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뒤의 진실 찾아 하루 50㎞…집에 못들어가도 괜찮아요"

[기자 25시] (4)국민일보 사회부 박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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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일보 박요진 기자가 지난 22일 서울 송파 배명사거리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전국대리기사협회 회장을 만나 대리기사들의 고충을 듣고 있다.  
 
묻고 기다리고 찾아가고…
현장에서 부딪치며 하루종일 취재 강행군 

‘좋은 기사 많이 쓰라’
취재원 말 한마디에 피로도 눈 녹듯 사라져

누구를 만나도 의심부터…
끊임없이 생기는 의구심, 기자의 숙명 아닐까


하루 50km. ‘혜화경찰서-북부지법·지검-도봉경찰서-송파 배명사거리’까지 서울 동쪽을 오르내린 숨 가쁜 하루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발품’을 팔며 지칠 법도 하지만 국민일보 사회부 사건팀 박요진 기자는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라며 오히려 개운한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회부 기자는 ‘날카로운 칼’이라고들 해요. 기사가 사실이어도 오보여도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거죠. 스스로 누군가를 상처 입힐 기사를 쓸 자격이 있는지 수도 없이 생각하죠.”

지난 22일, 썰렁한 기운이 감도는 영하 10도의 날씨. 오전 8시30분 서울 종로구 혜화경찰서 앞에서 박요진 기자를 따라 기자실로 들어갔다. 40여분 전에 도착해 신문을 훑고 아침 보고를 준비한 박 기자를 포함해 5명 남짓한 기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번 혜화는 영원한 혜화!’ 벽면에 걸린 화이트보드의 ‘무적 혜화’ 글귀가 눈에 띈다. 각 언론사별 출입기자들의 이름과 입사년도가 적힌 한 귀퉁이에 “잘 부탁드린다”는 그의 흔적도 남아 있다.

지난해 2월 입사해 7월 수습을 마친 박 기자는 현재 혜화 라인을 맡고 있다. 혜화·동대문·중랑·노원·강북·도봉 등 일대 경찰서부터 북부지법과 북부지검, 성균관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 등 대학들까지 출입 영역이 넓다. 법조팀 전담이 아닌 각 관할 구역 내 지법과 지검은 사건팀이 담당한다.

처음부터 사건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는 그.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가장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대상의 영역과 범위에 제약이 없어 ‘걸리면’ 쓸 수 있는 자유로움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그날 집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의 ‘변수’는 개의치 않는다.

아침 보고는 별다른 일이 없어 집회 일정만 갈무리했다. 담당 구역에 하루 신고된 집회 일정만 50~60건. 쌍용레미콘 부당해고 철회 결의대회 등 새로운 것 몇 가지만 추렸다. 이어 “최근 인사가 새로 났다”며 관내 경찰서장과 홍보팀장 등의 이름과 연락처를 챙겼다. “다음에는 시경캡들을 취재해 달라”는 열화(?)와 같은 기자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북부지검 차장검사와의 약속을 위해 일어섰다. 바깥에는 어느새 국민일보 사건팀 수송차량 ‘형님’이 와 있었다.

‘사람’을 얻어야 ‘사건’을 얻는다
“국민일보 박요진입니다.” 11시. 북부지검 차장검사 방에 들어서며 명함을 건넸다. 지난해 12월 북부지검장이 새로 부임하고 최근 인사가 다수 바뀌었다. 눈도장을 처음 찍는 순간인 만큼 차장검사와 안면 있는 회사 선배 이야기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예전 차장검사님은 통화가 잘 안돼서…”
“그 얘기 많이 들었어요. 기관 폰이지만 전화는 잘 받으려고 해요.”
인사 결과에 대한 평을 넌지시 묻자 “인사 패턴이 바뀌고 있어 잘 모르겠다”고 한발 뺀다. “인사는 짝사랑이라고 해요. 애달아할수록 애달픈 사람만 더 힘들다고 하죠. 허허.” 박 기자도 맞장구쳤다. “짝사랑도 더 좋아하는 사람이 힘든 법이죠.(웃음)”

1층으로 내려가던 중 박 기자가 돌연 승강기에서 내렸다. “잠시 들렀다 가자”며 한 검사실을 불쑥 찾았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는 욕심에서다. 손님이 있다는 말에 “명함이라도 드리고 가겠다”고 하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말씀 드리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민원실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도 그는 ‘대기’ 상태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기사 하나를 써야할 것 같다”고 했다. “하루에도 써야 할 기사가 4~5번씩 바뀌죠. 일단 4매로 잡혔다는데 다시 빠질 수도 있어서 확인하고 있어요.”

오후 취재 약속도 잡았다. 대리기사들이 이용하는 셔틀버스에 대한 불법 단속을 다루는 기획취재다. 전국대리기사협회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연 단속만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지 직접 만나서 듣고 싶습니다.”

11시33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맞아주는 검사. “만나만 주시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박 기자는 화답했다. “기자들 오면 혹시 기사 쓸까봐…” 웃으며 검사와 기자의 ‘안 좋은’ 공통점을 든다. 두 직업 앞에서는 지인이라도 입을 꾹 다물게 된다는 점이다. “기자생활 5년이면 친구가 다 없어진다더라고요.”

겉은 웃지만 ‘사람’을 얻는 게 쉽지는 않다. “편하게 대하시라”는 말에 “친해지면”이라는 전제가 따라붙는다. “‘형님, 형님’ 해도 관리하는 건지, 진심인지 보면 안다”는 취재원들의 말에 그도 동의한다. “처음부터 사건을 얻자고 덤벼들면 당장 하나는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 사람의 문을 열지 못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죠.”



   
 
  ▲ 점심시간, 오후 일정에 앞서 선배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는 박요진 기자. 수첩과 휴대전화는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하고

오후 보고는 1시20분까지다. 북부지법 기자실에서 노트북을 열고 연합뉴스와 석간신문, 포털 등에서 ‘키워드’ 검색을 하며 혹 놓친 것은 없는지 살펴본다. “오후 보고는 할 게 없어야 좋은 거예요.” 다행히 혜화라인 ‘특이사항 없음’이다.

“선배, 박요진입니다.” “밥은 먹었어?” “네, 먹었습니다.”
휴대전화 너머 영등포 라인의 김유나 기자 음성이 흘러나온다. 오전 중 배정된 기사를 조정하고 추가 현장 취재를 부탁했다. 일부 대기업 편의점 프랜차이즈에서 최저 매상 매장에 보조금 제공을 중단하는 대신 본사 수수료 비율을 줄인다는 내용이다. ‘조삼모사’식 정책은 아닌지 실제 점주들의 인식을 파악하고자 나섰다.

1시28분.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사장을 찾자 “무슨 일이냐”며 직원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기자임을 밝히고 “본사와 매장 일로 여쭤볼 게 있다”고 하자 옆에 있던 남자를 가리키며 본사 직원이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멈칫. 곧 “설문조사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경계를 풀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할까 잠시 고민했어요. 혹시 점주에 피해가 갈 수 있잖아요. 우연인데 혹시 사전에 연락했다고 본사 직원이 오해라도 하면 안 되죠.”

문이 잠긴 한 편의점 앞에서 기웃대자 곧 점주가 나타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처음 듣는 이야기”란다. “공문도 없었는데…. 확인해보자”며 알고 있는 점주 2~3명에게 전화 몇 통을 바로 넣는다. “내가 다른 점주한테 얼핏 들었는데… 들은 적 있어?” 하지만 같은 반응이다. 공식 내용이 아니거나 일부 지역 또는 특정 점포만 따로 하는 건 아닌지 되묻는다. “정말 점포에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긍정적이겠지만 과연….”(점주) 박 기자가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자 “좋은 기사 많이 쓰라”는 응원이 돌아온다. “이런 분들 있으면 기사 쓸 만하죠.”

6곳 정도를 거쳐 들른 곳에서 “새로운 가맹점들이 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는 답변이 나왔다. “대신 인테리어비를 절반씩 한다던데….” 박 기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언제 들었냐”고 묻자 “작년 말쯤인가, 정확치 않다”고 했다. “흠, 나올 듯 안 나올 듯 하네요.”

거침없이 들어간다고 하니 “면박 주면 다시 나오면 되죠”라며 씨익 웃는다. “보통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기자를 더 인정해주잖아요. 그렇지 않을수록 기자를 무시하는데 전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만약 반대라면 굉장히 슬프죠. 강자는 무시하고 약자가 무서워한다면 씁쓸하죠.”

3시 약속에 맞춰 북부지법 오원찬 공보판사 방에 들어섰다. “판사님 만나려고 기자들이 줄을 섰다”고 하자 “에이, 연합 말고 없었는데”하며 손을 젓는다. 박 기자는 “방문한 ‘목적’이 따로 있다”며 출입 기자들과의 약속 날짜를 잡았다. “우린 괜찮지만 이쪽 (라인)기자들이 갑자기 ‘총 맞는’ 사람들이 많아서… 최근 바뀐 기자도 많은 것 같아요.”(오원찬 판사) 당일 사건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사건기자들. “혜화 라인에는 유명인이 많이 사는 것도 아니고 큰 사건이 많이 있진 않아요. 그래서 다른 관할 지원을 많이 가죠. 흔히 ‘총 맞는 라인’이라고 해요. 물론 기획기사도 많이 쓰지요.”


   
 
  ▲ 도봉경찰서에서 형사들을 만난 후 장소 이동을 위해 수송차량 ‘형님’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 박요진 기자.  
 

내 구역, 이름 ‘석 자’는 나오도록
3시45분경 도봉경찰서에 도착했다. 1층에서 서장실을 확인한 후 성큼성큼 위층으로 향했다. 선배들 귀동냥에 “어디든 가장 센 사람부터 만나라고 했죠.” 3일 전에 발령난 서장에게 인사차 들렀지만 아쉽게도 파출소 순시에 나갔단다. “나중에 인사드리겠다”며 명함만 전하고 돌아섰다.

대신 형사, 수사, 정보 등 주요 과장들 방을 돌며 인사에 나섰다. 한 직원이 다짜고짜 들이민 ‘붕어빵’ 선물을 받기도 했다. 경찰 인사가 2월이라 다소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인사 규모나 범위를 물어도 “잘 모르겠다”는 답뿐. “과장들이 바뀌면 달라지잖아. 언론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국장이 누가 오냐에 따라 스타일 다르잖아.”(과장급 경찰)

“도봉서에는 기자실이 없어 작정하고 와야 한다”는 박 기자. 회사 선배에게 소개받았던 강력계 형사에 연락을 취했다. 강력계 문은 상시 잠겨 있다. “무턱대고 ‘문 열어달라’고 하면 누가 열어주겠어요. 물꼬를 먼저 트는 거죠.” 낯선 얼굴이 나타나자 형사들이 일제히 “어디 가냐”며 쳐다본다. 다른 기자들도 많이 오냐는 질문에 “오긴 하는데 반기진 않지. 그래도 김 기자 후배라고 하니까. 저녁에 시간될 때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한마디에 힘을 얻는다.

지난 24일 그에게도 후배가 생겼다. 기대 반 긴장 반이다. “‘국민일보 박요진’이라고 했을 때, 상대가 저희 선배를 안다고 하면 괜스레 기분 좋더라고요. 수습들도 곧 경찰서를 돌 텐데 제 출입처에서 국민일보라고 하면 ‘박요진’ 이름이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국민일보 오랜만인데…’ 이러면 부끄럽죠.”

“더 많이 만나야겠다”고 다짐하며 2진이 오면 1진이 더 배운다던 선배들의 조언을 되새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달팠던 수습시절이지만 돌아보면 아쉽다. “경찰들이랑 더 친하게 지낼 걸 하는 아쉬움이 가장 커요. 당시엔 수습이라 ‘경찰들이 대우를 안 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잘해준 거였어요. 수습을 떼니 인정은 해줄지 몰라도 살갑게 대하진 않더라고요.”

현장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이, 사건기자
5시34분. 송파 배명사거리 근처 햄버거 가게. 6시까지 회사에 복귀해야 하는 수송부 ‘형님’이 빠듯한 시간에도 끝까지 책임졌다. 형님과의 돈독한 사이를 자랑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전국대리기사협회 회장과 만나기로 한 6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김에 저녁으로 급히 햄버거를 먹어 치웠다.

“최근 당국에서 대리기사들이 이용하는 셔틀버스를 불법이라고 단속하는데 과연 ‘최선’일지 의문이 듭니다.” 박 기자가 묻자, “대리기사가 불법이라지만 심야 시간에 이동수단도 없고 비용도 만만치 않죠. 보험·안전장치가 없다며 단속하지만 사실 목숨이 위험한데 누가 그걸 타고 싶겠어요?” 회장이 반문한다.

협회 회장은 대리기사가 마치 ‘유령’과 같다고 토로했다. “대리기사와 관련된 법과 제도 자체가 없어요. 언론 보도도 대부분 소비자 입장이죠. 하지만 기사와 업자, 소비자 3자로 이뤄진 시장이라는 점에서 한 축만 다뤄서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할 수 없어요.”

한 움큼씩 말을 토해내는 회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박 기자. 감정적이거나 불확실한 사실은 다시 곱씹는다. 회장을 곧게 쳐다보며 물었다. “기자라면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두고 다루고 싶으세요?” “운전대를 잡는 대리기사들에게 슬픔과 서러움을 주지 않는 정책이 필요해요. 대리기사들도 분명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는 면이 있어요. 안전운행을 위해서라도 합법화·제도화시켜 최소한 생존할 수 있게 해야죠. 교통사고와 인명 피해도 예방할 수 있을 거예요.”

1시간가량 취재를 끝내고 기자로서의 고민을 하나 더 내놓는다. 상대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는 것. 한쪽의 주장은 다른 쪽의 잘못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도 의심을 하죠. 때론 견제하며 들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기사로 쓸 때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정확히 살피고 잘 판단해야죠.”

과거 층간소음으로 이웃을 살해한 사건을 참관했을 때를 돌이켰다. 왜소하고 약해보이는 피의자를 보며 “사람을 죽일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사 왈, 오히려 덩치 큰 사람들은 주먹을 사용하지 흉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경우의 수도 함부로 예상할 수는 없다.

11시간의 동행을 마치며, 박 기자는 사건기자로서의 단상을 꺼냈다. 지난해 12월 말 철도노조 지도부 체포 과정에서 전교조위원장의 영장실질심사 관련 단독을 한 동기의 이야기다. “따로 취재원을 통한 정보가 아니라, 당시 공개된 장소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게 의미가 있어요. 집회가 다 끝나가는 분위기에서 전교조 관계자가 경찰이 위원장 구속 움직임을 보인다고 단상에서 얘기했고 제 동기가 재빨리 취재해 보도했죠. 결국 사건기자는 현장에 제일 빨리 도착하고, 마지막까지 있는 기자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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