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편집·보도권 침해…견제 장치 절실

KBS·SBS, 중간평가제 유명무실
CBS, 국장 선출 구성원 참여 보장
YTN, 3배수 추천제 사측 일방 폐지
경향·동아·한겨레·한국 임명동의제
서울, 노사 TF 가동 선출방식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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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환영 전 KBS 사장이 ‘보도 침해’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보도 공정성과 독립성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임투표제, 중간평가제, 임명동의제 등이 대표적인 경영진 견제 장치 역할을 하지만 일부 언론사에 한정된다. 본보는 주요 신문·방송의 보도 책임자 선출방식을 살펴봤다.

<방송사>
지상파 3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방송사들은 보도본부장이나 보도국장 선출에 구성원들이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다. 중간평가의 의미로 신임투표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불신임 여론이 높아도 실제 인사 조치로 이어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사실상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KBS는 단체협약에 따라 취임 1년을 맞는 본부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신임투표 결과 불신임 의견이 재적 대비 과반이면 인사 조치를, 3분의2 이상이면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문책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지난 2012년 초 84%(재적 인원 대비 70.7%)의 압도적인 불신임을 받고 자진 사퇴한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이례적인 사례로 꼽힐 정도다.



   
 
   
 
이 때문에 KBS 기자협회는 본부장 신임 투표 결과 불신임이 높을 경우 해임을 의무화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보도국장과 시사제작국장에 대한 임명동의제와 중간평가제도 도입도 요구하고 있다. 6개월 이후 중간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해임을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차기 사장으로 내정된 조대현 후보가 국장 임명동의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KBS 이사회 역시 수신료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된 ‘주요 8개 국장 직선제’ 안건을 인사권 침해를 이유로 부결시킨 바 있다.

SBS도 보도·제작·편성본부장에 대한 중간평가 제도는 마련돼 있다. 그러나 중간평가 시기가 되면 경영진이 먼저 보직 변경을 하거나 인사 교체를 해 실질적인 견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11년 11월 SBS 사상 최초로 이웅모 보도본부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진행됐지만 이 본부장은 그대로 유임됐고, 2년 뒤 사장에 올랐다.

MBC는 지난 2011년 9월 단체협약 개정을 통해 공정방송 침해 사례 발생 시 공정방송협의회를 열어 문책대상자의 보직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단체협약이 만료된 이후 ‘무단협’ 상태에 놓이면서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사라졌다. YTN은 지난 2003년부터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를 실시해왔으나 2008년 배석규 사장의 일방적인 무효 선언으로 폐지됐다.

CBS는 국내 방송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보도국장 임명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 단체협약에 따라 보도국장과 편성국장의 경우 노조원 대상 투표에서 20% 이상을 얻은 후보자 2~3인을 추천하면, 사장은 이 가운데 1명을 국장으로 임명하는 방식이다. 1위 득표자를 임명하는 것이 관례이나, 지난 2010년 2위 후보를 보도국장에 임명하면서 한 차례 내홍을 겪기도 했다. 결국 해당 국장은 임기를 절반만 채우고 자진 사퇴했고, CBS 노사는 보도국장 임명에 직원들의 뜻을 반영하는데 합의했다. 김상철 전국언론노조 CBS지부장은 “국장은 자신이 선출된 근원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보도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해 무거운 부채의식을 갖고, 임명권자와는 등거리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며 “이것이 우리가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신문사>

신문사의 지배구조는 사적 성격이 짙지만,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다소 이중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편집권 독립’은 신문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문제다. 이 때문에 편집국장 선출방식은 해당 신문사의 편집권 독립 수준을 판가름할 수 있는 주요 척도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편집국장 선출 방식은 크게 임명제, 임명동의제, 임면동의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경향신문(2003년), 한겨레(2005년), 서울신문(2009년)은 2000년대 구성원들이 편집국장을 직접 뽑는 직선제에서 인사권자가 임명하면 이에 대한 동의여부를 투표하는 임명동의제로 바꿨다.

선거철만 되면 조직 전체가 업무보다는 선거 판세에 매몰되고, 선거 직후 후폭풍 역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면을 잘 만들 수 있는 편집국장’보다는 ‘인기 있는 편집국장’을 선호하는 편집국 분위기도 한몫했다.



   
 
  ▲ 경영진의 편집·보도 개입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편집국장 임명동의 투표에 대한 개표 작업을 벌이는 모습. (한국일보 노조 제공)  
 
임명동의제를 통과하기 위해선 회사에 따라 재적인원 혹은 투표 참석자의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다만 경영진이 낙점한 편집국장에 대한 견제를 위해 중간평가제나 탄핵제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직선제 폐지’ 이후 편집권 독립이 흔들린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신문은 편집국장 선출 방식을 재논의하고 있다. 실제 서울신문은 지난 6개월 동안 편집권 독립을 목표로 ‘편집국장 선출제도 개선위원회’를 가동, 지난달 선출지명제, 지명선출제, 임명동의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은 보고서를 만들고 노사가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이다.
한국일보도 지난 1991년부터 임명동의제를 통해 편집국장을 뽑고 있다.

반면 오너의 입김이 강한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신문 중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실시하는 곳은 동아뿐이다. 동아는 지난 1989년부터 노사협약에 따라 사측이 편집·출판국장을 임명하면 ‘투표개표관리위원회’가 꾸려지고, 신임 여부를 묻는다.

중앙은 임명제로 바꾼 이후 제도 보완을 위해 2000년 ‘중간평가제’를 재도입했지만 2011년 ‘불신임 건의제’로 바꿨다. 불신임 건의제는 편집국장이 공정성을 잃었다고 판단될 때만 조합원의 3분의 1 이상 발의로 인사권자에게 건의하는 제도다.

이 밖에 국민일보, 내일신문, 문화일보, 세계일보 등은 인사권자가 편집국장을 임명하면 바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고, 이 가운데 국민만 지난 2009년부터 ‘편집국장 평가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2012년 파업을 통해 편집 관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편집상무 자리를 없애고 편집총국장, 국제국장, 지방국장에 대한 기자직 임면동의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한 신문사 노조 관계자는 “많은 신문사들이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면서 찬반 여부를 물을 구성원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가 화두가 되고 있다”며 “출장, 병가 등의 인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사장된 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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