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소통 패러다임, 관행에 안주한 언론

[세월호 참사, 언론의 길을 다시 묻다](1)소통 환경 변화 따라잡지 못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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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운선 교육부 학생건강지원센터 센터장이 지난달 24일 안산 단원고 3학년 학생이 쓴 ‘대한민국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들께’라는 제목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강아영 기자)  
 

세월호 참사 보도를 통해 언론은 부끄러운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잇단 오보를 냈고, 추측 보도를 남발했으며 유언비어를 전파했고, 취재경쟁에만 몰두했다. 신뢰가 자양분인 언론이 불신을 키우고 불신의 늪에 갇혀버린 참담한 현실에서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본보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언론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짚어보고 대안을 마련하는 연속 기획을 5회에 걸쳐 마련했다.


언론들은 그동안 수많은 재난사고를 경험했지만, 재난보도 수준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발표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와 속보 경쟁에 따른 온갖 추측성 보도가 도마에 올랐지만 여전하다. 금방 끓다 식어버리는 ‘냄비 근성’과 ‘재난 장사’라는 꼬리표가 뒤따른 선정적 보도도 쉽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재난사고가 날 때마다 모든 언론사가 나서 온갖 부조리를 뜯어고칠 기세지만, 사고가 수습되면 먼 나라 얘기가 되고 만다. ‘읽히는 기사’를 위해 유가족의 마음의 상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우리 언론은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고, 이에 따른 실망감과 분노는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언론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동안 시청자들이나 독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우리 언론들이 이번에 보여준 보도 수준은 과거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국 발표 의존·섣부른 원인 규명
정부의 일방 발표에 따라 생존자, 구조상황 등이 오락가락했고, 여기에 언론들이 놀아난 것처럼 비춰지면서 언론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키웠다.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해난 사고의 경우 기자들의 현장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발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이 속보경쟁에 매몰된 탓에 확인되지 않은 상황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면서 오보를 생산한 것은 물론이고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세명대 이봉수 교수(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는 “사고 현장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우왕좌왕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속보 경쟁에만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정부의 발표만 그대로 받아 보도한 것도 언론의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이유 중 하나다. 더구나 사고 초기 정부에 구조를 촉구하는 언론의 목소리가 부족했던 점도 언론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들이 혼재되면서 언론들은 이번 사고 초기에 오보를 생산하는 ‘주범’으로 내몰렸다.

이처럼 국가적 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재난사고에 대한 보도준칙이 없는데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기자 대다수를 차지한 경찰출입 기자들이 평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재난보도 준칙이 없다보니 사고현장을 지휘하는 데스크나 지시받은 기자 모두 기존 취재 관행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존 사건·사고 현장과 달리 이번 세월호 참사처럼 국가적 재난사고에선 언론이 지켜야 할 공공의 보도준칙이 필요했는데,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마저 없었기 때문에 무의미한 속보경쟁이 일어났고 막을 수 있었던 오보마저 양산됐다. 자신을 민간잠수부로 소개하면서 허위 인터뷰를 한 홍모씨 건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취재현장 총괄할 컨트롤타워 필요
한 방송사 사회부장은 “과거에 비해 인터넷 언론 등이 많이 생기면서 속보 경쟁과 선정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현장에 간 기자 대다수가 유가족의 상처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를 먼저 내세우고 있는데 희생자나 유가족을 어떻게 취재할 것인가에 대한 보도준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초상권 등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전반적인 재난보도의 프레임은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사고의 최대 피해자인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취재가 재난보도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선진 언론의 재난보도 틀과는 차이가 크다.

실제 일본 공영방송 NHK는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참사에서 사고 정보나 정부 발표는 신속히 전달하는 대신 사망자 유가족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시신 수습 장면도 멀리서 잡는 등 절제된 모습을 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 CNN 등도 주요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 속보경쟁보다는 최종 확인 작업을 우선한다.

SNS시대와 동떨어진 보도 프레임
또 인터넷언론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이번 참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중심을 잡고 이를 걸러주는 언론의 역할 역시 부족했다.

정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 대언론 브리핑에 집중했고, 언론은 이를 토대로 보강취재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했다. 반면 10~30대는 기성 매체보다는 SNS를 통해 이번 사고에 대해 소통을 하다 보니, 소통의 비대칭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세대 간 불신이 커지는 상황이다.

공훈의 소셜뉴스 대표는 “많은 언론이 SNS에 대한 몰이해 탓에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킨다”며 “기성 언론이 SNS에서 급격히 확산되는 이슈를 확인한 뒤 사실여부를 확인해주고 다시 이슈를 발굴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소셜 디바이드(Social divide)’가 나타났고,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그런 사이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커졌고, 인터넷 등에선 각종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결국 땅에 추락한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언론 본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지적이다. 그동안 재난 현장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재난보도 준칙 마련이 시급하고, 주요 언론들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실천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 여러 세대와 소통을 위해 다양한 미디어플랫폼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10~20대의 목소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봉수 교수는 “영국의 경우 BBC 외에 몇 개의 준공공채널이 있다 보니 공영경쟁이 가능하지만 우리 언론은 지나친 상업경쟁 탓에 공영체제가 무너진 상황”이라며 “심지어 일부 언론은 ‘재난장사’를 하는데, 공영경쟁이 가능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남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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