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근처도 못가본 생초보, 야구를 이야기하다

[기자25시] (11)스포츠서울 체육2부 김정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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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일 넥센-두산전을 앞두고 서울 목동 야구장 두산팀 덕아웃에서 김정란 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뒤쪽으로는 경기 전 몸풀기에 나선 두산팀이 보인다.  
 
오후 2~3시 야구장 출근, 감독 만나 경기 흐름 읽고 훈련 중인 선수들 스케치
어린 자녀 키우며 힘들지만 자나깨나 야구 고민
경기중 틈틈이 기사 작성, 8~9회 게임 역전되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2014 프로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한 해의 봄을 알리는 개막에 야구팬들은 한껏 들뜬 기분이다. 야구기자들도 구장 주변에 핀 봄꽃마냥 기지개를 피며 야구 시즌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 스포츠서울 김정란 기자도 그중 한명. 현재 두산과 KT를 담당하는 김 기자는 여성 팬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700만 관중시대에 야구기자 ‘여성시대’를 이끄는 선발 주자다. 지난 2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화사한 미소로 반겨주는 김 기자를 만났다.

“홈런~!”
담장을 넘어가는 야구공에 관중석에서 “우와~”하는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 뒤쪽이다. 넥센 홈개막전 이튿날인 2일, 2회 초 두산의 외국인 타자 칸투가 홈런을 날렸다. 김정란 기자의 손가락도 동시에 빨라졌다. ‘칸투 풀카운트(2S·3B) 끝에 좌측 담장 넘는 솔로포. 시즌 2호. 어제(1일) 경기에서 같은 방향 타구 홈런 될 뻔하다 담장 바로 앞에서 잡혔는데 똑같은 코스.’ 넥센 측 반응도 덧붙인다. ‘오재영(투수) 홈런 맞고 볼 2개 내주자 허도환(포수) 마운드 방문.’ 두산은 뒤이은 안타로 홍성흔, 이원석 선수까지 무사히 홈에 도루해 먼저 3점을 내며 본격적인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시계를 되돌려 4시간 전인 오후 2시30분. 경기는 오후 6시30분이지만 야구기자는 통상 선수들이 구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2~3시쯤 하루가 시작된다. 김정란 기자도 오전에는 재택근무로 온라인 기사를 처리하고 목동 구장으로 출근했다. 홈팀인 넥센 선수들이 먼저 2시쯤에, 4시쯤 상대팀 두산 선수들이 차례로 배팅과 스트레칭 등 몸풀기에 나섰다. 야구기자들도 이 시간, 경기장 내 선수 대기석인 덕아웃(dugout)에서 지켜보며 취재한다. 오가는 선수들과 가볍게 인사하고 감독과 만나 당일 경기 전략 등 사전 구상을 엿볼 수 있다.



   
 
  ▲ 두산 주장인 홍성흔 선수와 김정란 기자.  
 
선수들의 땀이 밴 ‘덕아웃’에서 교감하다

“안녕하세요.”
넥센 덕아웃에서 지나가는 선수들에게 연신 인사를 건네는 김 기자. “축하해요. 어제.” 전날 경기 이야기로 가볍게 말을 꺼낸다. 1일 넥센은 두산과의 첫 대결에서 9대 3으로 역전 승리했다. 넥센 염경업 감독과 기자들 간 면담에서 염 감독은 “어제 경기에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며 “승운까지 따라줘서 승률을 챙겼다. 행운이 따르는 첫 발을 디딘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부터 분위기도 타고 있죠.”(김 기자)
“작년에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도 주고 트레이드로 좋은 선수들을 영입했죠. 한국은 미국과 달리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수들을 키워야 해요. 한국은 주입식이라 결과만 있고 과정이 없죠. 우리 애들도 자기만의 야구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발길을 옮기던 김 기자가 웨이트실 앞에서 넥센 윤석민 선수를 발견했다. 축하 인사를 전하고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만루 홈런을 쳐서 후배인 두산 상대 투수가 자기한테 삐쳤다고 하네요.(웃음)” 본래 두산에 몸담았던 윤 선수는 지난해 11월 넥센 장민석 선수와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 1일 두산과의 첫 경기에서 역전 만루홈런으로 친정팀을 울렸다. “이적한 선수들 중에는 종종 친정에 ‘복수’를 하기도 해요. 트레이드의 경우 선수 본인도 갈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구단끼리 카드를 맞추기 때문에 공식 발표까지 얘기를 안 해요. 당일 알거나 기사를 보고 안 선수들도 있어요.”

4시57분. 두산 덕아웃으로 자리를 옮겼다. “감독님 아직 안 나오셨죠?” 덕아웃에서 기자들은 늘 ‘대기’ 상태다. “안타에요? 실책이에요?” 두산 양의지 선수가 지나가면서 김 기자를 보고 묻는다. 전날 3회 초 양 선수가 좌익수 쪽에 날린 공을 넥센 로티노 선수가 잡다가 글러브에서 공을 흘리는 실수를 했다. 그 사이 두산 주자 3명은 홈으로 들어왔다. 안타라면 본인 기록이지만 실책이라면 달라진다. “안타에요, 안타.” 덕아웃에 들어가며 말하는 양의지 선수에 김 기자가 웃는다.

젊은 선수들이라 재기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홍성흔 선수에게 김 기자가 “취재를 당하는 중”이라고 하자 장난반진담반 갑자기 칭찬을 늘어놓는다. “선수들의 마음을 읽고 기사를 잘 써주고…선수들과 친밀한 관계로 야구 발전에…” 한바탕 웃음이 터지자 “좀 더?”라며 “선수들이 다가가기 쉽게 생겼고…최고”라며 허물없이 장난친다. 김 기자도 “두산 기사에 최선을 다할게요”라며 넉살좋게 답했다. “매일 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이 들죠. 오래 본 선수들이 경기에서 잘하면 저도 기분 좋아요. 경기를 잘해야 찾는 건 염치가 없죠. 결과와 상관없이 평소 한마디라도 더 살갑게 건네고 자기 야구를 봐주는 사람에게 선수들도 마음이 가죠.”



   
 
  ▲ 경기 전 두산팀 덕아웃에서 두산 송일수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5시24분. 두산 송일수 감독이 나타나자 기자들이 빙 둘러쌌다. 송 감독은 “승리에 중압감이 있지만 선발투수가 잘 해줄 것이다. 4회까지 투수가 승부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이날 ‘좋은 예감’을 전했다. 모교인 교토 헤이안 고등학교가 고시엔 봄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에 이어 꿈 이야기를 꺼냈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는데 2대 0으로 이겼다. 투수가 오늘 선발인 볼스테드였다. 꿈대로 됐으면 좋겠다”며 미소 지었다.

어느새 6시가 가까워져 덕아웃을 벗어났다. 경기 30분 전후에는 기자들도 덕아웃 출입이 금지된다. 혹여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LG를 담당했던 초년병 시절, 이를 미처 알지 못한 김 기자는 ‘실수’를 저질렀다. 봉중근 선수 인터뷰를 따오라는 선배 지시에 경기 직후 인터뷰하려는 ‘열정’으로 9회말 즈음 덕아웃 앞에서 미리 대기했던 것. 김 기자의 등장에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오히려 구단 관계자들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당시 시즌 중이라 아무도 저에게 ‘이때 덕아웃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어요. 누군가는 알려줬겠지 하는 생각이었겠죠.(웃음)”

입사 한 달만에 사표 생각도
사실 김 기자가 야구를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다. 2007년 4월 입사 직후 야구부를 맡기 전엔 한 번도 구장에 안 가봤단다. 입사 시험 때 구단을 맞추는 문제에도 ‘해태’ 타이거즈라고 썼다. “기아로 바뀐 걸 깜박했죠. 저 스스로도 붙은 게 신기하다니까요.”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힘이 부쳤다. 아는 것이 없어 아침 발제는 늘 고역이었다. 당직을 서며 기록한 야구기록표도 매번 틀려 혼나기 일쑤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떨어졌다. 부서 배치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사표’를 낼 정도였다.

하지만 야구장에 나가면서 달라졌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현장’엔 이야기가 있었다. 줄곧 야구부를 담당한 만큼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도 5개월간 경제사회부에 있었지만 제 ‘고향’을 찾듯 야구부로 돌아왔다. 2013년 초 야구부에 복귀해 현재 체육2부 7명 중 홍일점이다.

야구부는 야근과 출장이 잦은 탓에 여기자들이 많진 않았지만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입사 당시엔 야구를 담당하는 여기자가 전 매체에 3~4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5~20여명 되는 것 같아요. 매체도 많이 늘어났고 여기자들도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달라졌어요.” 하지만 6살, 4살 아이를 둔 김 기자처럼 결혼 후엔 더더욱 쉽지 않다. 김 기자도 결혼 전에는 대전을 연고지로 둔 한화를 담당했지만 지금은 회사 배려로 두산(서울)을 맡고 있다. “지역구단을 맡는 기자들은 한 달에 2~3번씩 출장을 가는데 3박4일씩 못해도 열흘 이상은 지방에 있어야죠. 담당팀을 계속 따라 다니면서 취재를 해야 하니까요.”



   
 
  ▲ 목동 야구장 내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경기를 보며 기사를 쓰고 있다.  
 
여기자들이 기술적으로 약할 순 있지만 ‘감성’적인 접근에는 강점이 있다고 꼽았다. 점차 여성팬들도 많아지면서 말랑말랑한 기사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야구팬들도 기술적인 야구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하지 않아요. 선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야구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다른 이야기도 듣고 싶어 하죠. 요즘엔 여기자들도 야구를 좋아해서 많이 알기도 하고요.”

취재풍토도 조금 달라졌다. 기자실 창밖 너머를 가리키며 “예전엔 그라운드에 들어가서 취재도 했었다”고 말하는 김 기자. 타격 연습을 하는 선수들 뒤로 그물로 된 배팅케이지에서 타격코치들과 경기 이야기도 나눴단다. “매체가 많아지면서 기자 한명이 나가면 줄줄이 따라 나가기 때문에 연습에 방해되지 않게 제한이 생겼죠.” 라커룸 역시 선수들의 사적 공간을 존중해 금지령이 내려졌다.

선수들의 ‘이야기’ 알고보는 ‘재미’
6시, 관중들이 속속 관중석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김 기자는 경기 시작 전 덕아웃에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 작성에 돌입했다. ‘두산 송감독의 꿈, 현실이 될까?’, ‘넥센 염경엽의 선수만들기’ 등이다. 6시32분 넥센 오재영의 투구를 시작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 상황을 지켜보며 김 기자는 그때그때 상황을 기록하는 동시에 기사를 작성해갔다. 이날 경기의 관전 포인트를 물었다. “두산은 선발과 마무리 사이에 나오는 불펜이 약하기 때문에 선발인 볼스테드가 관건이죠. 넥센이 전날보다 선발이 약하니까 (두산이) 초반에 점수를 안 내면 힘들죠.”

2회초 두산의 3점에 이어 넥센도 2회와 4회 말 각 1점씩 내며 3대 2로 바짝 추격에 나섰다. 5회 초. 두산의 민병헌이 첫 타자로 나서 시원하게 홈런을 뽑아 한 점 더 달아났다. 오재원이 안타를 치며 1루로 진출했고 김현수가 3경기 14타수만에 시즌 첫 안타를 터트렸지만 더 이상 점수를 내지는 못했다. 오후에 덕아웃에서 “나만 잘치면 된다”며 표정이 밝지 않았던 김현수의 첫 안타에 “모처럼 속이 시원할 것 같다”는 김 기자. “내일은 안타 친 걸 축하한다고 말해야겠어요.”

6회 초 4대 2. 2점 차로는 아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것이 야구의 세계다. 두산 양의지가 홈런으로 1점을 내며 어제의 찝찝함을 날렸다. 어느새 2루로 진출한 정수빈 선수를 가리키며 김 기자는 “정수빈 선수는 번트를 치고도 살아요. 번트가 되면 보통 다들 아웃되는데 1루로 보내고도 워낙 발이 빠른 선수라서 꼭 살아남죠.”라고 말했다. 민병헌의 안타에 3루 김재호, 2루 정수빈이 홈에 들어오며 7대 2로 점수가 벌어졌다.

7회 말. 이상열·문우람 선수의 백투백 홈런으로 넥센 관중석이 잔치 분위기로 변했다. 7대 4 넥센의 추격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두산이 9회초 2점을 내며 이날 경기의 최종 스코어는 9대 5.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이변은 없었다.

10시11분. 관중석은 썰물이 빠져나가듯 순식간에 자리가 텅 비었지만 기자들의 시간은 이제부터다. 1분1초 마감을 다투며 타자라인업, 타수, 득점, 안타, 타점, 홈런 등 기록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김 기자. “전날처럼 8, 9회에 점수가 뒤집어지면 전체를 바꿔야 해서 완전히 쫓기는 신세가 된다”며 “두산 불펜이 막았다고 미리 썼는데 끝에 실점해 수정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기사는 ‘두산-넥센의 불펜 경기를 들었다 놨다?’, ‘두산 볼스테드 국내 데뷔 첫 승, 김현수 시즌 첫 안타’등 3건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매력의 야구
야구는 예상을 뒤집는 때가 많다. 설마설마하지만 야구는 그 ‘설마’가 일어난다. “야구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발생하는 재미가 있어요. 무궁무진하죠. 작전도, 상황도 알 듯 하면서 늘 알 수 없는 상황이 나와요. 1점짜리 홈런 세 개가 4점짜리 만루 홈런 하나에 안 되는 것도 재미있지 않아요? 이런 ‘의외성’이 흥미롭죠.”

또 하나의 매력은 결국 ‘사람 이야기’라는 점이다. 올해 다섯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김 기자는 수백 건의 야구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이야기를 알고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늘만 경기를 봤다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죠. 친정에 복수한 윤석민 선수, 어제의 안타를 오늘의 홈런으로 날린 양의지 선수, 안타에 속 끓이던 김현수 선수 등 히스토리를 알고 보면 재미있어요. 응원가도 그 선수에 왜 어울리는 지 알 수 있죠. 역사를 통해 이야깃거리가 쌓이는 즐거움이죠.”

이제 막 문을 연 2014년 프로야구. 1팀당 128경기가 펼쳐질 올해 역시 ‘재미’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외국인 타자도 많아졌고 오늘 4개 구장만 봐도 올해 점수가 많이 날 것 같아요.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기대가 됩니다.” 10시33분. 경기장의 불은 꺼졌지만 기자실만이 야구장을 환히 비췄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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