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리아' 세종시 10개월 "교통 불편해도 기자들 사이는 돈독"

[기자25시] (8)한국경제 김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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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일 오전 첫마을아파트 7단지에서 만난 김우섭 기자. 세종청사를 가기 위해 통근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공무원 통근버스 얻어타고 청사 출근
택시타기도 하늘의 별따기

세종시 출입기자들끼리 농구동호회 만들어
매주 한차례 마감후 경기

44평 아파트에 기자 4명 동거
냉장고엔 햇반·김치·맥주


‘세베리아(세종+시베리아)’, 2012년 말 본격 출범한 세종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당시 세종시에 내려온 ‘세종시 1.0세대’인 공무원들이 황량한 벌판에 몰아치는 추위를 겪으며 시베리아에 세종시를 빗댄 말이다. 지난해 12월에는 2단계 정부청사 이전 계획에 따라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6개 중앙행정기관과 10개 소속기관이 이전을 마쳤다. 1년여가 지난 세종시는 최근 청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음식점’이 생기는 등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거친 벌판에 공사중인 회색 철물구조물, 불편한 교통 등 기자들의 세베리아 생존기는 이어지고 있다.

세종시가 들어서며 처음 생긴 아파트라서 붙여진 이름 ‘첫마을’ 아파트. 원룸과 오피스텔 등 기자들의 거주지는 다양하지만 아파트에 사는 기자들은 1~7단지 중 마지막 7단지에 가장 많이 산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들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경에서 세종시에 파견된 기자는 총 8명. 회사에서는 기자들에게 전세 아파트로 3채를 마련해줬다. 남기자가 2명과 4명으로 나뉘고, 여기자 2명이 1채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경제 김우섭 기자도 이곳에서 선배들 3명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지난 19일, 7시50분. 첫마을아파트 7단지 706동 앞에서 김우섭 기자를 만났다. 2011년 입사해 경찰팀에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세종시 생활을 시작한 김 기자는 현재 기획재정부와 해양수산부를 맡고 있다. 정부 청사까지 주 이동수단은 공무원들의 통근버스. 아파트 단지 앞으로 걸어가니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이미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맞은편을 힐끔 본 김 기자는 “7단지 앞에는 통근버스 타는 곳이 2곳”이라며 “조금 기다려도 이쪽에서 타자”며 단지 앞쪽에 섰다.

잠시 후, 김 기자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기재부를 함께 출입하는 한경 선배 주용석 기자다. 곧이어 관광버스 크기의 통근버스에 오르자, 사람들로 빼곡했다. 뒤쪽에 몇 개 남아있는 자리에 앉았지만 뒤늦은 탑승객들은 입석이다. 버스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김 기자는 가볍게 인사했다. 버스는 몇몇 부처를 거쳐 10~15분여를 달린 후 4동 기재부 앞에 섰다.

세종 청사, 부처 업무보고에 분주
세종시 청사는 두 곳으로 나눠져 있다. 1단계 이전한 곳들이 북측, 지난 연말 2단계로 이사한 곳이 남측이다. 김우섭 기자가 출입하는 기재부와 해수부는 북측에 있다. 기재부 기자실에 자리를 잡고 보도자료와 메일 등을 챙겼다. 이날은 해수부 업무보고가 있어 먼저 보도자료를 꼼꼼히 살폈다. 9시30분,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 앞서 9시까지 아침보고를 끝내야 한다.

9시25분. “브리핑 시작합니다”란 소리에 기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정각이 되자 문은 굳게 닫혔다. 30여분 뒤 돌아온 김 기자는 브리핑에 나온 사안을 선배와 쪽지로 공유하더니 ‘종교인 과세’와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트위터 논란’ 등을 추가 취재했다.

“종교인 소득과세를 강화하면서, 사실상 과세 명칭 등 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세제실장과 통화를 하던 중 전화가 뚝 끊어졌다. “기재부 기자실에서는 이상하게 전화가 잘 안 터져요” 답답한 듯 김 기자는 세제실장에 수차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간신히 연결됐지만 “종교단체들과는 이야기를 해봤냐”는 질문을 하자마자 다시 끊겼다. 휴대전화와 한참 씨름하던 그가 기자실 밖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네, 실장님. 전화가 잘 안 돼서요.”
“그럼 이번 국회에서는 결론내기가 힘들겠네요?”
“2월 국회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내년 시행이니까 서두르기보다 충분히 얘기 들어보고… 전국적 합의가 중요한 만큼 상반기 중에…”(세제실장)



   
 
  ▲ 오전 9시30분, 현오석 부총리의 브리핑을 앞두고 기재부 브리핑룸에서 김우섭 기자가 자료를 보고 있다.  
 
자리로 돌아와 목회자납세문제대책위원회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역시나 잘 연결되지 않았다. 기자실 입구 쪽에 마련된 1인 전화송고실로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통화 후 관계자 연락처를 물었는데 아차, 급히 나오느라 수첩을 깜박했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자연스레 왼쪽 손바닥에 슥슥 번호를 적어 내려갔다.

다시 쪽지가 날아들었다. 현 부총리가 야권 인사를 비난한 트위터 글로 논란을 빚은 안홍철 KIC 사장에 대한 경위를 파악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취재 지시다. KIC 관계자와 짧은 통화 후 한 줄 정리, ‘사장 관련 어떤 반응도 내놓고 있지 않다.’

음식점 왕복 20km…“차 없으면 못다녀요”
점심에는 선배인 주용석 기자와 세제실 최영록 재산소비세정책관을 만났다. 1층에서 인사를 나누고 정문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이내 멈췄다. “그런데 차가…”(김 기자) “차 있다는 거 아니었어요? 있다는 줄 알고…(음식점)차가 갔을 텐데.”(최 정책관) “제가 잘못 전달한 것 같아요.”(김 기자) 우뚝 선 채 당황스러워하는 이들, “이렇게 차가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어요.(웃음)”

잠시 고민하던 차에 주 기자가 “그럼 취소하고 가까운 곳을 가자”고 했다. 최 정책관이 “전화나 한번 해보자”며 음식점과 통화한 후 “택시를 타고 오면 택시비를 준다는데, 택시가 있는지”를 물었다. 세종시에서는 택시도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김 기자가 콜택시에 “와 줄 수 있는지” 묻자 다행히도 있단다. “음식점이 없어서 대전·유성·조치원 등 외곽으로 나가서 밥을 먹게 되는데 왔다갔다 20km정도는 걸려요. 밥 먹으러 이동하는 데만 20~30분씩이죠.”

그나마 최근에는 구내식당 외에 청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음식점이 생겼다. 지난해 말 무렵 여러 음식점들로 채워진 ‘세종1번지’ 건물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주 이용자는 가까운 1~4동 정도다. 특히 세종1번지에 입주한 유일무이 브랜드 커피점인 스타벅스는 단연 최고 인기장소다. “이전에 점심을 먹고 청사 쪽으로 가는데 직원들이 단체로 반대쪽으로 가더라고요. 알고 보니 밥은 구내식당에서 먹고 커피 마시러 스타벅스에 가는 거였어요.(웃음)”(최 정책관) 실제 점심시간 후 기자실 책상 위에서도 스타벅스 커피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약 15분을 조치원 방향으로 내달려 청원군 강내면 부근 음식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창밖엔 아파트와 초등학교 등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다. 과연 아파트 입주가 다 가능하냐고 묻자 최근에는 전셋값이 떨어졌다고 했다. 2단계 이전으로 공무원들이 세종시로 대량 이사 올 것을 예상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사실. 최 정책관도 서울에서 통근버스로 출퇴근한단다. “서울에서 통근하는 사람들이 초기 2천명가량 됐다는데 지금은 한 4천명정도 될 거예요.”



   
 
  ▲ 첫마을아파트 7단지에서 함께 살고 있는 김우섭, 김주완, 안정락 기자(오른쪽부터 반시계방향)가 일과를 끝내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수십 수백 사건에 ‘강약’ 조절

2시. 해수부 브리핑이 있어 5동으로 건너갔다. 해운보증기구 담당기구를 연내 설립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제공되자, 한 기자가 의문을 제기했다. “3~4시쯤 서병수 의원이 국회에서 관련 내용을 말한다던데, 내일 10시 ‘엠바고’는 의미 없는 거 아니에요?” “내용 겹치겠는데…”

기재부·해수부·금융위 3개 부처가 함께 협의한 사안이라는 답에 김 기자도 “그럼 내일 금융위 업무보고에도 들어가겠네요?” 물었다. “단독으로 공표하기 어려워서…”라며 말을 흐리는 해수부 관계자. 결국 기자들의 ‘엠바고’ 문제 제기에 공식브리핑은 접고, 대신 질의응답만 진행했다. “정치부에서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오면 내용이 같기 때문에 쓰는 게 의미가 없으니까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많은 사건들이 터지니까 ‘강약’ 조절을 해야죠.”

4시18분. 해수부 업무보고 기사 작성을 마치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자료집을 집어 들었다. 4시30분에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관련 백(back)브리핑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재부와 고용노동부, KDI, 미래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사전에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다. 보고서도 본래 300페이지에 달하지만 64페이지짜리 요약본이 제공됐다. 5시57분,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내용에 자료를 읽는 데만 1시간30여분이 걸렸다. 답답했는지 기자들도 “바로 질의응답하자”고 나섰다. 장장 2시간30분의 브리핑이 끝날 무렵, 바깥엔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렸다. 브리핑룸을 나서는 기자들도, 김 기자도 “너무 길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중교통 열악…통근버스 놓치면 ‘불편’
7시14분, 퇴근시간인 6시를 넘겨서인지 청사 주변은 고요했다. 도중에 환경부 등을 출입하는 한경 선배 김주완 기자와 합류했다. 6시 25분·30분·40분 등 6시엔 통근버스가 많지만 7시가 넘어 첫마을로 돌아가는 건 1시간 당 한 대뿐이다. 시간이 애매해 버스 정류장에 가봤지만, 일반버스도 대기시간만 29분이다. 주변엔 택시 하나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방향을 틀어 세종1번가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교통이 불편해서 저녁에 약속이 없으면 일을 빨리 끝내고 셔틀 시간에 맞춰가요.” 세종시에는 버스, 택시 등 교통수단이 많지 않다. “아무래도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하죠. KTX오송역까지 이상하게 택시비도 비싸요. 한 20분이면 가는데 2만원이 훌쩍 넘죠.” 교통의 중심엔 10~15분 간격의 간선급행버스체계(BRT)가 있다. 오송역-도램마을-세종청사-첫마을-반석역을 이으며 오송역에서 세종청사까지는 20분정도 걸린다. 김주완 기자도 한마디 덧붙였다. “대전, 유성 등 멀리서 술 마시면 도중에 도망도 못가요. 외곽쪽에서 첫마을까지만 3만원이 넘어요.(웃음)”

사실 세종시 초기엔 워낙 ‘허허벌판’이라 지금은 나아진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편의 시설 등은 부족하다. “이전에 행거가 필요한데 대형마트가 없어서 살 수가 없었죠. 그래서 서울에 다녀올 때 사갖고 왔어요.”(김주완 기자)

하지만 기자들간 친밀도는 높다. 이른바 ‘세종시 효과’다. 세종시에 내려온 부처를 중심으로 기자들이 3~5개씩 출입처를 맡다보니 자연히 친밀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어느 자리에 가도 나오는 기자가 비슷해요. 어제 환경부에서 만난 기자가 오늘 또 공정위 저녁 자리에 앉아있는 식이죠. 자주 보는 만큼 더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기자들끼리 ‘세기농’이란 농구동호회도 만들었다. 세종시기자농구회란 뜻으로 매주 한차례 마감을 끝낸 후 농구를 즐긴다. 5~6개월 전 창단해 현재 20여명이 넘는다. 기자들끼리 땀 흘리며 농구 한판을 뛴 후 마시는 맥주 맛은 기가 막히다. 김우섭 기자도 속해있지만 최근엔 서울출장이 잦아 참석을 잘 하진 못했다. 현오석 부총리와 기재부 대변인도 세기농의 ‘멤버’란다. “청사 체육관 시설이 좋아요. 국토부 체육관이 아주 잘 돼 있죠. 과천이었다면 다들 바로 퇴근할 테니 동호회를 만들진 않았겠지만 세종시라서 가능하죠.”

세종시 보금자리, 4인의 동지
8시40분. 식사를 마친 후 다행히 택시 빈차를 발견해 쾌재를 불렀다.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 김우섭 기자와 김주완 기자가 사이좋게 아파트 앞 슈퍼마켓에 들러 맥주를 샀다. 단지를 걸어가면서도 둘은 출입처와 기사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남자들로 이뤄진 흔한 숙소 풍경은 산산이 깨졌다. 너무 깨끗해 놀라자 집에 있던 안정락 기자가 “온다고 해서 깨끗이 치웠다”며 웃으며 맞아줬다. 44평 아파트에 큰 방 1개, 작은방 3개로 4명이 각각의 독립 공간을 갖고 있다. 각 방에는 회사에서 구입해 준 똑같은 침대와 책상이 하나씩 놓여있을 뿐 짐은 많지 않았다.

“세종시에는 세 부류가 있어요. 거처를 아예 세종시로 이전한 사람, 평일에만 내려오는 사람,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죠.” 김우섭 기자도 평일에는 세종시에 있지만 주말에는 서울에 간다. 평일이라도 현오석 부총리가 서울에서 회의를 하는 등 업무에 따라 빈번히 서울을 오간다. 때문에 서울집도 그대로 두고 있다. “주로 금요일에 바로 올라가 월요일에 내려와요. 2~3일 정도 서울에 머물지만 집이 필요하니까요. 서울역 근처라 이동이 조금 수월한 편이지만, 월요일 출근길에 내려오는 게 만만치 않죠.”

세종시에서 선후배간에 함께 살면서 마찰이 있다는 얘기도 있어, 다투는 일이 있지 않냐고 묻자 “없었다”고 했다. 밥솥, 전자레인지 등 기본적인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집에서는 거의 밥을 해먹지 않는 듯했다. 냉장고도 햇반과 물, 음료수, 맥주, 김치가 있을 뿐 깨끗했다. 청소는 각자 방을 치우고 쓰레기나 분리수거 등은 쌓이면 본 사람이 버린다. “솔직히 걱정도 있었죠. 함께 살면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서로 피해를 안 주려고 해요. 사실 같이 살면서도 서로 거의 얼굴 보기가 쉽진 않아요. 약속이 있거나 서울에 가고… 네 명이서 모두 모여 밥 먹는 것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죠.”

그래도 낯선 세종시에서 함께할 수 있는 ‘동지’가 있어 든든하다. 3명의 선후배는 회사 이야기부터 당일 예정됐던 김연아 선수 경기 등 소소한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의 피로를 덜어냈다. 10개월의 세종시 생활, “이제는 적응이 됐다”는 김 기자. 하지만 아직 경제부에 발을 들인 지 얼마 안 돼 여전히 경제부 기사는 어렵단다. “많은 배경지식과 논리적인 전개방식에서 경제부 기사는 아직 어려워요. 많이 쓰면서 배우는 중이에요.” 그렇게 첫마을 ‘보금자리’에서 그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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