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뒤에 우리가 있어" 선배들 한마디가 취재 원동력

[기자25시] (10)KNN 경남본부 취재팀 주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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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 위치한 KNN 경남본부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주우진 기자.  
 
새벽까지 술 마셔도 6시면 출근하는 ‘열혈 4년차’
경찰들에 ‘형님’하며, 2년만에 출입처 접수

위법 행위 바로 잡을 때 기자로서 보람 느껴
인력·방송시설 열악하지만 지역 위해 일하고 있어 뿌듯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 경남지방경찰청. 남들은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KNN 경남본부 취재팀 주우진 기자는 기지개를 펼 새도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출입처 관계자들과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지만 그렇다고 마음껏 쉬어갈 수 없는 ‘하루살이’ 기자의 운명.

6시30분이 되자 전화벨이 울린다. 후배인 이태훈 기자의 전화다. 일선 경찰서를 출입하는 이 기자가 주요 사건·사고를 보고하면 주 기자도 도경에서 사건 자료 등을 챙긴다. 7시30분에 방송될 아침뉴스를 위해 7시까지 기사를 작성하고 타사 아침뉴스를 모니터링 한다. 일찍 출근한 과장, 계장 등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얻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분단위로 돌아가는 아침시간, 동료들과 식사를 마친 주 기자가 그제야 KNN 보도국에 들어섰다.

그러나 오늘(20일)은 숨 돌릴 틈도 없다. 전날 계획한 기사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원래는 마산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 낀 농무를 취재하는 일정이었다. 날씨라는 변수 때문에 조마조마했는데, 혹시나 했던 게 역시나다. “오늘은 농무가 안 꼈대요.” 덤덤하게 말하던 주 기자가 아침회의에 들어선다. 아이템 변경 때문인지 데스크와의 상의가 길어진다. 아침에 챙긴 사건·사고와 통신사 기사 등을 검토하며 급히 계획을 수정한다.

“아이템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신입 때는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나 이제는 취재 과정이 익숙해졌다. 사건이 터지면 관계자와 전문가 10여명 정도는 자동으로 떠오르는 수준이다.

이날 취재할 아이템 주제는 ‘불법선거운동 고개 드나’. 6·4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마침 김해시선거관리위원회가 기초의원 예비 후보자를 위해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통장 A씨와 예비 후보자의 지인 B씨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였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주 기자는 사전취재에 들어간다. 고발된 사람 등 관계자를 파악하고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한다. 주변 취재를 통해 해당 예비 후보자가 누구인지 정보도 입수한다. “취재원은 내가 아는 만큼 알려주거든요. 이따 선관위에 가서는 ‘이 사람 맞죠?’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야죠.” 선관위에는 선거법 위반 적발 건수에 대한 통계자료를 미리 요청해뒀다.

돈독한 선후배 관계
오전 10시쯤 주 기자는 마산YMCA로 향했다. 차윤재 마산YMCA 사무총장을 인터뷰하기 위함인데, 선거법 위반 건이 투표 전 신속하게 처리돼야 재선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줄 계획이다.



   
 
  ▲ 마산YMCA 사무총장을 취재 중인 주우진 기자.  
 
이동하는 차 안. 카메라기자인 박영준 차장이 주 기자에게 칭찬 세례를 쏟아낸다. “주 기자가 경남본부에서 1인5역을 하고 있어요. 타 매체 10년차 기자 수준이라고 보면 될 걸요.” 그도 그럴 것이 경남본부 취재기자 6명은 경남 18개 시·군 전체를 커버하고 있다. 주 기자의 주요 출입처는 도경이지만 이 외에도 창원지검, 창원지법,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개발공사, 낙동강유역환경청 등 셀 수 없다. 출입처를 받아 적던 기자에게 “다 쓰시려구요? 그냥 웬만한 건 다한다고 보시면 돼요”라며 웃어 보인다. 술 약속이 왜 많은가 했더니, 출입처마다 한 번씩만 약속을 잡아도 일정이 꽉 차기 때문이란다.

기사 양도 만만치 않다. 주 기자는 일주일에 4~5꼭지의 기사를 제작하는데 사실상 매일 뉴스를 만드는 셈이다. 주 기자는 “주말 근무를 할 땐 월요일부터 그 다음 주 목요일까지 11꼭지를 연달아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촬영기자가 취재기자보다 적은 탓에 촬영 일정을 오전·오후로 나눠서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잦다. 이날 주 기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취재를 마무리해야 했다.

빡빡한 일상에 지칠 법도 한데, 차 안에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이 번진다. 15여년 선배인 박 차장을 어려워하는 기색도 전혀 없다. 주 기자는 “KNN의 자랑거리가 바로 돈독한 선후배 관계”라며 “많지 않은 인력에도 부산·경남지역에서 KNN이 활약하는 이유는 서로 의지하며 도움을 주는 관계에서 나오는 파워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벽에 일정이 끝나 아침 6시까지 출근하다보면 피곤하긴 하지만, 선배와 하루 종일 차타고 다니면서 얘기하다보면 힘든 건 못 느낀다”고도 했다. 도경 생활 초반, 힘에 부쳐 축 늘어진 어깨를 다독이며 ‘네 뒤에 우리가 있는데 뭐가 겁나느냐’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던 든든한 선배들이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마산YMCA. 사무실에 들어선 주 기자가 취재 아이템과는 관련 없는 질문을 던진다. “단일화는 어떻게 돼 가는 건가요?” 현재 경남에는 교육감 선거에 나서는 박종훈, 김선유, 김명룡 예비후보의 단일화 여부가 큰 이슈다. 틈틈이 정보보고에 올릴 내용을 취재하는 중이었던 것. 사전 취재 덕분에 인터뷰 촬영은 30분도 안 돼 마무리됐다.

점심식사 후 오후 1시.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 도착했다.
“예비 후보자 S씨에 대해서도 직접 고발조치가 들어간 겁니까?”
“(통계자료를 보며) 작년에 비해 선거법 위반 적발 건수가 적은 겁니까, 많은 겁니까?”
주 기자가 질문을 쏟아내는데 선관위 관계자는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저희도 아직 파악이 안 돼서…. 자료를 뽑아봐야 하는데요.”

관계자가 구체적 통계자료를 다시 건네준다. 이어 인터뷰가 이어진다. 공보담당관은 카메라가 어색한 듯 실수를 연발한다. 주 기자는 멘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계속 질문을 건넨다. 이 모습이 꽤나 능숙하게 보였다.

어리지만 당찬 기자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주 기자는 4년차 기자이지만 올해 29살이다. 30대 수습기자가 흔한 요즘, 꽤나 어린 나이에 기자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어려움은 없었을까, 질문을 던지자 그가 이내 깊은 한숨을 쉰다. “경찰청은 보통 캡들이 가는 자리잖아요. 제가 경남본부에 와서 도경에 간 게 1년차 때니까, 거기 계신 과장님들을 만나기가 편하지 않더라구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렵고 힘들었어요.”

어려서 무시당하고 있다는 괜한 자격지심에 술자리에서는 절대 먼저 일어서는 법이 없었다.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정신력으로 버텼다. ‘나이는 어리지만 너는 KNN을 대표하는 기자’라는 선배들의 조언도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 2년이 흐른 지금, 경찰 관계자들을 스스럼없이 ‘형님’이라 부르는 여유가 생겼다.



   
 
  ▲ 기사 작성을 마친 주우진 기자가 오디오를 녹음하고 있다.  
 
외부취재를 마치고 보도국으로 돌아온 건 오후 2시쯤. 기사작성을 하면서 추가취재는 계속됐다. 주 기자의 휴대폰은 쉴 틈이 없다.

“S씨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 중인 겁니까? 모임의 성격은 뭐였습니까? S씨가 자리에 참석한 건 맞네요.”
선관위의 비협조적 태도에 통화를 마친 주 기자가 탄식을 내뱉는다. 취재는 김해시선관위가 예비 후보자 S씨에 대해 수사 의뢰를 검토 중인 것으로 마무리됐다. 주 기자는 “선관위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선관위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판에서는 기사 하나 하나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관위나 후보자 입장에서는 언론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취재원에게 답변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주 기자는 거침이 없었다. 기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역시 “위법한 행위를 바로 잡았을 때”라고 했다. 그래서 지난 2월 ‘이상한 직거래장터’ 연속보도는 주 기자에게 의미 있는 기사다. 경남의 일부 농협 직거래장터에서 일반 상인들이 직거래를 빙자해 물건을 팔고 있는 현장을 고발한 내용이었다. 농협은 두 번째 보도만에 ‘부당함이 인정된다’며 장터 운영을 전면 폐지했다. “제 기사로 세상이 점차 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동시에 기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다. 직거래장터가 전면 폐지되면서 정상적인 상인들까지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이다. 한밤중에도, 주말에도 상인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술 취해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자로서 현상에 드러난 위법한 부분을 지적했을 뿐, 폐지를 결정한 농협과 상의해야 한다고 달랬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문제제기를 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다 보니, 그럴 때마다 마음을 굳게 먹죠.”

지역 ‘토박이’의 보람
1시간 반여 기사를 작성한 후 보도국장의 데스크를 받자 시계는 3시50분을 가리켰다. 오후 5시 이후 보도국장이 편성회의를 마치면 이날 저녁 뉴스에 주 기자의 기사가 배치될 것이다.

주 기자는 녹음 부스로 들어섰다. 경남본부는 부족한 인력만큼 시설도 열악하다. 기자들이 오디오를 녹음하는 곳은 아나운서 대기실 구석에 마련된 작은 공간. 주 기자는 익숙한 듯 목을 축여가며 3번 만에 녹음을 마쳤다. “지역 방송기자들은 특히 표준어가 문제죠. 고치려는데 잘 안 돼요.” 그의 리포팅에서 사투리 억양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늘 노력하려 한다”며 겸손해했다.

편집을 마치자 숨 가쁘게 돌아가던 하루 일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 보도자료를 훑어보며 단신 1~2꼭지를 만들고, 오후 동안 취재를 다니며 틈틈이 얻은 정보를 보고하는 일만 남았다.

잠시 쉴 틈이 생긴 그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주 기자의 고향은 창원으로 부산대학교를 졸업한 지역 ‘토박이’다. 기자의 꿈을 안고 처음으로 지원한 KNN에 덜컥 합격했다. 중앙언론사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그러나 주 기자는 부산·경남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고 했다. “지역 출신이 지역을 위해, 부모 형제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건 보람된 일이에요. 서울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일지 몰라도, 경남에도 중요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우선순위의 차이죠.”

그의 꿈은 소설가 김훈처럼 저명한 기자출신 작가가 되는 것. 기자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나, 기자를 모티브로 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주우진’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진짜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매일 취재를 하다 취재를 당해보니 색달랐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은 채 보도국으로 돌아간 주 기자. 그의 어깨에 ‘열혈 4년차 기자’의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김희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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