 참패했고, 3~4위전에서는 네덜란드에 0-3으로 무릎을 꿇었다. 축구에 관한 한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브라질 국민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우승을 당연시했던 브라질 국민이기에 월드컵 실패는 상당기간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 월드컵과 대선의 연관성을 거론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브라질이 개발독재시대와 군사독재정권을 거쳐 1985년 민주주의를 회복한 이래 월드컵과 대선이 같은 해에 시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게 아닌가 한다.

브라질에서는 1994년 미국 월드컵과 대선에 얽힌 에피소드가 한동안 회자됐다.
좌파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달렸다. 대선 전략에 여유가 생긴 룰라는 브라질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집에서 가족들과 TV를 시청했다.

상대 후보는 고질병인 하이퍼 인플레를 잡는 데 성공한 재무장관 출신의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였다. 카르도주는 브라질 대표팀 경기가 열리면 대선 캠프에 기자들을 초대했다. 기자들은 카르도주가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런 모습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브라질이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 국민의 뇌리에는 룰라가 아니라 카르도주가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이것이 카르도주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브라질 대선과 월드컵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엇갈린다.
상파울루 대학 역사학과의 플라비우 지 캄푸스 교수는 역대 월드컵 가운데 이번 대회가 유난히 정치화됐다고 주장했다. 브라질 대표팀의 독일전 참패가 이미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호세프 대통령이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브라질의 유명 사회학자인 안토니우 라바레다는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단언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프랑스에 0-3으로 완패했지만, 카르도주 대통령은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성적은 시원치 못했으나 룰라는 재선에 성공했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도 상황은 비슷했으나 룰라가 호세프를 당선시키며 집권 연장에 성공한 것도 사례가 될 수 있다.

브라질의 주요 언론은 전문가들을 동원해 대선과 월드컵의 연관성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당연히 결론은 없다.
월드컵 성적이 실제로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여론의 흐름을 지켜봐야 한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세프 대통령의 예상득표율은 38%였다. 유력 야권 후보들을 18~29%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선거 전문가들은 호세프 대통령이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로 당선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1차 투표 1~2위 후보가 다투는 결선투표에서는 야권의 어느 후보와 맞대결해도 승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역시 경제다. 브라질 경제는 룰라 전 대통령 정부 8년간(2002~2010년) 연평균 4%대 성장률을 유지했다. 호세프 대통령 정부 4년(2011~2014년)의 평균 성장률은 2%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플레율은 정부의 억제 목표치를 위협할 정도로 상승 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12개월 인플레율은 6.52%로 나왔다. 높은 인플레율에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드컵 기간 잠잠했던 시위와 파업도 다시 시작될 조짐을 보인다. 노동계는 근로자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공공서비스, 월드컵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한 것 등에 대해 큰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부터 ‘월드컵 반대’ 시위를 주도한 사회단체들은 브라질 대표팀의 참패가 정부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며 시위 확산 가능성을 예고했다.

월드컵이 막을 내리면서 대선을 앞두고 이런 악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호세프 대통령으로서는 ‘월드컵 후유증’을 혹독하게 경험할 수 있다. 월드컵 참패의 상처를 안은 민심이 어디로 흐를지 주목된다.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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