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질문하는 직업…대통령이라도 아프게 물어볼 것"

[기자 25시] (3) 경향신문 정치부 심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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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혜리 기자(사진 맨 오른쪽)가 경기도교육청 정책토론회가 열린 1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왼쪽)에게 경기도지사 출마여부를 묻고 있다.  
 
오전 8시 방앗간에 참새 모여들 듯
기자들, 대변인실로

모호한 안철수 화법
“만나서 확인하자” 여의도 사무실 직행

택시에서, 사무실에서 ‘쓰고 또 쓰고’
종일 발품 팔아 원고지 5매 기사 마감 


대학시절 신학과 철학을 전공하며 학보사 기자를 지낸 심 기자는 2007년 경향신문 수습공채 시험에 합격해 언론계에 입문했다. 현재 정치부에서 민주당 및 안철수 의원을 담당하고 있으며, 지난 2012년에 보도한 ‘북한 인권, 진보와 보수를 넘어’기획시리즈로 한국신문상, 인권보도상, 통일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선배인 구혜영 경향신문 기자(야당반장)는 심 기자를 “훈기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면서도 차분하고 근성 있는 자세로 취재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다”고 평가했다. 정치부 2년차 기자에 접어든 심 기자를 지난 16일 밀착취재했다.


정치부 기자, 시작은 김밥을 먹으며
“심혜리씨, 인사 안 해?”
지난 16일 오전 8시5분, 민주당 대변인실. 민주당 출입기자인 심혜리 경향신문 기자(정치부)에게 당 관계자가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선배~ 인사 했어요.”
몇 차례 농이 오고가며 질문이 시작된다.
“안철수 신당이 전라도서 난리라는데?”
“왜요?”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오늘 OO일보에 났어. 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심 기자를 취재한 날은 그가 정치부를 맡은 지 꼭 1년이 된 날이었다. 민주당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을 전담 마크하고 있는 심 기자는 지난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안철수 의원 측의 ‘내일’ 이사장직 사임 특종기사를 쓰며 나름 정치부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래서 심 기자에게 궁금한 게 많은 당직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그 시각 방앗간에 참새가 모이듯, 당 대변인실에 기자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민주당에 일명 ‘마약김밥’으로 유명한 김밥으로 공복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다. “근데 물 먹으면 김밥 맛도 달라요.”(황승택 동아일보 기자) 기자들 세계에서는 단독 기사를 놓치면 소위 ‘물 먹는다’고 표현한다. 조간신문 펼쳐 보다 자신도 모르는 기사가 나온다면? 김밥 맛이 좋을 리가 없다.



   
 
  ▲ 심혜리 기자가 16일 오전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당 고위정책-정치개혁특위 연석회의에 참석해 취재하고 있다.  
 
8시30분. 다시 국회 기자실 정론관으로 향한다. 어제 늦게까지 마신 술 탓에 숙취가 얼굴로 와 부은 얼굴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어쩌겠어!’
이제부터 정치부 기자로서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정치인들이 아침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발언들을 살펴보기 위해 방송사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정치인들이 중요한 발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 발언들은 챙겨서 게시판에 올려요.”

1월은 정치부에 일이 없는 ‘농한기’로 일컬어진다. 국정감사도, 특별위원회도, 법안통과도, 정치의 꽃인 ‘선거’도 없다. 대신 멀리서 내다본다. 오는 6월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소위 안철수 신당에서 꿈틀대는 ‘잠룡’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송곳’ 질문에 ‘싸늘한’ 분위기로
오전 9시. 노트북을 집어 들고, 국회 정론관을 나선다. 오늘 첫 취재다. 민주당 고위정책-정치개혁특위 연석회의가 열리는 2층 원내대표실로 향한다. 민주당은 이날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번복한 새누리당을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거부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깨는 것이다.”(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타타타타. 기자들의 타자소리가 빨라진다. 어라? 여기자들의 숫자가 많다. 배석한 취재기자를 헤아려보니 25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명이 여기자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금녀’ 구역이었던 것과 상전벽해다. “남자 정치인들이 많은 국회에서 여기자들이 아무래도 다가가기 쉬운 면이 있어서 여기자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거 같아요.”

9시35분이 되자 비공개 회의로 전환한다. 다시 정론관을 내려온다. 정치부장에게 10시까지 이날 일정과 각종 사안들을 보고한다.

10시. 다시 이번에는 당 대표실로 자리를 옮긴다. “최고위 할 때 보다 언론인들이 더 많이 오셨어” 민주당 관계자가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른다.
전날 단행된 대규모 당직개편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 김관영 당대표 비서실장,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 노웅래 사무총장, 이윤석 수석대변인, 박용진 당 홍보위원장 등이 기자들 앞에 나란히 섰다. 심 기자가 첫 질문을 끊었다.

“이번 당직개편이 계파를 막론하는 대탕평 인사와는 거리가 멀지 않나요?”
두 손을 맞잡으며 화기애애하게 사진을 찍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서로 치고받고 하더라도 당내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일관된 목소리로 하나로 나갈 때는 계파라는 게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입니다.”(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
“제 성이 노씨입니다. 그럼 저는 친노입니까? 비노입니까?(웃음)”(노웅래 사무총장)
농담과 진담이 오가는 질의응답 뒤, 기자들의 손을 하나씩 마주잡으며 인사한다.

다시 정론관 기자실. 오전 11시29분. 지면계획안이 나왔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오후에 있을 자신의 싱크탱크격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주최 신년 하례회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모두를 비판한 데 대해 원고지 5매 분량의 기사를 쓰라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뉴질랜드로 트레킹을 떠났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정도 잡혀있었다. 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참석하기로 한 일정도 있다. 모두 시간은 오후 2시. 선택의 시간. 기사는 손학규 고문을 쓰되 김상곤 교육감 일정을 챙기기로 했다. 그러나 20분 뒤인 11시43분. 공천폐지 반대에 대한 야당 반발 기사로 교체됐다. “알겠다”며 일단 점심약속을 챙기러 나간다.

점심,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시간
11시50분. 이제 점심시간이다. 마음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식사시간마저도 정치인 등과 함께 식사를 하며 정치판세를 읽어야 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서기호 정의당 의원과 여의도 모처에서 동료기자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서로 초면과 구면이 섞인 기자들이 인사를 나누고 식사에 들어간다.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서 의원이 모 일간지 기자들과 식사 도중 나온 발언이 기사화 돼 곤욕을 치렀다며 말한다. “그 다음에는 겁이 나서 기자를 못 만나겠더라고요.”

그래도 질문은 계속된다. “안철수 신당에 간다는 이야기도 나오던데.”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한다. “제가 정의당 비례대표인데 신당에 가는 순간 의원직 상실이에요”(웃음)



   
 
  ▲ 여의도 국회 기자실을 나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로 이동하기 위해 회사 차량에 탑승하는 모습.  
 
서 의원과의 식사시간이 길어졌다. 아차,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1시50분이다. 회사차를 타기로 한다. 신문사에는 운전해주는 기사님을 기자들은 ‘형님’이라 부르는데, 그 형님께 호출을 하는 것이다.
“형님, 여기 국회인데 와주실 수 있나요?”
“어? 나 퇴직했는데?”
아차, 퇴직한 줄 모르고 엉뚱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에고. 죄송해요.”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이번엔 두 번째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국회예요. 와주실 수 있어요?” 그 형님은 된다고 하신다.

2시5분. ‘경향신문’ 로고가 박힌 차를 타고 여의도 국회에서 중구 프레스센터로 간다. 안 의원은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하는 지역구 행사 대신 경기도교육청 주최 토론회를 찾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만나기로 했다. 6·4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김 교육감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에 기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웅 어떡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심 기자가 한숨을 내쉰다. 택시를 타자 타 언론사 기자들과 만든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이미 안 의원이 2시에 축사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방에서 누군가가 축사까지 받아쳐 ‘풀’(공유)을 해주기까지 한다.
“에휴, 늦었는데 기사를 여기서 써야죠.”

흔들리는 차안에서 기사 쓰기를 15분, 프레스센터에 도착했다. 20층 국제회의장에 들어서자 맨 앞좌석 안 의원을 바라본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다.
“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노트북을 연지 채 10분. 안 의원이 밖을 나간다. 따라 나간다.
“안 의원님, 오늘 김상곤 교육감을 찾아오신 게 경기도지사 영입 때문인가요?”
“제가 오늘은 드릴 말씀이…”

승강기를 한참 찾던 안 의원은 기자들 곁을 빙그르르 돌며 황급히 빠져나간다. 이제는 김상곤 교육감이 기자들 앞에 선다. 기자들에게 밀릴 새라 스마트폰을 꺼내 김 교육감 입에다 가져댄다.
“경기도지사에 생각이 있으신지요?”
“아직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의가 있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흩어지는 기자들이 한 마디씩 보탠다.
“오늘 완전히 출마한다고 한 거네.”(A기자)
“그죠? 난 안한다고 할 줄 알았거든요.”(B기자)
“기사 얼른 써야겠네.”(C기자)
기사 쓸 곳을 찾다 같은 건물에 위치한 한국기자협회 사무실에 들른 심 기자. 그는 이곳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기사는 다른 기자에게 ‘토스’되고 심 기자가 원고지 5매 분량의 기사를 쓰기로 했다.

오후 3시50분. 기사를 송고하고 나니 데스크와 이견 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틀 전에 라디오에서 나온 발언이랑 다를 게 없지 않나.”
“그때랑은 분위기는 좀 바뀐 거 같습니다.”

초판 기사를 마감해 올렸지만 언뜻 판단이 들지 않는다. 다시 ‘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여의도 국회 앞 모 빌딩에 위치한 안철수 새정치 추진위원회에 직접 가서 발언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치부 특종은 발로 뛰며 만들어 내는 것이라 믿는다.

오후 4시를 갓 넘긴 시간, 충정로를 넘어가는 길에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바쁜 정치부 기자의 일상이 고단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일상에 매몰돼 다니죠. 그러다보니 ‘생각하는 근육’이 많이 퇴화된 거 같아요. 책 읽을 시간도 없고…. 오늘 제 일상을 객관화해서 되돌아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네요.”(웃음)

오후 4시30분. 건물에 들어서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의원도 들어섰다. 그러나 안 의원은 기자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곧장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 미리 약속한 표철수 공보단장이 나왔다. 오늘 김상곤 교육감의 발언과 안 의원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질문을 던졌다. 인상을 써본다. 입술도 깨물어본다. 이리저리 머리를 갸웃거려 보지만 도통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화법이 안 의원과 점점 닮아가는 건가.’ 속으로 되뇌다 국회 기자실로 발걸음을 돌린다.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오후 5시20분. 경향신문 정치부 선배인 강병한 기자가 심 기자에게 ‘우루사’를 건네주며 “오늘은 없는 술자리도 만들어야겠네”라며 너스레를 떤다. 야당 반장과 몇 차례 조율 끝에 ‘김상곤 “안철수와 만남, 피할 이유 없다”’는 기사를 출고했다. 원고지 5매의 짧은 기사지만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하루의 일정이 끝났다. 정론관을 뒤로하고 들른 국회 구내식당 매점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잡고 앉던 차에 전화가 한 통 온다. 아까 만난 표철수 공보단장이다. 한참을 듣던 심 기자가 기자의 수첩과 볼펜을 뺏더니 이내 적기 시작한다.

이제 끝난 걸까. 질문을 던졌다.
“정치부 기자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아직 정치부 1년차라…”

이리저리 고심하던 심 기자가 입을 열었다.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로 40년간 명성을 떨친 헬렌 토마스의 말을 인용했다.
“헬렌 토마스가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고 했어요. 기자들은 질문을 하는 직업이죠. 질문 받는 사람과 자리, 기분을 감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걸 물어보는, 질문을 아프게 하는 기자가 돼야겠죠. 아니, 될 겁니다.” 원성윤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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