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영웅' 태권V 문대성, 국회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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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성과 겨루기 한 판’


2012년 7월 10일 태릉선수촌.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태권도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 행사가 열렸다. 현장을 스케치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국회의원 문대성과 마주쳤다. 문대성에 대한 취재를 막 시작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주인공을 맞닥뜨린 것이다. 문대성과는 지난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알게 됐다. 당시 만남을 언급하며 안부를 묻자 그는 “물론 기억하고 있다”며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명함을 주고받은 뒤 논문 표절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자 갑자기 문대성의 표정이 바뀌었다. 본의 아니게 겨루기 한 판이 시작됐다. 물론 입으로 하는 대련이다. 문대성은 “후배 선수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런던올림픽 끝나고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서둘러 앞을 가로 막고 다시 물었다. 문대성은 “저를 인터뷰하면 회사에서 혼날 걸요”라고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허를 찌르는 뒤후려차기였다. 오기가 생겼다. 나는 “회사에서 내놓은 기자라 괜찮다”고 말했다. 문대성은 아무런 대꾸없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다시 연락하겠다. 방송이 올림픽 전에 나가니 그 전에 인터뷰하자”고 외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하던 보좌관이 성급히 문대성의 뒤를 따랐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문대성은 2012년 4.11 총선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인물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서 IOC 선수 위원, 그리고 대학교수까지. 가난을 딛고 일어선 성공스토리에 호남형 외모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던 그가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문대성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 후보로 정치에 입문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대학 연구자들의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에서 문대성의 석사와 박사, 그리고 학술지에 게재된 여러 편의 논문에 대해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의혹에도 불구하고 문대성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의혹이 커지자 박사 학위를 내준 국민대는 곧바로 연구윤리위원회를 열었다. 예비조사 결과는 ‘명백한 표절’. “절대 표절이 아니다”라고 버티던 문대성은 국민대 발표 직후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문대성. 아쉽지만 나는 총선기간 동안 그의 활약상(?)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공정방송을 위한 KBS 새노조 파업에 참가하느라 백일이나 현장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파업이 끝나자마자 문대성을 아이템으로 다루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른바 ‘썸씽 뉴’가 필요했다. 취재 시작 당시 문대성이 런던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다는 소식에 여론이 좋지 않았다. 일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문대성의 표절 논란 사실을 알고 있는 지부터 취재했다. 물론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로 날아가기에는 시간이 허락지 않아 대변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참이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IOC는 ‘해당 대학으로부터 공식적인 연락을 받은 바 없다. 문대성은 훌륭한 선수이자 IOC 선수 위원이기 때문에 성화 봉송 주자로 정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신이 정치부 기자야?’


그 다음은 발로 뛸 시간이다. 문대성의 주변인을 취재해 보기로 했다. 동아대에서 같이 재직했던 태권도학과 김 모 교수에게 접촉했다. 김 교수는 문대성의 논문을 사실상 대필해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렵게 통화가 됐다. 인터뷰를 꺼리는 그를 장시간 설득했다. 마지못해 학교로 찾아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부산 김해공항. 차량을 타고 동아대를 향해 이동하면서 확인 전화를 했다. 김 교수는 “미안하지만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다. 문대성과 통화했는데 인터뷰를 만류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또다시 설득에 들어갔다. 부산까지 내려왔으니 얼굴만이라도 보자고. 드디어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한 시간 넘게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해명이 이어졌다. 성과는 없었다. “문대성 의원에게 꼭 인터뷰하자고 전해 달라”는 말과 함께 동아대를 나왔다.


문대성은 이후로도 철저하게 인터뷰를 피했다. 보좌관을 통해 여러 차례 만남을 요청해 봤지만 예상대로 연락은 없었다. 취재를 마무리하는 즈음. 국회에서 온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뜻밖에도 문대성 의원이었다.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정치부 기자도 아닌데 왜 자꾸 인터뷰하자는 것이냐” 다시 겨루기가 시작됐다. “의원님께서 스포츠인 출신이고, 올림픽 금메달을 발판으로 국회까지 진출했으니 인터뷰하려는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문대성의 항의가 이어졌다. “왜 내 논문만 가지고 그러느냐. 만약에 다루려면 국회도서관, 전국 대학들 찾아가서 모든 논문 훑어보고 공평하게 다뤄보라”고 윽박질렀다. 나 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 지금 제작하고 있는 것이 스포츠 프로그램이라 이번에는 인간 문대성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다음번에는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반드시 체육계 전반의 논문 표절 실태로 다뤄주겠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하겠냐, 안 하겠냐”고 물었다. 물론 그의 답은 ‘노’였다. 취재 시작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통화가 신경전으로 끝났다.





‘태권 V 문대성의 국회 입성기’


모든 취재 내용은 KBS 1TV <스포츠이야기 운동화>에서 13분 분량으로 전파를 탔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올림픽 스타가 일그러진 영웅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제목은 ‘태권 V 문대성, 국회로 가다’. 공교롭게도 문대성은 태권 V와 동갑 내기였다.


방송에서는 문대성의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뒷짐지고 있는 용인대의 어이없는 행태도 담았다. 문대성의 석사 논문은 박사 논문과 마찬가지로 표절 의혹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내준 용인대측은 ‘아직 구체적인 제보가 없기 때문에 일단 국민대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만 답했다.


문대성의 석사 논문을 지도했던 용인대 류 모 교수의 증언도 담았다. 그는 KBS 태권도 해설위원으로 런던올림픽 해설을 맡을 예정이었다. 제자와 달리 스승은 화끈했다. 그는 끈질긴 설득을 듣고는 “까짓것, 합시다~”라고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류 교수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학생들의 논문 표절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문대성의 자서전 내용이었다. 아테네 올림픽 이후 문대성은 국민스타로 떠올랐다. 연예가중계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손님일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자서전은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인터넷 매체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었다. 흔하디 흔한 ‘스타 다이어리’ 수준이었지만 논문을 언급한 부분이 포착됐다. 문대성은 자서전에서 ‘배움의 희열 속에서 나는 결국 2년간의 노력을 기반으로 석사 논문을 통과시켰다. 2005년 현재 나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논문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배운 지식을 남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뿌듯함에 내 심장이 뛴다’고 썼다. 낯 뜨거운 거짓말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눈치 보는 대학들’


방송이 나가고 대망의 런던 올림픽이 열렸다. 성화 봉송 주자는 포기했지만 문대성은 또 한 번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아내와 함께 관중석에서 개막식을 지켜보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문광부에서 문대성의 런던 행을 적극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올림픽 때문에 잠시 잊었던 문대성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시사제작국 <취재파일 4321>팀을 찾아갔다. 팀장 선배를 만나 대한민국 체육계의 논문 표절 실태를 다루고 싶다고 제안했다. 허락이 떨어졌다. 일단 다른 스포츠 스타들의 논문부터 검토했다. 체육시민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국대 강신욱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축구스타 김두현의 명지대 박사 논문, ‘한판승의 사나이’ 유도 이원희의 용인대 석사 논문을 검토했다. 강 교수가 직접 검토해 보니 “표절이 아니고 복사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논문 표절에 대한 검증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교과부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대학들은 교과부의 지침에 따라 연구윤리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제보 - 예비조사 - 본조사 - 학위 취소’ 과정이다. 어떤 연구자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신빙성있는 증거가 첨부된 제보가 접수되면 대학은 연구윤리위원회를 연다. 일단 예비조사를 거쳐 표절이 심각하게 의심되면 본조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당사자로부터 이의제기를 받고 최종 결론을 내리는 식이다.


명지대에 문의하니 ‘김두현 논문의 표절 의혹을 알고 있으며 검증 절차에 들어갔다’는 답이 날아왔다. 반면 용인대는 요지부동이었다. 문대성의 석사 논문은 물론이고, 이원희의 석사 논문에 대한 검증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러 차례 문의를 해봐도 ‘문대성 박사 논문에 대한 국민대의 최종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문제가 있다면 당장 검증에 들어갈 일이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총장님을 보호하라!’


용인대를 다시 찾기로 했다. 용인대의 연구윤리규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에서는 볼 수 없는 ‘내부 제보’ 규정이다. 즉, 논문 표절에 대한 제보는 ‘용인대의 교원이나 산하 연구기관의 단체장’ 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인대를 포함해 전국 20개 대학의 연구윤리규정을 모두 찾아 검토해봤다. 교과부의 지침도 다시 확인했다. 어느 부분에서도 용인대와 같은 제한 규정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실상 제보를 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용인대에서 연구윤리위원회가 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반면 용인대는 2012년까지 앞선 3년 동안 교수 연구비 명목으로 국민세금 13억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용인대에 인터뷰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반응이 없었다. 수차례 확인 전화를 했지만 답을 주겠다던 홍보실 직원은 연락이 없었다. 결국 무작정 용인대 총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용인대 직원들은 총장실 문 앞을 가로막았다. 설전이 오고 갔지만 끝내 용인대 총장은 만날 수 없었다. 비서실장은 “논문 표절은 직접 당사자인 대학원장을 만나라. 총장께서는 그 부분에 대해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고 소리쳤다. 용인대 직원들의 시간 끌기가 계속됐다. 결국 홍보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대학원장실로 향했다. 물론 도착했을 때 대학원장은 자리를 비운 뒤였다. 이 같은 모든 과정은 KBS-1TV <취재파일 4321>에서 ‘스포츠 스타와 교수의 자격’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대한민국 체육계의 부끄러운 민낯’


태권도 선수 문대성 하면 떠오르는 장면. 바로 아테네올림픽 당시 멋진 뒤후려차기로 일궈낸 금메달이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첫 한판승이었다. 시간 끌기나 버티기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승부. 문대성에게 우리가 열광한 이유다. 문대성은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참가 선수단 전체를 대표해서 공정한 경쟁을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인 문대성은 실망을 넘어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문대성은 논문 표절이 사실로 드러난 지금도 단 한 번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새누리당을 떠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회의원이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없는 대한민국 운동 선수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체육계에서는 학생 선수들의 논문 표절에 대해 관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풍토 때문에 일부 선수들은 표절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취재 기간 내내 우울했다. ‘논문 표절이 체육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과 선수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다’라는 반응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국민대는 본조사까지 거쳐 논문 표절이 사실임을 확인했는데도 문대성의 박사 학위를 취소하지 않고 있다. IOC가 문대성의 선수 위원 자격을 박탈할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의 말이다. 용인대 역시 문대성과 이원희의 석사 학위에 대해 논문 표절 검증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 기자의 계속되는 문의에 ‘내부 제보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는 말만 할뿐 정치권 눈치 보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끝내 만날 수 없었던 용인대의 김정행 총장. 그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수장인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했다. 우리 대학들과 체육계는 앞으로 학생 선수들에게 정정당당한 승부를 가르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체육계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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