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는 정확한 숫자가 생명…2차, 3차 확인에 또 확인

[기자25시] (7)매일경제 배미정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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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미정 기자가 금감원 관계자와 통화를 하며 통화내용을 노트북에 받아치고 있다.  
 
카드
새벽 1시까지 정보보고
고객정보 ‘1억건’ 유출 단독보도

직업병
건물 앞에 주차된 검은 세단
의문 들자마자 관계자에 전화

기자는 메신저
대중-전문가 연결 고리
팩트 근거한 정보공유 창구


서울 여의도 아침 출근길은 번잡하다. 각종 기관, 방송, 금융, 증권 등 한국회와 자본을 움직이는 거대한 클러스터가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5호선과 9호선 환승역인 여의도역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각각의 출구로 직장인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제각기 흩어진다. 이곳의 시간과 속도가 유독 빠르게 느껴지는 건, 여의도가 주는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금융감독원을 출입하는 배미정 매일경제 기자(금융부)의 일상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졸린 아침을 깨우는 커피 한잔을 들고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1층 로비에 들어선 배 기자. 지난 14일 오전 8시, 오늘 아침 동행취재를 약속한 기자와 인를 나누기 무섭게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간다. 막 출근하는 금감원 모 국장을 붙잡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KT ENS  협력업체 대출기에 A은행이 협력업체에 지분 투자했다는 얘기도 나오네요.”
“아 그래요? 그건 몰랐네. A은행?”
“네. 이야기를 들어서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또 아는 거 있음 알려줘요!”

KT ENS  협력업체 대출기에 금융권이 몸살을 앓고 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금융권 피해 규모는 하나은행이 1624억원으로 가장 크고, KB국민과 NH농협은행은 각각 296억원, 14개 저축은행 등 KT ENS 직원이 시중은행 등 금융권을 상대로 2800억원 규모의 대출 기를 벌인 것이다. 초기부터 취재를 시작한 매경이 주력으로 쓰고 있는 기다.

국장을 엘리베이터로 올려 보낸 뒤, 3층 기자실로 향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루의 시작이다. 금융감독원 공보실에서 방금 나온 ‘조간신문 프린트물을 들고 온다. 각종 경제기들을 살펴보고 놓친 기가 없나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금융회부가 되어 버린 금융부
“한 달간 카드만 썼어요.”
신용카드를 ‘긁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난 한 달 간 KB국민카드·NH농협카드·롯데카드 등 3개 카드 고객정보 유출고로 인한 후속보도를 이어갔다는 얘기다. 이번 고로 주민번호, 카드번호, 계좌번호, 직장주소, 집주소 등 광범위한 정보가 유출돼 심각한 회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유출된 고객정보가 ‘1억건’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보도한 것은 매경의 특종이었다. 전날 밤12시까지 금융부 기자들은 물론 부장까지 나서 각종 기관들에 연락해 숫자를 ‘크로스 체킹’하며 확인한 결과 쓸 수 있었던 단독이다.

배 기자는 “카드태가 터지고 나서는 새벽 1시까지 단체 카톡방이 울릴 정도로 정보보고를 했다”며 “금융부가 금융회부가 돼 버렸다”고 혀를 내둘렀다. 평소에 금융부는 회적 이슈가 될 만한 건들이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회를 뒤흔드는 굵직한 이슈들이 터지면서 금융부 기자들의 하루도 덩달아 바빠졌다. 회부가 담당할 법한 경찰, 검찰발로 터져 나오는 금융범죄도 함께 챙기고 있는 것이다.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 온 따끈따끈한 정보를 당국을 통해 확인해 기화 할 때가 가장 보람되다. 이런 기자들의 취재력에 감탄한 금감원 간부들도 “정보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 금융감독원 공보실에서 나온 조간신문 브리핑 자료를 보고 있는 배 기자.  
 
경제지, 숫자를 놓쳐선 안 돼

정신없는 아침보고를 하고 난 뒤 오전 9시5분, 기자실 내에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간다. 금융감독원을 출입하기 전, 배 기자는 대부업체, 신용정보, 외국계은행 등을 출입했다. “금융에서 정책당국으로 올라왔구나”라며 선배들은 우스갯소리로 배 기자의 영전을 축하했다. 동시에 어깨도 무거워졌다.

배 기자는 대학에서 서양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는 프랑스를 전공했다. 이런 인문학도가 뜻밖에도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석논문을 준비하면서였다. 시민계급의 자긍심과 귀족계급에 대한 반발심이 증가하던 18세기 당시 프랑스 재무총감 자리에 오른 튀르고의 개혁조치에 흥미가 갔다. 특권 길드를 없애고 부역을 폐지하며 지주들에게서 세금을 걷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안이었다. 하지만 징세를 반대하는 귀족계급의 반발로, 튀르고는 개혁안을 내놓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해임됐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프랑스는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 때 튀르고의 개혁이 성공했더라면 혁명은 어찌 되었을까요?”

과거문서를 뒤지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던 그가 기자가 되고 가장 좋았던 것은 매일 새로운 내용의 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전문가에게 질문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잖아요? 그게 참 매력적인 거 같아요. 공부할 때는 오래 걸렸던 답들이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걸어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기자의 숙명은 취재원과의 불가근불가원이라는 점이다. 최근 KT ENS  협력업체 대출기에 태에서 대출심 부실 의혹에 휩싸인 모 은행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매출채권 대금을 상환한 계좌의 실제 주인을 잘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기의 요지였다. 모 은행 관계자와 평소 돈독한 친분이 있었으나 기 이후 연락이 ‘뚝’ 끊겼다.
“어쩌겠어요. 나중에 밥 한번 먹어야죠 뭐(웃음). 제가 밥 야죠.”

오전 10시14분, 잠시 짬이 나는가 싶었지만 기 취재 지시가 내려온다. 일본계 금융회 J트러스트가 국내 대부업체를 인수하면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어 이를 취재하라는 것이었다. 모 대부업체 고위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구체적인 인수금액도 나온다.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 몇 번이고 인수금액을 엔화로 바꿔 확인해본다.

경제지 기자들의 숙명 중 하나는 바로 정확한 ‘숫자’다. 배 기자는 “숫자 하나 차이로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꼭 2, 3차로 확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끔 0(영)하나를 더 붙여 기업 매출액이나 인수금액이 잘못 나가면 민망하기 그지 없다. 기업 담당자로부터 “우리 회를 이렇게 크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라는 음성이 수화기 너머 들려올 때에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10시39분, 대부업을 담당하는 금감원 사무관은 자리를 비웠는지 몇 번째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인수금액은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금융면에 지면이 없어서 일단 기를 올려놓기만 했다.
 
허투루 놓치지 않는 치밀함
점심식도 취재의 연속이다. 오늘은 금감원 고위관계자와 만나 최근의 태에 대해 묻기 바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고 또 기자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기자실이 다소 한가하다. 그러나 기자는 한가하지 않다.



   
 
  ▲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들이 모여 지면회의를 하고 있다.  
 
오후 1시45분, 한국씨티은행이 169억원 매출채권을 위조해 기를 당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KT ENS  협력업체 대출기와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것이다.
“169억원이 맞는 거예요? 은행에서는 뭐라 그래요?”
“그동안 정상적 매출 이에 일부 허위서류를 끼워 넣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바빠지시겠네요.”

부장에게 보고하고 토요일자 지면은 이 건을 쓰기로 결정했다. 최근 들어 금감원에 적발되는 건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비리가 많은 것일까. 배 기자는 다른 진단을 했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이 점차 투명해지고 있다는 뜻일 거예요. 관리감독이 강화되면서 선진국형으로 가고 있는 중이죠.”

를 마감하고 한숨 돌린 오후 2시30분, 배 기자의 노트북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월요일에 쓸 아이템을 고민 중이다. 금감원에서 나온 자료를 한참 보던 배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금감원 팀장에게 전화를 건다. KT ENS  협력업체 대출례에서 중소업체들이 SPC(특수목적회)까지 세워 복잡하게 대출받은 SPC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듣고 싶어서다. 1시간 가까이 설명을 듣고 온 배 기자는 SPC를 통한 아이템을 여러 개 올린다.

“의심해야 나중에 문제 안 생겨”
금융감독원에서 철수한 오후 4시55분, 건물 앞에 고급 검은색 세단차량이 6대나 주차돼 있다. 기관장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량들이다. “이 차들이 여기 왜 있지?” 의문을 갖기 무섭게 금감원 관계자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 기관장들 누구 오나요?”
“아, 카드 영업정지 제재심의가 있어서 소명 들으려고 불렀어요.”

확인하는 기자의 습관일까. 배 기자는 “의문이 생겼을 때 ‘괜찮겠지’하고 지나가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며 “확인을 하면 나중에 틀린 정보를 알려줬을때 ‘왜 거짓말 했냐’고 따질 수라도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배 기자는 2010년 매일경제에 입회부, 금융부를 거쳤다. 회부 시절에는 경제지로서는 이례적으로 연평도 포격건을 취재하며 유족들을 밀착 마크했다. “어머님, 아버님”하고 부르는 넉살은 이때 배웠다. 수습시절에는 종로서, 강남서 등 경찰서도 출입하며 건기자로서의 근본을 닦았다.

그래서일까. 건기자로서의 실력도 갖췄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는 이휘경(박해진)이 자신의 큰 형을 죽인 범인으로 둘째 형인 이재경(신성록)을 의심했다. 휘경이 재경의 연인이었던 한유라(유인영)의 망 때 검출됐던 약물과 똑같은 약물이 큰 형의 범행에도 쓰인 것을 신문기를 비교해 알아낸 것.

2011년 현대캐피탈의 서버를 해킹했던 해커가 필리핀으로 도망쳐 인터폴 협조 끝에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해킹기를 꼼꼼히 살펴보던 배 기자는 지난 2007년 다음 등 국내 업체를 해킹한 수법과 유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를 경찰과 검찰에 확인해보니 역시 동일범이었다. 정당국에서는 “어떻게 알았냐”며 당황해할 정도였지만, 속으로는 내심 통쾌했다.

그렇지만 기자로서의 경력이 늘어날수록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만큼 기가 주는 무게감과 독자들의 반응이 무섭다. 기자로서의 역할을 묻자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답했다.

“기자는 메신저라고 생각해요. 대중과 전문가를 이어주는 역할이죠. 회가 커지면서 계층이 다양화 되고 있는데, 그 이에서 정보를 공유하게 해주는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팩트의 힘이 늘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원성윤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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