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무도 없는 앵커룸…그 사이에 내가 있다

[기자 25시](5) SBS 김성준 '8뉴스' 앵커

  • 페이스북
  • 트위치


   
 
  ▲ 김성준 SBS ‘8뉴스’ 앵커가 생방송을 앞두고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체력은 필수…틈만 나면 역기 들고 걷고
현장감 가지려…늦은 술자리도 마다 안해
20초짜리 클로징멘트…고치고 또 고치고
이석기 의원 멘트로 수난…수면제 먹고 잠자리 들어 


SBS 목동 사옥 스튜디오동 5층. 투명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보안카드로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편 계단 아래 익숙한 ‘8뉴스’ 세트가 보인다. 정면에 있는 곳은 앵커룸이다. 책상 두 개와 작은 소파 한 개가 전부인 아담한 공간이다. 김성준 앵커 외에 주말 뉴스와 아침뉴스 앵커들이 사용하는 곳인데 서로 근무 시간이 다른 탓에 이들이 한 자리에 함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덕분에 평일 오후 앵커룸은 오롯이 그만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 자리가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고립무원에 떨어져 정보에서 유리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보도국에 자리를 따로 마련해두고 틈틈이 오가며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한다. 앵커이기 이전에 24년차 기자로서 ‘감’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앵커의 하루
8시 뉴스 앵커의 하루는 비교적 느긋하게 시작된다. 오전 시간은 자유로운 편이어서 운동도 하고, 특강을 하거나 듣기도 한다. 개강 중에는 1주일에 한 번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에서 강의를 한다. 틈틈이 오전 8시30분에 있었던 편집회의 내용을 확인하고, 오늘의 주요 뉴스와 일정들을 파악한다. 모바일 시대가 열린 덕분에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실질적인 뉴스 준비가 시작되는 셈이다.



   
 
  ▲ 오후 편집회의가 끝난 뒤 클로징멘트 관련 자료조사를 위해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  
 
점심엔 가급적 뉴스메이커들을 만나 식사를 한다. 뉴스 현장에서 괴리되지 않기 위해서다. 뉴스가 끝난 뒤 늦은 밤 술 약속도 마다하지 않고, 가끔 다른 부서 회식에 따라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취재원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하던 아침뉴스 앵커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앵커로서 공식적인 일과는 오후 2시20분에 열리는 편집회의부터 시작된다. 2시50분쯤 회의가 끝나면 석간신문을 훑어본 뒤 그날의 클로징멘트를 구상한다. 1월27일. 오늘의 클로징 아이템은 불법 스팸과 스미싱 차단 대책으로 방향을 정했다. 어시스턴트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자료조사를 부탁하고, 그 역시 담당 취재기자와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모은다. 단 20초짜리 클로징에 불과하지만 “오류 없이 설득력 있게 주장을 하려면 자료 조사는 필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잠시 짬이 나면 회사 안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을 한다. “땀을 쭉 빼고 샤워하고 나면 뉴스 할 때 표정이 달라지거든요.”
체력은 앵커의 필수 덕목이다. 더러 앵커 일을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최상의 몸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목소리나 발음이 달라지면 전달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엔 사무실에서도 목도리를 하고 있고, 밤에는 마스크를 쓰고 잔다.

오후 5시에는 분장에 들어간다. 2년 전부터 뉴스의 심층화 흐름에 따라 사전 제작물이 많아지면서 5시 편집회의는 자연스럽게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6층 분장실에 올라가 머리를 만지고 분장을 하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으로 계속 뉴스를 확인하고 트위터를 한다. 그는 트위터(@SBSjoonnie)를 즐겨 이용하는 편이다. 일상을 끄적이고, 취미로 찍는 사진도 올리고, 정치적 현안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기도 한다. 뉴스 시작 30분 전, 직접 주요뉴스를 간추려 올리는 ‘오늘의 8뉴스’와 클로징은 특히 반응이 좋다. 많게는 1000번 이상 리트윗(RT·공유)되기도 하니 홍보 효과도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트위터는 그가 클로징멘트를 쓸 때 기준점으로도 작용한다. 매일 클로징을 쓰면서 그가 변함없이 지켜온 원칙은 “트위터의 140자 안에 들어가게 하자는 것”이었다. “단순히 트위터에 보내기 좋아서만은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어떤 기준이든 갖고 있어야 글도 장황해지지 않고, 쓸데없는 표현을 줄일 수 있거든요. 한두 글자를 해치우는 게 고통스럽지만, 그런 원칙을 지키면서 귀에 쏙 들어오는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클로징, 오해
클로징멘트 준비는 앵커로서 그의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앵커멘트와 클로징이 시청자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20초짜리 클로징멘트를 쓰기 위해 충분히 자료조사와 취재를 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기 위해 뉴스가 끝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 오후 6시47분, 헤드라인으로 방송될 주요 뉴스를 사전 녹화하고 있다.  
 
특정 세력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할 때는 더욱 신중을 기한다. 엄격한 원칙도 있다. “비판은 아프게 하되 치사하지는 않게 하기”다. “아프게 뒤트는 풍자를 하면 사람들은 열광하죠. 하지만 대중의 열광을 받기 위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치사하다는 느낌을 갖지는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그의 클로징멘트를 두고 “앵커가 방송에서 사견을 말한다”고 힐난한다. “말이 안 되죠. 클로징멘트는 사견이 아니에요. 뉴스의 편집 방향이죠. 뉴스를 마치면서 시청자에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해줬으면 하는 겁니다. 신문의 사설처럼요. 제가 개인 생각을 말해왔다면 지금 이렇게 뉴스를 진행하고 있지도 못했겠죠.”

물론 클로징멘트를 쓰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아이템 선정부터 멘트 작성까지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보도국장과 앵커 간의 상호 신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장은 당신이 지향하는 뉴스의 편집방향에서 클로징멘트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는 거고, 저도 제가 어느 정도 선을 넘더라도 국장이 이해하고 관여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거죠. 일부 표현에 대해 국장이 ‘너무 건드린 것 아냐?’ 정도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이건 안 돼’라고 막는 체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상호 신뢰와 지원에 힘입어 그의 클로징멘트는 어느덧 SBS 뉴스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뉴스는 못 봐도 클로징은 챙겨본다는 이들이 상당수다. 하지만 대중은 종종 오해를 한다. 그에 대한 평가도 좌우 양 극단을 오간다. 극적인 체험의 정점을 찍은 것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을 때다.



   
 
  ▲ 입사 동기인 정승민 정치부장과 기사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고 있는 모습.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수사가 시작된 지난해 8월28일, 그는 이렇게 클로징멘트를 했다. “미묘한 때에 초대형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국민이 놀랐습니다. 시점과 내용으로 볼 때 국가정보원이 조직의 명운을 건 외길 걷기에 나선 것 같습니다. 진실 말고는 길잡이가 없습니다.”

할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방송 직후 난리가 났다. ‘종북 앵커’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일베’를 중심으로 퇴출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의 뜻과는 무관하게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졌다. ‘위험하게 굴지 말고 편하게 방송하라’는 충고부터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용감하다’는 후배의 존경어린 시선, ‘결국 정치 좀 해보려고 튄다’는 둥 ‘진보 코스프레’라는 비아냥거림이 그를 매섭게 휘몰아쳤다. 잠도 못 자서 매일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들 만큼 고통과 고뇌의 시간이었다.

혼란을 수습하며 주위에 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심판자적 자세를 가지면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회사에서도 “네 잘못은 아니지만 오해의 소지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는 100%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욕심을 덜 냈어야 하는데, 표현을 압축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다 보니 생긴 일이죠. 덕분에 다이어트도 됐고, 앵커로서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일용직 노동자
오후 6시,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을 준비하는 시간. 8시 뉴스 앵커의 일정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바쁘게 돌아간다. 지하 구내식당에 내려가 10분 만에 저녁식사를 ‘흡입’하고 보도국 자리로 돌아와 큐시트와 주요 뉴스들을 확인한다. 앵커멘트를 다듬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약봉지를 건넸다. 점심에 먹은 게 체기가 있어서 부탁한 약이다. 전날도 눈에 다래끼가 나려고 해서 항생제를 들이붓다시피 했다더니, 앵커는 함부로 아파서도 안 되는 존재다.

6시38분, 앵커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스튜디오로 내려가 파트너인 박선영 앵커와 함께 주요 뉴스와 오프닝 제공샷을 미리 녹화했다. 보통 하루에 사전 녹화하는 리포트는 남녀 앵커 합해 다섯 꼭지 정도. 먼저 김성준 앵커가 독감 주의보 관련 ‘앵커 터치’를 녹화한 뒤, 박선영 앵커가 돌봄 교실 확대 소식을 ‘뉴스 인 뉴스’로 전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버추얼 스튜디오로 이동이다. 버추얼 앵커 멘트로 제작되는 어린이 시설 유해 물질 리포트다. 초록색 배경 위를 이동하며 멘트를 하면 그 위로 장난감 가득한 어린이집 CG가 입혀진다.

8시 5분 전, 마지막으로 메이크업과 마이크 착용을 점검하고 3분 전, 헤드라인과 함께 드디어 뉴스가 시작된다. 정작 뉴스가 시작되니 스튜디오는 고요하다. 분주하고 긴장감이 감돌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사전 제작물이 있으니 뉴스 진행에 훨씬 여유가 생긴 편이다.

스포츠뉴스와 날씨까지 나가고, 김성준 앵커의 클로징멘트를 끝으로 1월27일자 뉴스가 끝났다. 이렇게 하루의 뉴스를 끝내고 나면 허탈함이 밀려든다. “취재기자와 달리 편집부와 앵커는 그날 뉴스를 만들어서 털고 나면 그걸로 끝이에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와 다름없죠.”

매일 뉴스가 끝나면 사람들은 ‘8뉴스’와 그의 클로징멘트에 대해 저마다 다양한 평가를 쏟아낸다. 한동안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얼마 전부터 “SBS도 맛이 갔다”며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억울하기보다는 아팠다. SBS 뉴스의 상승세를 견인했던 그이기에 안타까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앵커란 직업을 환상을 가지고 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회사에서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니 스스로도 우쭐한 마음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는 “앵커는 좋은 직업도, 신데렐라도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가 앵커의 최고 덕목으로 ‘자제력’을 꼽는 것은 바로 그런 우쭐함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화려한 명성만큼 책임과 부담이 뒤따르는 자리라는 것을 그는 잘 안다.

‘8뉴스’만 3년, 앵커 경력을 합하면 벌써 7년 가까이 되는 그는 오래도록 뉴스를 진행하고 싶은 바람은 없다. 다만 그가 진행하는 동안만큼은 SBS 뉴스가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길 바라는 마음이다. “당장 어제 뉴스보다 오늘 뉴스가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시청자들이 볼 때 역시 김성준이 진행하는 뉴스는 더 믿을만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