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기억 그리고 감성팔이

[언론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태도는 매우 미숙하다. 아니 나 자신부터 기껏해야 언론의 ‘경마 저널리즘’에 비판을 가하는 게 전부였다. 비판을 넘어서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사실 깊이 고민하지 못했던 셈이다.

‘기억하기’에 대해 특히 좀 더 골똘히 생각하게 된 데는 얼마 전 뉴스타파가 미니다큐로 만든 ‘예슬이의 꿈’ 편을 제작한 게 계기였다. 예슬이는 단원고 학생으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 중 한명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예슬이는 수많은 디자인 습작들을 남겼는데 이를 모아 전시회를 한다는 게 미니다큐의 주요 내용이다. 당연히 이는 예슬이를 포함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이 아이템은 내가 발굴한 게 아니라 전시회를 주관하는 분이 제안해 기존의 아이템을 뒤로 미루고 급하게 제작한 것이다. 더구나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즉 나 역시 ‘세월호 기억하기’라는 면에 있어서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따라서 막상 아이템이 내 앞에 왔을 때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아 허둥댔던 셈이다.

물론 희생자들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식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혹시나 ‘감성팔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 자기 검열을 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소재로 다뤄 눈물샘을 자극해서 미니다큐 조회수를 높이려 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두려움은 예슬이가 남긴 작품들과 예슬이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금세 사라져 버렸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대단히 ‘오만’한 것이 아니었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슬이는 너무나 예쁜 학생이었고 예슬이가 품었던 꿈은 여느 고등학생들의 꿈이 그러하듯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너무나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성팔이’의 함의는 고통스러운 대상을 소개하면서 과도하게 눈물샘을 자극함으로써 오히려 대상이 처한 고통 그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걱정에서 나온 것이리라. 시청자(관객)는 그러한 영상이나 글을 보면서 정서적 배설을 하게 되고 결국 문제를 잊게 만든다는 논리다.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말처럼 ‘오만’한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제작자가 관객의 감성을 매우 강력하게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걸 전제하고 있으며, 동시에 관객의 감성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 역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약하면 관객들은 일종의 ‘우민’이니 잘 통제해야 한다는 걸 은연중에 깔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을 특정한 감정으로 몰아가 선동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 특히 희생자나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을 억지로 차단하거나 막는 것 역시 결코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감정적 배설로만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애초부터 그걸 못 느끼도록 하는 건 또 다른 방식의 억압적 폭력이다.

‘이성적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이퀼리브리엄’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특정한 약물을 모든 이들이 복용해야만 하는 ‘감성이 억압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이 약물을 끊임없이 주입했던 주인공은 아내가 화형을 당하는 순간에서조차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지켜만 본다. 아내에 대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이성적으로만 기억된 아내와의 추억은 사실 ‘무의미한 기억’에 다름 아닌 셈이다.

‘이성’을 앞세워 인간의 본질인 감성을 ‘억압’하는 방법으로서 결국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 영화 속 권력층은 ‘이성’이 그토록 경계하고 혐오하는 ‘파시즘’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나아가 영화의 제목 ‘이퀼리브리엄’이란 말의 뜻이 가장 이성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균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공감’을 통해 기억하기 위한 많은 움직임과 그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시선들에 대해 나름의 통찰을 할 수 있는 좋은 근거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