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기도 "부디 살아있기를…"

세월호 침몰 나흘째 진도실내체육관ㆍ팽목항 일대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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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가 나흘로 접어든 19일. 사망자가 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만 이어졌을뿐 애타게 기다리던 생환 소식은 없었다.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도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이날 진도실내체육관에서는 오전 12시쯤 잠수요원이 촬영한 침몰 해역 영상이 공개됐다. 가족들은 이 영상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기대는 결국 탄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수많은 부유물이 시야를 가린 탓에 보이는 것은 선체 외벽과 가이드라인뿐이었다.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은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냐”,  “청와대에 가겠다”고 소리쳤다.




   
 
  ▲ 19일 오전 공개된 침몰 해역 영상에 집중하는 취재진과 실종자 가족. (김희영 기자)  
 


취재진들은 촬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고, 해경 관계자와 실종자 가족 간의 설전을 기록하려는 기자들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인터넷매체 한 사진기자는 “고대 안산병원에서 취재할 때는 생존자와 유족의 희비가 뚜렷했다. 그런데 여기(진도실내체육관)는 정말 민감한 것 같다”며 “생사도 모른 채 절망과 희망을 오가다보니 훨씬 더 무거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팽목항에서도 수중 선체 모습이 드러난 영상에 실종자 가족들은 텔레비전 앞에 몰려들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행여 조금 달라진 소식이 있을까 조그만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며 가족들은 무너지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삭였다. 


오전 10시와 오후 6시쯤, 하루 두 차례 정부당국 관계자들이 전일 수색 결과와 당일 구조계획 브리핑을 진행했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는 내용에 실종자 가족들은 울분을 토했다. “3일간 생존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 직접 구출한 것이 하나도 없고, 떠오르는 시신만 건져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의 오후 브리핑 보고에도 가족들은 “또 같은 말이냐”, “이게 끝이냐”며 허탈함과 분노를 비쳤다.




   
 
  ▲ 오전 10시 15분경 진도 팽목항에서 정부 관계자가 브리핑에 나서자 취재에 나선 언론들. 팽목항 대합실 옥상에도 취재진들이 즐비해 있다. (강진아 기자)  
 


이날 팽목항은 전날과 달리 언론에 대한 취재가 다소 허용됐다.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답답한 가족들은 기자들에 “못 찍게 하지는 않을 테니 제발 있는 그대로 내보내달라”며 “우리도 텔레비전을 본다. 제발 공정한 방송을 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 실종자 가족도 “가족들이 애타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안 나온다”며 “실시간으로 가족들이 알 수 있는 상황을 전해 달라”고 토로했다.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한 방송사 기자는 “오보도 문제였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언론에 부정적인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구조작업을 채근해야 하는데 정부 말을 그대로 발표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미리 정보를 차단하고 관계자들이 연락을 통 받질 않아 사실 확인이 잘 안 된다. 불명확한 사실을 내보낸 데 언론도 신중하지 못한 부분은 있다. 보도 윤리가 아쉽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상황 변화를 지켜보며 각 현장에서 대부분 2~3시간 쪽잠을 자며 대기하는 상황이다. 방송기자들은 하루에 수십 번씩 리포트를 하고 있다. 20분~30분에 한번 또는 한 시간에 한번 마이크를 잡고 있다. 한 사람이 10여시간씩 중계를 하는 상황에서 한 방송사 여기자는 몸져누운 것으로 알려졌다.




   
 
  ▲ KBS가 19일 헬리캠을 띄워 팽목항에 실종자 가족들과 취재진이 몰린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강진아 기자)  
 


지상파 방송사들은 헬기를 띄워 항 부두 주변에 가족들과 취재진이 몰려있는 모습을 촬영했다. 궂은 날씨로 헬기를 띄우기 어렵거나 근접 촬영이 어려울 경우 헬리캠을 띄우기도 했다. 또 방송사들은 따로 배를 빌려 세월호가 사고를 당한 지점에 하루 1~2번씩 나가며 중계를 하고 있다. 카메라기자들은 실시간 송수신 장치가 들어있는 백팩을 메고 중계차에 실시간으로 영상을 전송하고 있다.


이번 사고가 사상 최대 해양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 나오면서 외신의 취재열기도 뜨겁다. 현재 진도 현장에는 AP, APF, 로이터, CNN 등 각국 언론사 취재진 50여명이 몰려든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 가족들이 국내 언론에 대해 높은 불신을 갖고 있는 탓에 외신기자의 취재에는 큰 거부감이 없는 상황이다.




   
 
  ▲ BBC 기자가 팽목항에서 리포트를 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외신들의 관심이 뜨겁다. (강진아 기자)  
 


미국 CBS 취재진을 이끈 한 프로듀서는 “한국 언론의 민간 잠수부 인터뷰 건으로 미국 뉴욕에도 큰 혼란이 있었다”며 “연이은 오보와 신중하지 못한 보도태도는 정말 큰 수치”라고 지적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의 한 기자는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기자들도 취재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고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은 같았다. 팽목항 초입의 민간 잠수부 구조대 천막 벽면을 가득채운 생존을 기원하는 메시지 중에는 한 기자의 안타까운 필적도 남아있었다. “취재 5일째입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부디 꼭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팽목항 민간 잠수부 구조대 천막 벽면에는 생존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그곳에 한 기자도 안타까운 심정을 남겼다. (강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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