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세상과 마주한 채 '디지털 퍼스트'를 꿈꾸다

[기자25시](13)한국일보 최진주 디지털뉴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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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개발·운영까지 총괄 ‘한국일보닷컴’ 새로운 도전
입사 전 IT업계 근무 경력이 자체 사이트 개발 큰 도움
신문, 공급자 마인드 벗어나 이용자 편의 우선 고려해야


한국일보가 지난달 19일 ‘한국일보닷컴’을 오픈하며 한국아이닷컴과 결별하고 온라인 ‘독립’을 선언했다. 자극적인 제목과 낚시성 기사를 내세워 클릭 장사에 혈안이 되어 있는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 ‘반칙 없는 뉴스’를 표방한 한국일보닷컴의 새로운 실험과 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잦은 부침과 오랜 법정관리로 집안 사정은 어렵지만, 늦어진 만큼 착실하게 ‘디지털 퍼스트’를 구현하겠다는 고민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아직 보완해야 할 것 투성이지만, 한국아이닷컴이 제기한 한국일보닷컴 사이트 개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고 포털 뉴스 공급 재개에 초록불이 켜지는 등 긍정적인 신호들이 하나둘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뗀 첫 발.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무리한 시도 없이 한 발 한 발 착실히 내딛고 있는 한국일보닷컴의 행보를 최진주 뉴스팀장의 일과를 통해 들여다봤다.

지방선거 생생 정보 전달
6·4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이자 ‘샌드위치 연휴’의 첫날인 지난 4일 아침. 평소 같으면 출근길 인파로 북적일 거리의 풍경이 한산했다. 남대문로를 사이에 두고 명동거리와 마주하고 있는 한진빌딩 15층의 한국일보 편집국도 고요함 속에 아침을 맞았다. 선거일은 신문사의 최대 ‘대목’ 중 하나. 휴일이지만 쉴 수 없는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모니터 세상’과 마주한 디지털뉴스부의 기자들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작은 소음’만이 조용한 편집국의 공기를 두드렸다.

“투표는 하셨어요?” 대답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에 최진주 기자는 역시나 “사전투표 했어요”라고 답한다. 최 기자는 이날 조근 당번이라 아침 7시에 출근했다. 전날 기사를 쓰느라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했지만, 예외가 없었다. 한국일보닷컴 사이트 오픈 후에는 부장과 팀장을 포함한 10여명의 부서원들이 돌아가면서 조근과 야근 당번을 맡고 있다. 사이트 오픈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했으니, 지금은 오히려 나아진 셈이다.

이날 디지털뉴스부에 내려진 특명은 ‘지방선거 라이브 캐스트’ 운영. 투표율 집계부터 투표장 소식, 개표 결과 등 선거 관련 소식을 한 페이지에 모아 ‘새로고침’만 하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 뉴스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사이트 오픈 후 처음 맞는 ‘빅 이벤트’인 만큼 부서원들도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최진주 기자가 전날 야근을 한 김영환 총괄팀장을 대신해 편집국 부장단 회의에 들어간 사이에도 선거 아이템 관련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투표율 집계가 뜨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업데이트 하고, “연예인 투표 인증샷을 모아보면 어떨까”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행동에 옮기는 식이다. “다들 일당백을 하고 있어요. 소수라도 제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100명보다 나은 셈이죠.”

‘디지털 퍼스트’가 답이다
최 기자가 자랑하는 ‘드림팀’ 진용이 꾸려지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뉴스 사이트를 외주에 맡기지 않고 자체 개발하기로 한 것부터가 모험이었다. 한국일보는 기존에 자사 뉴스를 공급해오던 한국아이닷컴과의 계약을 지난 4월 말로 해지하고 ‘인하우스’ 방식으로 한국일보닷컴을 만들었다. 지난해 한국일보 사태를 경험하며 바닥까지 추락했던 이들이 수개월 연구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놓은 답은 하나, ‘디지털 퍼스트’였다.

한국아이닷컴과 결별한 상황에서 ‘닷컴’ 업무를 분리하는 것이나 여타 언론사들처럼 솔루션을 사다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은 궁극적인 ‘디지털 뉴스룸’의 지향점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발품을 판 끝에 “훨씬 적은 서버와 트래픽 사용으로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 개발에 착수했다. 최 기자는 “디지털 뉴스 시대에는 어떤 전산 프로그램을 사용하느냐와 우리 엔진의 차별화된 포인트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국일보닷컴에 쓰일 새로운 제호 디자인을 두고 김영신 운영팀장, 김영환 총괄팀장, 최진주 뉴스팀장이 웹디자이너와 함께 의견을 나누고 있다.  
 
최 기자는 한국일보 사태로 비대위가 꾸려졌을 때부터 이번 디지털 프로젝트의 매니저를 맡아왔다. 평소 IT에 관심이 많고 2002년 한국일보에 입사하기 전 IT 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최 기자가 아니었다면 자체 사이트 개발은 엄두도 못 냈을지 모를 일이다. 사이트가 오픈한 뒤로도 작은 책상 위에 노트북과 데스크탑을 올려놓고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게 최 기자의 주요 일과다. 밥 먹을 때와 회의할 때만 빼놓고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듯 거의 자리에 붙박이다.

사이트 기획부터 개발, 운영까지 총괄했던 그이기에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생기는 소소한 문제들을 점검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도 모두 그의 몫이다. 기사 집배신과 웹 편집기를 번갈아 보는 틈틈이 웹 개발자와 소통하며 시스템 수정 요청 사항 등을 전달한다. 소셜 미디어 계정 관리와 뉴스 소비자들의 이용 행태 분석도 주요 업무다. 세계 유명 언론사들이 이용하는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들을 복수로 활용해 독자들이 주로 어떤 기사를 선호하는지, 기사를 보는데 들이는 시간은 얼마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이용하면 기사 작성과 편집에 유용한 접근 방식이 나온다고 최 기자는 귀띔한다.

종일 모니터만 보며 자리에 ‘붙박이’
이날은 모처럼 지면 기사 마감도 있는 날이었다. 6월9일자 한국일보 창간 60주년 특집호에 실릴 기사인데, 2030년 한국일보 뉴스룸을 가상으로 그려보는 내용이다. 최 기자는 이 기사에서 2030년 종이신문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로선 종이신문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낮 시간대에 이미 접한 뉴스를 다음날 조간신문 지면에 종합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게 최 기자의 진단이다.

“신문 제작에서 제일 먼저 벗어나야 하는 것이 공급자 마인드예요. 사실 우리 일이란 게 뉴스 콘텐츠를 상품으로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서비스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쉽게 이해시키고 적절하게 공급해서 편리하게 활용할 것이냐의 관점에서 아이템을 정하는 단계부터 이용자 편의를 고려해야 해요.”

한국일보닷컴은 스스로를 ‘리얼타임 퀄리티 저널리즘’으로 정의한다. 현재는 과도기다. ‘리얼타임’도 있고, ‘퀄리티 저널리즘’도 있지만, 이를 한번에 보여주는 결과물은 찾기 힘들다. 이용자들이 궁금증을 가질만한 뉴스를 실시간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보여주는 것. 한국일보가 구축하려는 ‘디지털 퍼스트’ 뉴스룸의 지향점이다.



   
 
  ▲ 김영환 디지털뉴스부 총괄팀장과 최진주 뉴스팀장이 ‘지방선거 라이브 캐스트’ 화면을 들여다보며 의논 중이다.  
 
이날 선보인 ‘지방선거 live 캐스트’ 역시 이런 이용자 편의를 고려해 만든 것이다. 김영환 총괄팀장이 “선거 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연신 자랑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지방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들의 정책토론회 공방을 압축한 ‘설전’이나 ‘선거의 공식’ 같은 콘텐츠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장부터 팀장, 팀원들까지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기는데 열심이다. 이날도 김주영 사진기자는 누가 떠밀지도 않았는데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제 발로 촬영을 나갔다. 그렇게 카메라 두 대로 찍은 2500여장의 사진으로 1분짜리 투표소 현장 스케치 영상을 만들었다. 비록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수는 3000이 채 안 되고, 포털 사이트에 한국일보를 검색하면 한국아이닷컴이 상위에 노출될 정도로 인지도도 낮은 게 현실이지만, “트래픽 꼴찌 언론사의 자존심”(김영환 총괄팀장)만은 대단하다.

6시 정각, TV에 쏠린 눈
오후 2시10분. 웹디자이너 컴퓨터 앞에 김영환 총괄팀장과 김영신 운영팀장, 최진주 팀장 셋이 나란히 모니터를 보고 섰다. 한국일보 제호 디자인을 상의하기 위해서다. 현재의 초록색 리본 모양 대신 대문자 ‘H’를 상형화 한 디자인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 기자는 “너무 벙벙해 보여. 바람이 슝슝 지나갈 것 같아”라며 마뜩치 않은 반응이다. 웹디자이너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한 15분쯤 지나도 결론이 안 나자, 결국 김영환 팀장이 “일단 일하자. 보류!”를 선언하고서야 자리로 흩어졌다. 최 기자는 “웹 사이트에 들어갈 로고를 만들고 싶은데, 지면 디자인을 바꿀 예정이라서 같이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투표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편집국은 조금씩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웹디자이너는 관심지역 7곳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여줄 이미지를 작업해둔 상태. 김영환 팀장이 “얼굴이랑 이름 다 한 번씩 더 확인하라”고 마지막 주문을 넣는다.

오후 5시30분쯤,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집배신에 올라왔다. 미리 만들어둔 이미지에 출구조사 결과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투표 마감 5분 전. “출구조사 페북에 뿌려. 진주가 라이브 올리고.” 6시 정각.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TV에 쏠렸다. MBC의 개표방송을 보며 수치가 맞는 것을 확인한 김영환 팀장이 “맞네. 다 쏴”라고 최종 통보한다.

30분 정도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고개를 드니 저녁 식사 도시락이 배달돼 있었다. 점심식사도 눈 깜짝할 새에 해치웠던 최 기자는 저녁도 10분 만에 뚝딱하고 바로 자리에 앉는다. 김영신 운영팀장도 질세라 자리에 앉았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김영환 팀장은 “밥 먹고 바로 일하고 싶을까?”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선거가 마무리되면서 부서원들은 이미 월드컵 기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어려운 여건 탓에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 취재진을 보내지 못한다. 현장을 직접 취재한 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만큼, 온라인상에서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알맞게 가공해서 유통하고 전달하는 게 닷컴의 과제다.

이날 저녁에도 식사를 마친 기자들 몇몇이 모여서 월드컵 출전 선수들의 카드 섹션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최 기자가 한 마디 끼어든다. 최 기자는 먼저 왜 하려고 하는지, 왜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지부터 물었다. 그리고 사람도, 자원도 많지 않은 만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예 세월호처럼 특집 페이지로 가면 모를까, 한번 쓰고 버리는 양식 같은 건 우리 쪽에선 최대한 자제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자원이 많지 않으니까, 일시적인데 공을 들이면 안 돼요.” 최 기자는 “아이디어가 많은 건 좋은데 불필요한데 공 들일 필요 없다”며 “지속 생산이 가능하면서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퍼스트’ 될 때까지 자리 지켜야
이날 선거는 유독 초접전 지역이 많았던 탓에 지면 강판 시간도 한 시간씩 늦춰졌다. 야근 담당자는 퇴근 시간을 장담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결국 이날 야근 담당이었던 김영신 운영팀장은 강원도지사 윤곽이 나온 다음날 오전 6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대로 밤을 꼬박 새우나 싶었는데, 밤 9시가 조금 넘어서 최 기자가 “눈이 너무 아파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이날 아침 7시에 출근했으니 14시간 만이다. 김영신 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세요, 제발” 하며 등을 떠민다. 최 기자는 그제야 못내 미안하다는 얼굴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선다. 엄마의 퇴근만을 손꼽아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콜라맛’ 사탕 두 개를 챙긴 채로.

최 기자에게 모든 게 ‘리얼타임’으로 이뤄지는 디지털뉴스부에 있다가 다시 지면 마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편집국에 돌아가면 적응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과 같은 편집국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퍼스트가 완료되고, 정상적인 상황이 되면, 제가 오랫동안 일해 왔던 경제부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최 기자는 2030년 한국일보 뉴스룸의 미래를 내다본 기사에서 “한국일보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권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디지털 매체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썼다. 그의 글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뻑’성 멘트를 넘어 ‘성지글’이 될 수 있을까. 오랜 부침을 겪은 한국일보가 디지털 영역에서 4대 종합일간지로서 과거 누렸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오늘도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한국일보 편집국 디지털뉴스부에 그 고민과 대답이 있지 않을까.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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